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가 시민에게

코로나가 바꾼 것

리틀윙 2020. 8. 2. 01:20

코로나로 힘든 나날을 보내고 있지만, 한편으로 코로나가 세상을 긍정적으로 바꾼 측면도 있다. 대기오염이 현격히 줄어들어 맑은 하늘을 볼 수 있는가 하면 자연에서 동물들이 활개를 치며 다니기도 한다. 인간 삶이 위축되니 동물들이 제 세상을 만난 것이다.

 

학교에서도 긍정적인 변화가 많이 일어나고 있다.

교육청에서 벌이는 각종 행사나 교육사업이 취소되니 교사들이 오직 학생교육에만 전념할 수 있는 환경이 저절로 조성되었다. 모르긴 해도, 교육청 관계자 분들도 학교와 교사를 지원하는 교육청 본연의 존재이유를 회복해 보람을 느끼시는 듯하다. 그리고 왠지 올해는 관리자 분들도 코로나로 힘겨운 교사들을 진심으로 걱정하고 힘을 실어주시는 듯하다. 그래서 내가 공공연히 “올해 우리 학교 교장-교감 선생님 너무 착해지셨다!”는 멘트를 날리곤 한다.

 

코로나로 인해 교육청도 교장-교감 선생님도 착해지는 가운데, 교사인 나도 바람직하게 변해가는 무엇이 있다. 그 하나가 수업 준비에 최선을 기울이는 것이다. 무릇 교사에게 수업보다 더 중요한 것이 없기에 실로 이것은 의미심장한 변화다.

 

한 예로, 미술수업이 완전 달라졌다. 중등과 달리 초등은 전 교과를 가르치는 관계로 교사들이 어떤 교과 수업은 썰렁썰렁 때우는 경우가 있다. 체육시간에 학생들에게 공 건네주고 놀게 하는 수업을 ‘아나 공 수업’이라 하는데, 미술시간에는 ‘아나 도화지 수업’이 초등에서 이루어지는 평상시의 미술수업이라 하겠다.

(주1: 다른 분들은 열심히 미술수업 하시는데 나만 이러는지 모른다^^)

(주2: ‘아나’는 물건을 건네줄 때 쓰는 ‘자!’라는 뜻의 사투리 표현이다)

 

 

진정성은 역량에 비례하는 법이다. 내가 미술수업을 ‘아나 도화지’로 일관해온 것은 무엇보다 미술에 대한 나의 무능과 교육 콘텐츠가 빈곤했던 것에 기인한다. 그리고 교사나 아이들에게 미술시간은 으레 ‘학생주도의 셀프 학습’으로 진행된다는 통념이 자리해 있어서 수업역량 개발에 별 신경을 쓰지 않고 타성에 젖어 온 것이다.

 

그런데 코로나가 나의 이러한 구태를 혁신시켰다. 그 배경엔 몇 가지 이유가 작용했다.

 

첫째, 학부모님들이 지켜보시는 온라인 가정학습에서는 ‘아나 도화지’ 수업을 할 수 없다. 어떤 식으로든 성의를 보여야 한다. 미술수업이라는 그릇에 내용물(=콘텐츠)을 채워야만 한다.

 

둘째, 동학년 차원에서 동료 교사 간에 역할 분담이 이루어져 수업의 전문성을 꾀할 수 있었다. 우리 학년은 위두랑에서 제공하는 온라인수업이 아닌 우리 손으로 직접 제작하거나 인터넷에서 찾은 자료를 네이버 밴드에 올린다. 나를 포함한 3인의 교사가 담당 교과를 나누어 올리는데 미술수업은 내 담당이다. 교과를 나누어 수업 연구를 하니 각자 자신이 맡은 수업에 대해 깊이 연구하게 된다. 동학년 회의 때 우리는 “코로나 이후에도 이렇게 교과목을 분담해서 수업 연구를 한다면 학생들에게 질 높은 수업을 제공하고 또 교사들의 전문성도 신장될 수 있겠다”고 의견을 모았다.

 

동료교사들끼리 교과목을 나누어 수업 연구에 전념하는 것은 코로나 이전에는 생각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코로나 때문에 교육청이 욕심을 안 부리고 학교를 지원하니 교사들이 ‘수업연구’라는 것을 하게 되는 것이다. 현장에 발을 내디딘지 30년이 지나면서 ‘페이퍼워크’에 신경 안 쓰는 것도 처음이고 ‘수업연구’에 열성을 쏟는 것도 처음 있는 일이다. 교사가 신경 쓰지 말아야 할 일에 신경을 안 쓰고 신경 써야 할 일에 정열을 쏟는...... 대한민국 학교가 이렇게 “정상적으로” 돌아갈 수도 있다는 게 너무 신기할 따름이다.

 

 

우리 학년은 지금도 오후 수업은 가정학습으로 꾸려간다. 지금까지의 내 노력으로 우리 아이들이 성장한 결실을 보면서 흐뭇한 마음에 취하곤 한다.

 

 

교실 뒷면에 전시된 아이들의 작품이 반짝반짝 빛난다. 예전에 ‘아나 도화지’ 수업에서는 볼 수 없었던 결과물이다. input이 변하니 output도 달라진다. 교육에서 인풋은 ‘교사의 수업’ 아웃풋은 학생의 성장이다. 온라인 수업이기에 아이들의 창작 활동에서 내 손길이 간 것은 없다. 교사가 제시하는 수업 콘텐츠만 달라도 의미 있는 변화가 일어나는 것이다.

 

주지하다시피, 교육(education)의 어원은 ‘이끌어내다’라는 뜻의 라틴어 ‘educare’에서 왔다. 교사가 미술 역량이 빈곤해도, 수업자료에 대한 고민과 탐구를 통해 수업 콘텐츠만 갖춰도 학생의 무궁무진한 잠재력을 이끌어낼 수 있다는 것을 몸소 깨달았다.

 

진작에 이랬어야 하는데 하는 반성이 드는 한편, 지금이라도 이렇게 변할 수 있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이다. 코로나 자체는 재앙이지만, 학교교육만 놓고 보면 코로나는 분명 축복이다.

 

7.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