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가 시민에게

5.18과 교사 역사인식의 중요성

리틀윙 2020. 8. 2. 01:07

오늘은 광주민주화항쟁 40주년 기념일이다.

 

“80년 5월 광주가 피 흘리고 죽어갈 때 광주와 함께하지 못한 것이 그 시대를 살았던 시민의 한 사람으로서 정말 미안하다... 공권력이 광주에서 자행한 야만적 폭력과 학살에 대해 대통령으로서 국민을 대표해 다시 한번 깊이 사과드린다”

 

작년 5.18 기념사에서 대통령의 발언이다. 문 대통령은 오늘 기념사에서는 또 “왜곡과 폄훼가 더 이상 설 길이 없어질 것”임을 힘주어 말씀하셨다.

 

“더 이상 설 길이 없을 것”이라는 대통령의 비장한 언설은 80년 광주에 대한 왜곡과 폄훼가 진행 중임을 방증한다. 역사적 사건에 대한 인간의 인식은 쉽사리 바뀌지 않는다. 이것은 오직 교육을 통해서만 가능한데, 교육의 기회가 없는 기성세대의 경우 ‘의식의 전환’은 거의 불가능하다. 따라서, 현 상황에서 광주에 대한 역사 왜곡을 바로 잡을 수 있는 최선은 1)왜곡된 인식의 확대재생산을 막는 것(기성세대의 경우)과 2)교육을 통해 바르게 가르치는 것(미성년 학생의 경우)이다.

 

문제는, 미래의 주역인 미성년 학생들을 가르치는 교육자가 왜곡된 역사인식의 소유자일 수 있는 점이다. 이 경우는 최악이라 하겠는데, 어쩔 수 없이 당사자의 정년이 차서 교단을 물러날 때를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 그러면 젊은 교사라면? 이것은 최악의 최악이다. 그리고 그 젊은 교사가 교사의 절대적인 영향력 아래 있는 초등학생이라면 그 심각성은 또 배가된다 하겠다.

 

5.18을 며칠 앞두고 이 최악의 최악의 최악에 해당하는 한 교사가 실천교사모임 페이스북 광장에서 왜곡과 폄훼를 일삼는 슬픈 풍경을 목도하고서 이 글을 쓴다. 부디 나의 이 글이 그 분(이하 A교사)에 대한 인신공격이나 마녀사냥으로 흐르지 않기를 나 스스로 자기규제 함과 아울러 이 글을 활용(댓글 또는 퍼가기)하실 분들에게도 당부하는 바이다.

 

A교사의 논점에서 내가 품는 문제인식은 다음과 같은 것이다.

1. 일견 ‘중립’을 가장한 왜곡되고 극우적인 역사 인식

2. 그 왜곡된 인식의 근거로 미국방성 문서를 인용하는 점

3. 광주 시민들에 대한 상처와 이 땅의 민주주의에 대한 모독을 구성하는 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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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중립적 관점의 허구성

 

>> 글쎄요 너무 한 쪽 편향적으로 가르치는 거 아닙니까? 수류탄과 각종 무기들로 무장하고 있는 사람들이 선량한 시민이라고는 생각되지 않습니다. 무기고를 4시간만에 턴 것도 교도소를 공격한 것도 정확히 설명이 안됩니다. ...

아직은 정확히 밝혀진 게 없으니 중립적으로 가르쳐야죠. 민주화운동으로 바라보는 쪽도 있고 다르게 바라보는 측면도 있다고요. ...

... 한 방향만 가르치는게 문제인거죠. (저는 학생들에게) 택시운전사도 보여줬구요. 하지만 다른 시선도 있다고도 얘기했습니다. 저는 교육의 중립성을 위반한 것을 지적한 것입니다. <<

 

5.18을 맞아 어느 선생님이 학생들에게 80년 광주에 대한 왜곡된 역사 인식론의 허점과 이를 명쾌히 바로 잡아 주는 수업 영상 소갯글에 대해 A교사가 댓글로 단 내용이다. 이 분 논리의 키워드는 ‘중립성’이다. 이 분 말 대로라면, “수업자의 역사 인식은 편향되어 있고 이 분은 중립을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달리는 기차 위에서 중립은 없다.

미국 역사학자 하워드 진의 말 대로, 역사 인식에서 ‘중립’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더구나 조선시대의 역사가 아닌 동시대의 ‘광주’에 대해 논하는 것은 필연적으로 일정한 정치적 스펙트럼(수구-보수-진보-급진)의 입장을 표출하기 마련이다. 극단적으로 말해, 오늘 문 대통령의 발언조차 ‘정치적 중립’을 견지하고 있지 않다(그게 나쁘다는 것이 아니라 그럴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하물며, A교사의 발언은......

 

자신이 극우적 스펙트럼 상에 위치해 있으면서 그 대척 지점에 있는 진보적 관점의 수업자료를 학생들에게 제공했다고 해서 “정치적 중립”을 취했다는 주장은 사고가 미분화된 형식논리일 뿐이다. 다량의 염분이 함유된 소금물에 설탕물 몇 방울을 떨어뜨린다고 소금물도 설탕물도 아닌 중간 형태의 용액이 될 수 없다. 그것은 여전히 소금물일 뿐이다. 위와 같은 정치적 관점을 지닌 사람이 과연 공평무사한 시각으로 80년 광주의 역사를 가르칠 수 있을까?

 

극우든 급진이든 어떤 역사적 관점이 진리를 관통하고 있다면 문제가 될 수 없다. 그리고 그 진리성(authenticity)은 필연적으로 선량한 관점으로 이어질 것이기 때문에 일정한 진정성(authenticity)을 담보한다. 말하자면, 그런 관점 자체가 ‘선’이고 ‘진리’다. 하지만, 극우든 극좌든 모든 극심한 편향성은 진리를 비껴가기 마련이다.

 

>> 수류탄과 각종 무기들로 무장하고 있는 사람들이 선량한 시민이라고는 생각되지 않습니다.<<

 

“그 때 그 곳에서 분연히 일어서서 죽음을 맞이한 사람들은 보통 시민들”이라 한 문 대통령의 발언과 상충되는 관점이라 하겠는데, 선량한 상식적 관점에서 어느 쪽의 관점이 진실에 가까운지 독자들에게 판단을 맡길 일이다.(참고로, 나는 이른바 ‘문빠’와는 거리가 먼 사람이다. ‘문빠’는 80만큼 ‘조빠’는 99만큼 혐오하는 입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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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진리는 어디에?

 

정치적 포지션에 따라 역사 인식이 저마다 다르다면, 진리는 어디에서 찾을 것인가?

‘정치적 중립’은 존재하지 않지만, 진리는 분명 존재한다. “80년 광주의 진리를 어디서 찾을 것인가?”에 대한 나의 답은 “광주의 진리는 광주 사람들에게서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그리 심오한 논리가 아니라 상식 그 자체다. 광주의 진실을 광주 사람들이 가장 잘 알 것은 당연하지 않은가? 광주의 진실은 총을 쏘고 대검을 찌른 공수부대가 아닌 폭력을 당한 사람들에게 물어봐야 한다. 이는 강간 상황에 대해 강간자가 아닌 피해자에게 물어봐야 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 “수류탄과 각종 무기들로 무장하고 있는 사람들이 선량한 시민이라고는 생각되지 않는다”는 말은 강간 피해 여성이 가해자에게 손톱으로 얼굴을 할퀸 것을 폭력 행위로 규정하는 것과도 같은 망언에 다름 아니다.

 

선량한 광주 사람들은 우리 군대가 우리 국민을 향해 발포를 하고 곤봉으로 머리를 가격하는 잔혹한 폭력을 저지르리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하지만 무방비 상태의 시민들을 향해 무자비한 폭력이 이어지면서 이들은 전두환 살인정권의 의도를 깨달았다. 이미 죽어간 형제들의 희생을 뒤로 하고 목숨을 구걸하든지 아니면 정의와 자존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걸고 싸우든지 선택의 기로에 선 광주 시민들은 기꺼이 노예가 아닌 자유인의 삶을 택했다.

 

이 대목에서 우리가 알아야 할 사실이 있다. 1979년 12월 12일에 쿠데타로 권력을 장악한 전두환-노태우 일당은 정통성의 결여를 오직 ‘힘의 논리’에 기초한 공포정치로 밀어붙일 수밖에 없었다. 따라서 “누구든 까불면 죽는다”는 시범 케이스로서 ‘피의 잔치’가 벌어지는 것은 필연이었는데, 광주가 타겟으로 선택된 것은 우연이었다. 당시 상황으로 봐선 그 희생자가 서울일 가능성이 제일 높았다. 독재정권에게 가장 용감하게 저항할 수 있는 세력이 학생운동집단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서울대 학생회장이 이끌던 학생운동세력은 그 유명한 ‘서울역 회군’을 함으로써 광주가 희생양이 되었다. 이 점은 당시 학생회장이던 심재철이 김영삼 정권기의 청문회장에서 진술하기도 했다(광주 출신인 그 학생회장이 지금 전두환 정권을 계승한 자유한국당의 대표인 것은 역사의 잔인한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만약 광주 사람들이 저항을 포기했다면 서울이나 부산이 희생지가 되었을 것이다. 작년 추도사에서 문 대통령이 “광주시민에게 너무나 미안하고... (19초의 침묵 후) ... 너무나 부끄러웠고, 국민들께 호소하고 싶었기 때문”이라 한 것은 이런 뜻이다. 브레히트의 싯귀대로 살아남아서 부끄러운 것이다. 이런 준엄한 부채의식은 품지 않더라도 최소한의 양심이나 양식이 있다면, “선량한 시민이 아니니” 어쩌니 하는 망언은 삼가야 한다. 특히 그가 어린 학생을 가르치는 교육자라면 말이다.

 

선량한 시민이 아니라니? 가공할 화력으로 무장한 극악무도한 군대에 맞서 항쟁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무기고를 점유하는 것은 당연한 귀결이다. 프랑스대혁명기의 파리 시민들이 무기를 손에 넣기 위해 바스티유감옥을 습격한 것은 영웅적인 실천이고 광주 시민들이 그렇게 한 것은 폭도들의 준동인가?

목숨이 위협받는 상황에서 자구책으로 폭력을 쓰는 행위를 ‘정당방위’라 일컫는다. 나아가, 개인이 아닌 집단적 차원에서 공권력의 폭력에 대응하는 자구책을 ‘저항권’이라 한다. 전두환 군사정권의 항복으로 이뤄낸 현행 헌법에서는 이 저항권을 인정하는 것이 법학자들의 지배적인 관점이다. 지금 사회적 분위기로 봐서는 조만간 개정될 새 헌법에서는 5.18 정신이 헌법 서두를 장식할 전망이다. 도대체 A교사는 어느 시대를 살고 계시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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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의 진실은 광주 사람들에게서 찾아야 하건만, A교사가 의존하는 진리의 창구는 바다 건너 있는 미국 국방성 문서 창고인 점에서, 성조기를 들고 문재인 타도를 외치는 태극기 할배들의 자화상이 오버랩된다. 그러나, A교사의 소망과 달리 미국은 다음과 같은 이유에서 광주의 진리와 현격히 동떨어져 있을 뿐이다.

 

첫째, 힌츠페트처럼 광주를 눈으로나 몸으로 경험하지 못한 이방인이 광주에 대한 인식론은 취약할 수밖에 없다. 문서에서 보듯, 이들이 의존하는 정보는 당시 전두환 살인정권의 허수아비 언론이 제작한 것을 그대로 적고 있다.

A교사가 자신있게 제시한 한 문건(사진)을 우리 말로 옮겨보자.

 

 

>> 계엄사령부(MLC)가 5.31에 광주 반란에 관한 “포괄적 보고 내용”을 발표했다. 서울(한국의) 신문들이 5천 단어로 된 전체 기사에 추가로 요약본을 발행했다. ...... 폭동(riot)을 부추기는 선동 책략이 전문적으로 이루어지고 있음(붉은색 밑줄) .... 폭동은 공산주의 활동가들과 김대중 추종자들의 작품임(붉은색 밑줄) <<

 

 

영어로 적혀 있어 뭔가 대단한 정보인 것 같지만, 내용을 살펴보면 당시 한국 언론에서 발표한 내용을 그대로 옮긴 것 뿐이다. 사진-2는 미국방성 홈페이지인지 모르지만, 표의 맨 윗칸에 주제-작성일 다음에 From To가 있는데, 한결같이 “서울에서 미국(State)” 혹은 “미국에서 서울로”이다. 일베 성향의 한국인의 눈에는 고급정보로 보일지 몰라도, 이 조잡한 정보는 현재 미국인들이 봐도 유치한 수준일 것 같다. 그럼에도 A교사는 미국방성의 기밀문서들이 하나둘 우리말로 옮겨지고 나면 자신의 주장이 옳다는 것이 만천하에 드러날 것이라고 호언장담하고 계시니 황당할 따름이다.

 

둘째, A교사의 바람과 달리 그간에 몰랐던 비밀이 밝혀지면 질수록 불리한 것은 광주 시민들이 아니라 미국과 전두환 일당들일 뿐이다. 이 사실을 논증하기 위해서는 미국이라는 나라의 실상을 짚어야 한다. A교사께서 영어 문건을 좋아하시니, 영문자료를 몇 개 인용해 본다.

 

https://www.latimes.com/archives/la-xpm-1996-08-29-me-38742-story.html

 

1996년 김영삼 정권 때 전두환 재판이 진행될 시기에 LA타임즈 논설(제목:광주에서 미국의 역할)이다. 이 글에서 중요한 부분을 발췌하면,

 

(광주 학살과 천안문 학살의 차이점을 논하는데)

1)천안문에 비해 광주 학살이 미국인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점과 2)천안문 학살과 달리 광주 학살은 미국이 책임 있다는 것이다. (There is another difference. Americans had no responsibility for what the Chinese army did in Tiananmen Square. The same cannot be said for what the Republic of Korea army did in Kwangju in 1980.)

 

한국 역사에서 가장 잔인한 정치 폭력으로서 1980년 광주 시민들을 향해 한국 군대가 자행한 학살은 미국과 연관되어 있다. (The Korean army massacre of civilians in Kwangju in 1980, the most notorious act of political violence in South Korea’s history, does have an American connection.)

(A교사가 고급정보로 내세우는 국방성 기밀문서에서는 광주 항쟁을 ‘폭동riot’라 규정하는 것과 대조를 보인다.)

 

1950년 이후 한국과 미국 사이에 체결된 군사협정에 따라 한미연합사령부는 미국 4성 장군의 지휘 아래 있다. 이 사령관은 전시에는 모든 군사력, 평상시에는 전방의 군사력에 대한 통제권을 갖는다.

Since 1950, the South Korea-U.S. military marriage has had an additional institutional base. The joint defense of South Korea is under the coordinated command of an American four-star general. This commander has “operational control” over all forces in wartime and over front-line forces in peacetime.

 

따라서, 전두환 장군이 자신의 20사단을 광주 봉기 진압을 위해 투입할 때, 그는 먼저 존 위컴 사령관에게 자신의 군대를 움직인다는 통보를 해야만 했다. 이에 대해 미국 측은 위컴 장군은 전 장군의 사단을 통제하거나 그의 움직임을 막을 아무런 힘이 없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많은 한국인들은 위컴이 통보를 받은 자체가 광주 시위대를 향한 대규모 군사력 사용을 승인한 것이나 마찬가지라 본다.

Consequently, when Gen. Chun Doo Hwan sent his army’s 20th Division to crush the Kwangju uprising, he first had to notify the American commander, Gen. John Wickham, that he was removing the division from Wickham’s control. The American side insists that Wickham had no power to keep the division under his control and prevent this movement. However, Wickham’s acknowledgment that he was notified is taken by many South Koreans to have constituted “approval” of Chun’s use of massive military force against the demonstrators in Kwangju.

 

요컨대, 미국은 ‘80년 광주’로부터 자유로운 입장이 아니다. 광주의 비극을 있게 한 중대한 가해자이고 공범이었다.

 

미국의 심볼인 ‘자유의 여신상’이 표상하는 바와 달리 미국은 세계 평화의 수호자가 아니다. 미국의 역사 자체가 전 세계 약소 국가에 대한 가공할 폭력과 수탈로 점철되었다. 그 몇 가지 증거를 필자의 블로그 글을 참고하기 바란다.(덧글 1)

 

미국 조지아 주에 위치한 아메리카 학교(School of Americas)에서는 전 세계 군사독재자들에게 “광주학살”과 유사한 민중봉기진압이나 노조파괴 전략 그리고 고문 기술을 가르친다. 이 학교가 배출한 악명 높은 독재자가 칠레의 피노체트 장군이다. 1973년 피노체트 장군은 ‘산티아고에 비가 내린다’라는 암호명으로 아옌데 대통령을 학살하고 정권을 찬탈했다(전두환 장군의 작전명 ‘화려한 휴가’와 비슷한 분위기?). 피노체트 집권 후 1천 만 칠레 국민 중 10%에 해당하는 100만 명이 의문의 죽음을 당하거나 실종 되었다.

 

https://papers.ssrn.com/sol3/papers.cfm?abstract_id=2246205

유사한 내용의 근거 자료로서 붙임 파일의 영문 자료를 인용한다. 토마스 제퍼슨 로스쿨 대학원생의 논문인 것 같은데, 제목은 ‘고문 기술을 가르치는 아메리카 학교’이다. 이 글의 6쪽부터 이 학교를 졸업한 독재자(strongmen)의 명단이 나온다. 아르헨티나, 볼리비아, 칠레, 콜롬비아, 엘살바도르, 과테말라, 아이티, 온두라스, 니카라과, 페루, 우루과이 등 한마디로 라틴 아메리카의 모든 나라에서 벌어진 가공할 학살과 폭력 그리고 민주주의의 유린에 미국이 개입한 것이다. 이 사실은 영문 자료 따위를 독해하지 못해도, 올리브 스톤 류의 영화 몇 편만 봐도 알 수 있는 내용들이다. [살바도르], [로메로] 같은 영화를 추천하고 싶다.

 

이 같은 팩트를 기초로 현안인 ‘광주의 진실’과 관련한 “사회학적 상상력sociological imagination”을 발동해 보자. 미국이 라틴 아메리카 여러 나라에서 독재정권의 폭력를 조장하는 이유는 말할 것도 없이 자국의 경제적/군사적 이익을 위해서다. 대표적인 사례가 1954년, 바나나 공화국이라는 별명을 지닌 과테말라에서 미국 청과물회사 유나이티드 프룻의 이익을 보호하기 위해 민주정부를 몰아내는 군사쿠데타를 지원한 것이다. 이런 미국의 입장에서 1980년 전두환 정권은 어떻게 비쳤을까? 너무 예쁜 녀석이 아닐까? 그런 미국방성에 광주의 진실을 기대하는 것이 온전한 태도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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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광주가 대한민국이다

 

미국의 대외정책(foreign policy)은 고강도전략과 저강도전략 사이를 왔다 갔다 한다. 주지하다시피 1945년 일제가 물러난 뒤 미국이 남한을 지배할 때는 아주 높은 수준의 고강도전략을 행사했다. 1948년 4월 3일 제주도의 비극은 그 일환으로 빚어진 한국현대사의 비극이다. 그리고 그 정점에 1980년의 광주가 있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광주 시민들의 불굴의 항쟁정신은 신군부는 물론 미국에게도 엄청난 충격을 안겨다 주었다. 그 몇 년 전 미국 청문회에서 주한미군대사가 한국인을 “이리 몰면 이리 가고, 저리 몰면 저리 가는” 들쥐떼에 비유했는데, 광주는 오만한 제국에게 한국에 대한 강력한 인상을 심어주고도 남음이 있었다.

 

실로, 광주 시민의 숭고한 희생이 없었더라면, 앞서 말했듯이, 또 다른 지역에서 시민들의 비극이 발생했을 것이다. 그리고 위대한 광주 시민의 저항, 5월 28일 도청에 남아 끝까지 항거한 투사들이 없었더라면 2016년 촛불혁명도 없고, 문재인 정부도 없고, ‘K-방역’이라는 영광도 존재하지 않는다.

 

5.18 광주 속에 이 땅의 정의와 민주주의 자양분의 정수가 아로새겨져 있는 까닭에......

한마디로, 5.18이 대한민국이다. 따라서 5.18을 모독하는 것은 광주시민을 욕보이는 만행일 뿐만 아니라 이 나라 민주주의를 모독하는 폭력이다. 황혼의 태극기 할배들이라면 몰라도 이 땅의 백년지대계를 책임지는 교육자가 광주에 대한 왜곡된 역사인식을 품는 것은 심각한 유감이 아닐 수 없다.

 

5.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