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가 시민에게

조 교육감은 과연 죽을죄를 지었나?

리틀윙 2020. 4. 4. 21:36

조희연 서울교육감의 페이스북 댓글 파문이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되고 있다. 교육청 홈페이지에 교육감의 사퇴를 요구하는 교사들의 글이 쇄도하는가 하면 교원단체들이 연이어 교육감을 강력히 비난하는 성명서를 내고 있다. 이에 보수언론이 총선을 앞둔 시점에서 물 만난 물고기마냥 교사들의 집단분노를 부추기는가 하면 보수 성향의 한 시민단체는 조 교육감을 명예훼손으로 고발하기도 했다. 조 교육감이 교사들의 명예를 훼손해 평생 지울 수 없는 깊은 상처를 줬다는 것이다.


과연 조 교육감은 이렇듯 거센 치도곤을 당할 만큼 죽을죄를 지은 것일까? 문제가 된 그의 글귀를 차분히 짚어 보자. 조 교육감은 지난 15일에 ‘개학 연기를 해야 할까요?’라는 제목의 글을 페이스북에 올린 뒤 그 밑에 다음과 같은 내용의 댓글을 달았다.


“사실 학교에는 ‘일 안 해도 월급 받는 그룹’과 ‘일 안 하면 월급 받지 못하는 그룹’이 있습니다. 후자에 대해서 만일 개학이 추가 연기된다면 특단의 대책이 필요할 것입니다. 이런 지적도 많으셨는데 검토하겠습니다. 코로나에 어려운 집단은 더 어려울 수도 있으므로 특단의 대책이 필요할 것입니다”


이 글에서 문제가 되는 한 문장은 “학교에는 ‘일 안 해도 월급 받는 그룹’과 ‘일 안 하면 월급 받지 못하는 그룹’이 있습니다”라는 것이다. 교원단체들과 교사들이 교육감에게 격분한 것은 ‘일 안 해도 월급 받는 그룹’이 교사집단을 지칭하는 것으로 해석하기 때문이다. 이글에서 나는 조 교육감의 발언에 대한 이러한 해석이 그릇됨을 논증하고자 한다. 


어떤 말에 대한 화자의 의중을 정확히 헤아림에 있어 중요한 관건이 “문맥”이라는 것은 하나의 상식이다. 그럼에도 교육감에게 불같은 적개심을 품는 분들은 그의 말 속에서 맥락은 거세해 버리고 오로지 지엽적인 한 부분에만 집중하는 “터널비전”에 매몰되어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맥락을 중심으로 교육감이 정확히 무슨 말을 하고자 했는지, 과연 그의 말이 교사들의 집단분노를 야기할 성질의 것이었는지 살펴보자.


# 맥락 1 - 의견을 묻는 상황 

사상 초유의 ‘4월 개학’이라는 중대한 사안을 놓고 의견을 주고받는 상황이었다. “이런 지적도 많으셨는데 검토하겠다”고 했다. 누구 보고 말하는지 모르지만 흡사 온라인 채팅회의를 여는 분위기다. 입말과 달리 글말은 뉘앙스가 담겨있지 않아 받아들이기에 따라 천차만별의 해석이 가능한 법이다. 나는 조 교육감의 그 발언이 글말이 아닌 입말로 표출되었더라면 별 문제가 되지 않았을 것으로 본다. 이를테면, 참모진들과의 회의에서 교육감이 그렇게 말했다면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질 것이다. 물론, 그 회의가 전국에 생중계 되고 있음을 망각한 것은 교육감의 중대한 실수다. 어떤 이들은 교육감의 실수 속에 “평소 교사에 대한 교육감의 인식이 잠재해 있다”고 비난한다. 그런 분들은 다음 맥락에 주목하기 바란다.


# 맥락 2 – 발언의 시점

문제가 발생한 시점인 3월 16일은 방학이 아니다. 이 시기 교사들은 ‘41조 연수’가 아닌 재택근무를 하고 있다. 그리고 행정실 정규직도 돌아가면서 재택근무를 하는 학교가 많다. 따라서, 교육감이 말한 ‘일 안 해도 월급 받는 그룹’을 비단 교사를 지칭하는 것으로 보는 것은 지나친 해석이다.

그리고 교육공무직 가운데도 현 시기에 일 안 해도 월급 받는 그룹이 있다. 방학 중에 학교에 근무하는 교무실무사, 행정실무사 등은 연가 내고 개인 볼 일 봐도 월급 나온다. 조 교육감이 말한 "일 안 해도 월급 받는 그룹"이란 문맥을 나는 이런 뜻으로 읽었다.

“일 안 한다”는 것은 그런 뜻이 아니라고 반박할 것이다. 좋다. 그러면 조 교육감이 “일 안 한다”라는 말을 어떤 뜻으로 썼는지 밝혀보자. 이 말에 대한 정확한 해석이 이루어지면, 교육감이 교사의 명예를 훼손했는가의 여부가 밝혀질 것이다. 그것을 알려면 교육감의 말에서 방점이 어디에 놓여있는가에 주목해야 한다.


# 맥락 3 – 방점

문제가 된 문장을 다시 가져와보자.

학교에는 ‘일 안 해도 월급 받는 그룹’과 ‘일 안 하면 월급 받지 못하는 그룹’이 있습니다.

여기서, ‘일 안 해도’란 말을 ‘근무 안 해도’로 바꿔보자.

“학교에는 ‘근무 안 해도 월급이 나오는 그룹’과 ‘근무 안 하면 월급을 못 받는 그룹’이 있습니다.”


두 문장은 완전히 똑같은 뜻이지만, 뉘앙스는 많이 다르다. 나는 교사들의 분노를 야기한 것은 이 뉘앙스의 차이가 전부라고 생각한다. 즉, 교육감이 범한 실수의 요체는 표현의 과오지 의도의 과오는 아니다.


만약, ‘일 안 해도’란 표현을 ‘근무 안 해도’의 의미로 읽을 수만 있다면 교육감에 대한 오해는 말끔히 풀린다.

이 이치를 이해하자면, 교육공무직이 두 종류로 나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하나는 365일 내내 근무할 수 있는 그룹이고 다른 하나는 방학을 제외한 270일만 근무할 수 있는 그룹이다. 전자를 상시근무자라 하는데, 후자는 방학기간에는 ‘비근무자’로 규정된다. 후자 그룹에는 조리원, 돌봄전담사, 특수교육실무사 등이 있다. 업무의 성격상 이들은 학생들이 없는 방학 기간에는 학교에 근무할 일이 없다. 계약조건이 처음부터 그렇게 정해져 있기 때문에 이 자체가 문제가 되지는 않는다. 그런데! 코로나 사태로 개학이 무려 1개월 5일이 연기되니 이들의 생계가 심각한 문제로 떠오르는 것이다.


조 교육감 발언에서 “일 안 하면 월급 못 받는 그룹”의 외연이 명확히 규명되었다. 그렇다면, 논리적으로 학교에서 이들 그룹을 제외한 나머지 교직원들이 “일 안 해도 월급 받는 그룹”이 된다. 이 그룹의 외연은 교사 외에도 관리자, 행정실 정규직, 상시근무 공무직(교무실무사, 행정실무사, 과학실무사, 영양사 등)이 있다.

그런데, 왜 유독 교사들만이 교육감의 발언에 발끈하는 것일까? 같은 교사로서 우리들 자신의 '정신분석'을 해보건대, 대통령도 못 누리는 교사의 당연한 특권임에도 ‘방학 때 교사들이 놀고먹는다’는 외부 인식에 대한 자격지심의 발로가 아닌가 싶다. 나는 우리 교사들이 이런 자격지심을 가질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 이건 교육노동의 특수성에 따른 교사들의 특권이며 방학 때 놀고먹는 것이 아니라 다음 학기의 학생교육을 준비하고 전문가로서의 자질 함양을 위한 자기연찬에 충실하는 것이 우리의 “일”이기 때문에 “일 안 하고 월급 받는 것”이 아니다. 교직은 전문직인데, 같은 전문가로서의 “일”의 성격이 교사와 대학교수가 뭐가 다를까? 만약 교육부장관이 “대학교에는 일 안 해도 월급 받는 그룹과 일 안 하면 월급 못 받는 그룹이 있다”고 발언했다면, 교수들이 발끈할까?


계속해서, 일 안 해도’란 말과 ‘근무 안 해도’란 말이 똑같다는 것을 100퍼센트 확신할 근거가 뭔가? 라는 의문을 제기할 수 있다. 이것은 초등학생 수준의 독해력이 요구되는 문제인데, 교육감의 발언에서 이 말에 이어지는 문장을 보면 알 수 있다. 


“ ... 후자에 대해서 만일 개학이 추가 연기된다면 특단의 대책이 필요할 것입니다. 이런 지적도 많으셨는데 검토하겠습니다. 코로나에 어려운 집단은 더 어려울 수도 있으므로 특단의 대책이 필요할 것입니다.”


지금까지의 설명을 통해 “특단의 대책 수립”이 누구를 염두에 둔 것인지는 명확해졌다. 개학이 46일 연기됨에 따라 생계가 막막해진 ‘비근무자’들이다. 교육감 말의 방점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 


교육감이 교사들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주장을 펼치는 분들의 주장은 “일 안 해도 월급 받는 그룹이 교사를 지칭한다”는 것이다. 편의상 교사 그룹을 A라 치면, 논리적으로 ~A의 외연은 교사를 제외한 나머지 교직원 전부가 돼야 한다. 그 속에는 교장, 교감, 행정실장도 포함된다. 그런데 조 교육감이 교사 빼고 교장을 포함한 나머지 교직원들을 위한 특단의 대책을 세우라는 말을 했을까? 도대체 교육감의 이 말에서 교사의 무슨 명예가 훼손됐다는 말인가?


.


코로나에 어려운 집단은 더 어려울 수도 있으므로 특단의 대책이 필요할 것입니다!


그저께 내 페이스북에서 조 교육감 문제에 관한 글을 쓸 때만 해도 이 문장을 접하지 못했다. 그 취지도 모르고서 나는 “개학 연기 여부를 놓고 고민함에 있어 학생 건강과 학부모 불편이 판단 기준의 전부가 돼야지 왜 이런 사소한 문제를 거론하며 화를 자초하나?” 하는 회의감을 피력했다. 그래서인지, 내 글 밑에 어떤 분이 다음과 같은 댓글을 다셨다.(이 분의 동의를 얻어 인용한다)


"저희 남편은 학교 방과후 교사입니다. 개학을 하는 것에는 저도 동의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개학을 하지 않아 저희 가정은 이번 달 수입이 없습니다."


그때 이 댓글을 접하면서 나의 글이 이 분께 상처로 다가갔을 것이라는 생각에 미안하고 부끄러웠는데, “힘든 상황에서 사회적 약자들은 더욱 힘들다”는 조 교육감의 말에 다시 부끄러움을 느낀다. 그리고, 교육감이 존경스럽기까지 하다. 문제의 댓글을 두고 어떤 분들은 교육감 사퇴를 주장하지만, 나는 이런 분이야말로 교육감 자리에 꼭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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