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과 감성

전복과 반전의 순간

리틀윙 2020. 9. 17. 16:27

전복과 반전의 순간(1~2권)

음악평론가 강헌의 책인데 정말 좋다.

1,2권 합쳐 700쪽 가까이 되는데 너무 재미있어서 단숨에 읽었다.

 

 

이 책의 매력은,

 

1.

제목에서 보듯 ‘사회 변혁’이란 키워드로 음악사에 접근하는 참신함이다.

무릇 예술의 본령은 체제에 안주하지 않고 새로운 세상을 꿈꾸는 혁신성에 있다. 당대의 훌륭한 예술가들은 예외 없이 이 혁신성을 좇았는데 우리가 배운 제도권의 교육에서는 예술가들의 이런 정신을 전혀 다루지 않았다. 이 책을 통해 우리는 당대의 사회 모순에 대한 음악가들의 분노와 고뇌를 엿볼 수 있다.

 

2.

뮤지션들의 저항적 삶과 관련하여 흔히 음악 장르에 따른 편견을 갖기 쉽다. 이를테면 클래식 음악가들은 체제에 순응했고 록 뮤지션들은 저항적이라는 것이다. 존재가 의식을 규정하거늘, 등 따습고 배부른 사람은 체제 순응적인 삶을 지향하고 춥고 배고픈 사람은 저항적인 삶을 살 가능성이 많다. 그런데 서구 사회에서 록 스타는 재벌을 상징한다. 반면, 클래식 음악을 표상하는 두 음악가인 모차르트와 베토벤은 귀족 사회의 모순에 온몸으로 저항했다.

(저자는 모차르트와 베토벤 이야기를 별도의 챕터로 무려 100쪽에 달하는 분량으로 서술하고 있다.)

 

“전복과 반전의 음악사”라는 말초적인 제목으로 미루어 상투적인 ‘록음악 예찬론’을 설파하는 것으로 예단했는데, 본문을 펼쳐 보면 음악과 역사에 대한 저자의 해박한 지식과 전문성에 탄복하게 된다.

개인적으로 다양한 장르의 음악 평론서를 제법 많이 탐독한 편인데, 특히 국내 저서 가운데 이 책만큼 깊이 있고 정확한 관점을 지닌 책을 처음 본다.

 

3.

모든 것은 연관되어 있는 법인지라, 음악가의 삶과 그의 음악세계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음악적 지식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그보다는 당대의 역사와 사회적 문화적 배경에 대한 인문학적 식견이 더욱 중요하다. 그런 지적 역량을 갖춘 사람만이 진정한 음악 평론가가 될 수 있는데 이 책의 저자가 그러하다고 평가하고 싶다.

독자의 입장에서는 이 유능한 책을 통해 음악사 외에 부수적으로 당대의 역사와 사회문화에 대한 흥미 있고 전문적인 지식을 섭렵할 수 있어서 그만이다. 클래식 외에 재즈와 우리 가요, 민요, 심지어 운동권 음악까지 이렇게 넓고도 깊게 다루는 음악평론서는 이 책이 유일하지 않을까 싶다.

 

음악에 대한 남다른 흥미와 열정이 있는 분들에게 이 책은 더없이 귀한 선물이 될 것이다.

 

https://www.youtube.com/watch?v=lG4LolklcbQ

 

붙이는 음악은 1권에 나오는 윤심덕의 [사의 찬미].

저자는 ‘사의 찬미’가 발표된 1926년을 우리 대중음악의 원년으로 매긴다. 흥미있게도 저자는 윤심덕의 죽음이 자살이 아니라고 한다. 일종의 음모론인데 그리 조야하지 않고 설득력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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