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과 감성

예술의 자율성에 관하여

리틀윙 2020. 4. 4. 01:06

 

경북의 학교에서는 ‘시울림’이라는 이름의 교육활동을 한다. 우리 학교에서는 시 암송 대회를 열어 학급 대표를 뽑은 다음 다시 학년 대회에서 제일 잘 한 학생이 한 명씩 12월 방송조회에서 전교생을 대상으로 발표하는 시간을 가졌다.

 

1학년부터 6학년까지 똘똘한 아이들이 자기가 좋아하는 시를 한 편씩 낭송하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그런데 그 중 한 아이가 발표하는 시가 특별히 내 눈길을 끌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다가와

꽃이 되었다.

 

유명 시인 김춘수의 시이다.

고학년답게 수준 높은 시를 발표한 아이에게는 미안하지만, 이 시로부터 최근 우리 사회를 우울하게 만든 한 인물에 대한 씁쓸한 단상을 적고자 한다.

 

시를 사랑하는 사람이면 누구나 매력을 느껴 한번쯤 그 구절을 외워 읊어봤을 훌륭한 작품이다. 하지만, 김춘수가 이 아름다운 시 외에 다음과 같은 시를 지은 적이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동안 7년 국정을 위하여는

촌각을 쉬지 않는

님의 그 정력과 열과 성과

그리고 그 용단으로 하여

국운은 날로 선진을 발하고 도약해갔습니다.

님은 겨레의 빛이 되고 역사의 소금이 되소서.

님이시여,

하늘을 우러러 만수무강 하소서.

 

40년전 12.12. 쿠데타로 집권하여 이듬해 5월 광주를 피바다로 만들고 대통령이 되었다가 7년 뒤 물러난 전두환의 퇴임을 기념하여 김춘수가 독재자에게 바친 시이다. 유능한 시인의 예술혼에 하늘도 감동하였는지 살인마 독재자는 만수무강을 누리며 알츠하이머에도 불구하고 골프를 치고 1인당 20만원씩이나 드는 오찬을 즐기고 있다.

 

교육자인 나의 관심은 전두환의 삶이 아니라 시인의 삶에 모아진다. 살인마에게 저런 쓰레기 시를 써 바친 작가의 정신세계를 아이들에게 어떻게 가르칠 것인가 하는 것이다. 이를테면, 내가 담임교사였다면 반 아이들에게 김춘수의 문제점을 알려주고 학생으로 하여금 다시 생각해보도록 안내했을 것이다. 이에, 혹 어떤 분은 “시인이 어떤 삶을 살았건 시 자체가 훌륭하면 그만이다”라 하실 지도 모른다. 미학에서 예술의 자율성 혹은 순수예술론을 강조하는 분들의 입장이 이러하다. 칸트에 따르면, 아름다움은 그 자체로서 규정되어야 할 독립적인 체험영역이다.

 

나는 위대한 철학자의 이 말에 동의할 수 없다. 어떠한 예술작품도 인간 삶과 분리되어 독립적으로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이다. 예술작품은 이런저런 작가가 지닌 예술혼의 결정체이다. 개인의 영혼은 그대로 개인의 삶을 반영한다. 추한 삶을 사는 사람의 혼이 맑을 수 없고 따라서 그의 예술세계가 아름다울 리가 만무하다. 유능한 시인이 화려한 수사로 아름다운 시를 빚어낸 들 이것은 매춘부가 발하는 허구의 미와 다를 바 없다. 아무리 아름다워도 매춘부는 매춘부일 뿐 비너스가 될 수는 없다. 작가의 삶과 정신세계, 예술작품의 내용과 형식, 이 두 대립쌍은 언제나 함께 간다.

 

아도르노는 “아우슈비츠 이후에 시를 쓰는 게 가능한가?”라고 했다. 아름다움이 현실세계와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영역이라 한 칸트의 논리에 따르면 “가능하다”라고 답할 수 있다. 2차 세계대전 때 우리 한국인들도 아우슈비츠의 유대인 못지않은 고통을 일본제국주의자들로부터 받았다. 일제의 야수 같은 수탈에 초근목피로 연명해가는 민중의 지옥 같은 현실을 외면한 채 순수예술론자들은 목가적인 삶을 노래하는 아름다운 시를 읊어댔다. 그리고 이들은 예외 없이 일제의 만행을 정당화하고 칭송하는 시를 바쳤다. 

 

이들이 전혀 순수하지 않은 것은 그 대가로 어떤 삶을 누렸는지가 말해준다.

유명 시인 김춘수는 ‘님’의 성은으로 비례대표 국회의원까지 지냈다. 독재정권 치하에 양심적인 사람들이 ‘님을 위한 행진곡’을 부르며 고문당하고 죽어갈 때, “님의 만수무강을 기원하는” 시를 쓴 사람은 한 평생 잘 먹고 잘 살다 죽었다.

 

내가 그의 삶을 알기 전에

그의 시는 아름답기 그지없었고

그는 순수한 예술가였다.

살인마를 찬양한 것을 알았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똥이 되었다.

 

2019.1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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