교사가 시민에게

진보와 보수

리틀윙 2020. 8. 2. 00:38

총선 결과에 대해

크게 승리한 정부 여당이 애써 기쁨을 감추며 코로나로 인한 경제 살리기가 급하다며 진중한 자세를 보이는 것이나,

충격적인 참패의 쓴맛을 본 보수 야당이 패배의 원인을 자기 탓으로 돌리며 나름 진지한 자기성찰 모드로 들어간 것

둘 다 보기 좋은 일이다.

민주당에겐 축하를, 미통당에겐 격려를 보낸다.

 

(통상적인 시각과는 반대로 나는) 이른바 진보/보수를 떠나 정치인들의 수준은 업그레이드 되었는데, 시민들은 여전히 지독한 배타정신에 입각한 “아전인수” 격의 평론이 지배적인 것에 큰 아쉬움 느낀다. 특기할 만한 점은, 자칭 진보 성향 사람들에게서 이런 자기중심주의적 경향성이 훨씬 강하다는 것이다. 그냥 배타적인 게 아니라 상대방을 향한 혐오정서를 아무렇지 않게 내뱉는 집단적 광기가 소름끼쳐오기까지 한다. 타지역 사람들은 어떤지 몰라도 대구에서 자랐고 경북에서 살고 있는 원조 TK 아재 입장에선 그 불편함이 남다를 수밖에 없다.

 

나는 물론 미통당을 찍지 않았다. 하지만, 전국이 파란색으로 도배되는 것보다 군데군데 다른 색이 있는 게 바람직하지 않은가? 그게 분홍색이든 노란색이든 말이다. 물론, 그 균형추가 TK에 몰려있는 게 문제이긴 하다. 하지만, 경상도 시민이 '묻지마 미통당'인 것과 전라도 시민이 '묻지마 민주당'인 것이 뭐가 다른가? 나는 전라도 할매들이 경상도 할매들보다 선진된 의식을 가져서 민주당을 찍는다고 절대 생각하지 않는다.

 

그래. 나도 민정당-한나라당에서 이어져 온 미통당 같은 정치세력은 박물관으로 사라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들은 보수가 아니라 수구일 뿐이다. 하지만, 민주당 또한 진보가 아닌 보수일 뿐이다. 그런데 DAUM 뉴스 댓글에서 TK를 향해 저주를 퍼붓는 문빠/조빠들은 진보를 참칭한다.

 

21대 총선 결과는 간단히, “자신이 진보라고 착각하는 보수 정당이 보수라고 착각하는 수구 정당에게 압승을 거둔 것”으로 요약된다.

안타까운 것은 이 두 낙락장송의 그늘 아래서 군소정당들이 전혀 성장하지 못하는 점이다. 이런 문제점을 해소하기 위해 선거제도를 개혁했건만, 자칭 진보와 자칭 보수의 꼼수전략으로 인해 오히려 이전보다 못한 결과가 빚어졌다. 꼼수로 몸집을 부풀리는 점 하나만 봐도 자칭 진보정치와 자칭 보수정치가 도긴개긴임을 방증한다.

 

태극기로 상징되는 자칭 보수 할배들은 자신이 애국자라 생각한다. 아마 죽을 때까지 생각이 안 바뀔 것이다. 마찬가지로, 자신이 선진된 정치의식을 지녔다고 생각하는 자칭 진보의 착각 또한 죽을 때까지 안 바뀌리라고 나는 확신한다. 전자는 조국을 사랑하고 후자는 조 국을 사랑하는 차이 뿐이다. 윤석열을 증오하고 조 국을 사랑하면 진보이고 그 반대면 보수라는 공식이 정치학사전 몇 페이지에 적혀있는지 묻고 싶다.

 

진중권의 말대로 코로나가 문 정부를 살렸다.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대한민국을 만들겠다는 문프의 말은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최악의 경제위기로 실현되고 있었는데, 코로나가 전화위복이 되어 대한민국이 뜨는 상승국면에서 선거가 치러졌다. 그리고 코로나 수습 역량을 순수한 문 정부의 몫으로 평가하는 것 또한 아전인수격의 유아론(唯我論)에 불과하다. 모든 것은 연관되어 있는 법, 이명박-박근혜 정부의 메르스-사스 실패의 학습효과가 빛을 발하는 것으로 봐야 한다. 무엇보다, 격조 높은 우리 국민성이 현재의 기적을 가능케 했다.

 

물론, 이전 정부보다 문정부가 나은 게 전혀 없다는 뜻은 아니다. 정부가 잘 하는 것은 칭찬하고 힘을 실어줘야 한다. 내가 하고자 하는 말은, 자칭 진보들의 ‘용비어천가’가 볼썽사납다는 것이고 무엇보다... 진보를 떠들면서 보수와 TK를 향한 극악무도한 혐오정서를 퍼뜨리는 것이 위험천만하다는 것이다.

 

이 글을 쓰는 당신은 진보냐 라고 물으면 그렇다고 대답하지 않겠다. 나는 “진보냐 보수냐”라는 잣대로 사람을 바라보지 않는다. 진보 보수를 떠나 사람은 선량해야 한다.

 

나는 싸가지 없는 자칭 진보를 경멸한다. 자칭 보수라도 따뜻한 가슴을 지닌 사람이면 그는 나의 소중한 벗이다.

 

그게 보수라고?

그래 나는 보수다. 지금부터 보수 하련다. 이 페이스북에서 싸가지 없는 진보를 너무 많이 만났다. 싸가지 없는 자칭 진보에 진절머리 난다.

 

4.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