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가 시민에게

외래어의 남용

리틀윙 2020. 8. 2. 01:23

>> KIA 타이거스의 뎁스가 경기를 치르면 치를수록 강해지고 있다는 의미다. 맷 윌리엄스 KIA 감독은 팀 뎁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

 

이 글을 읽으면서 ‘팀 뎁스’란 말이 독해가 되지 않았다. 처음에는 ‘Tim Debbs’로 읽었다. ‘팀 뎁스’라는 외국인 투수가 입단 초기에는 잘 못하다가 경기를 치르면서 점점 강한 면모를 보이고 있다는 뜻으로 읽혔다.

 

그런데, 그렇게 읽으면 그 앞의 “핵심 자원의 부상으로 공백이 커지만, 백업 선수들이 잘 해줘서 위기를 잘 헤쳐가고 있다”는 문장과 잘 통하지 않는다. ‘팀 뎁스’가 뭘 뜻하는지 한참을 생각하다 그 뒤의 “정확한 숫자로 얘기하기 어렵다”는 윌리엄스 감독의 말에서 실마리를 찾았다. 앞뒤 문맥상 “팀 뎁스를 정확한 숫자로 말할 수 없다”는 뜻이니 ‘팀 뎁스’는 ‘team depth’이다.

 

이 글을 쓰면서도 내 생각이 맞는지 확신하지 못한다. ‘팀 뎁스’가 Tim Debbs가 아닌 team depth를 말하는 것이라면, 이 글 쓴 사람은 정상이 아니다. ‘팀 뎁스’를 ‘team depth’로 읽고 또 그 뜻을 제대로 이해하는 한국인이 몇 퍼센트가 될까? 무슨 국민들 영어실력 테스트 하는 것도 아니고, 왜 쉬운 말을 놔두고 독자들과 숨바꼭질을 벌이는가?

 

혹 기자가 내 글을 보면, “그럼 ‘팀 뎁스’를 뭐라 써야 하는가?”라고 반문할 것이다. 이 문장은 그냥 “KIA 타이거스가 경기를 치르면 치를수록 점점 강해지고 있다”고 쓰면 된다. 우리 식 사고에서 depth(깊이)라는 추상명사가 쓰일 곳은 ‘정신세계의 깊이’, ‘학문적 깊이’ 따위에서나 적절할 뿐, 스포츠 팀의 전력에 이 표현을 쓰는 것은 과도한 수사법이다. 한마디로 이러한 문장 구사는 미국말이지 한국말이 아니다.

 

나도 반성해야 하지만, 요즘 불필요한 외래어의 남용으로 우리말이 몸살을 앓고 있다. 이것은 ‘우리말의 훼손’이라는 단순한 민족자존의 문제에 그치지 않는다. 식자층이 선량한 국민들을 향해 저지르는 “문화적 폭력”이다.

 

팀 뎁스에 대한 나의 해석이 맞는지 확신하지 못해 글을 빠져나오기 전에 구글에서 ‘타이거스 팀 뎁스’라는 검색어로 조회해 보니 메이저리그 디트로이트 타이거스의 depth chart에 관한 정보가 검색된다. 타자별 타율과 투수별 방어율 팀의 승율이 적혀있는 차트다. 이를 통해 ‘depth’가 우리말로 ‘전력’을 뜻하는 것을 알 수 있다.

 

‘팀 전력’이란 말 대신 ‘팀 뎁스’라 쓰는 것은 우리말 신문이 아니다. 같은 기자의 글로 보이는데, ‘뎁스’라는 표현은 오직 ‘스포츠조선’에서만 검색된다.

 

7.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