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과 감성

아는 만큼 비평할 수 있다

리틀윙 2019. 9. 7. 06:53

 

교대 다닐 때 유일한 낙이 밴드에 들어가 음악활동에 빠져든 것이다. 20대에 ‘음악 하는’ 청년이 빠져드는 장르의 음악은 말할 것도 없이 ROCK이다. 

 

음악을 구성하는 두 축은 리듬과 멜로디이다. 팝(가요)을 좋아할 때는 멜로디에만 주목하지만, 록의 세계에 빠져들면서는 리듬 라인에도 흥미를 갖게 된다. 유명 록 밴드들의 드러머 이름을 저절로 기억하게 되고, 누구의 드럼 실력이 누구보다 더 낫다 못하다 평가를 하게 된다.

 

7080 록 세대에게 가장 유명했던 그룹은 레드 제플린(Led Zeppelin)과 딥 퍼플(Deep Purple)이다. 교대 앞 다방에서 같이 음악 하는 선배들과 존 보냄(레드 제플린 드러머)과 이안 페이스(딥 퍼플 드러머) 가운데 누구 실력이 더 낫다고 침 튀겨 가며 갑론을박을 하던 기억이 있다.

 

 

 

 

 

 

 

나는 음악을 잘 못하지만, 주변에 음악적으로 유능한 사람들이 많다. 드럼을 전문으로 하는 사람들을 만날 때 마다 내가 던진 질문은 “존 보냄과 이안 페이스 가운데 누가 더 낫나?” 하는 것이었는데, 돌아오는 대답들이 한결같이 “이안 페이스는 존 보냄의 비교 대상조차 될 수 없다”는 것이었다. 대학 때 드럼 치는 선배들이 토론 나눌 때 헷갈렸던 의문이 간단히 정리되었다.

 

내가 모르는 어떤 드럼 전문가가 “도대체 무슨 근거로 이안 페이스를 제멋대로 폄하하는가?” 하는 반론을 제기할지 모르지만, 이로부터 내가 얻은 깨달음을 말하고자 한다.

 

아는 만큼 비평할 수 있다는 것이다.

 

40대 후반에 체육 교과전담을 할 때였다. 초등 남학생들의 로망이 축구 잘 하는 사람인데, 내가 축구공 차는 모습 보더니, 놀라면서 “와 선생님! 방금 무회전 킥을 차신 거죠?”라는 반응을 보였다. 나는 무회전 킥이 뭔지도 모르는데... ^^ 

아이들은 자기보다 뭘 잘 하면 “최고”라고 평가한다.

 

드럼은 잘 몰라도 기타에 대해서는 나도 나름의 관점을 갖고 있다. 아마추어들은 기타 잘 치고 못 치고를 손가락을 빨리 움직이느냐의 문제(핑거링)로만 생각한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에 이르러 속도와 무관하게 한 음 한 음을 정확하게 치는 것이 중요하고 ‘터치’의 깊이가 표현력을 좌우한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이 이치를 깨달으면서 나는 이안 페이스의 한계도 알게 되었다. 이안 페이스는 손 기술은 화려하지만 ‘소리의 무게’ 면에서 존 보냄에 비해 초라하기 그지없다. 

 

무게가 없으면 깊이도 없다.

글이 그러하다. 삶의 무게만큼, 치열한 실천만큼 깊이 있는 글이 나온다. 그 깊이만큼 울림이 있다.

 

페이스북에서 많은 글들을 만난다. 깊이 있는 글과 그렇지 않은 글이 있다. 별 깊이도 없는데 많은 독자들이 ‘좋은 글’이라 평가할 때, 혼잣말을 내뱉게 된다. 도대체 저 글이 뭐가 훌륭하다는 건지?

 

판단은 자유라고?

 

그렇지 않다.

호불호의 문제는 주관적일 수 있지만 한 작품의 가치는 객관적으로 논증할 수 있어야 한다. 깊이가 없어도 자신에게 좋게 느껴지면 좋다고 말하는 것은 개인의 자유다. 이를테면, 사랑에 빠진 사람은 삼류 로맨스 소설이나 천편일률적인 사랑타령의 발라드를 좋아할 것이다. 그것은 올바른 평론과는 무관한 개인적이고 주관적인 정서의 작동일 뿐이다.

 

올바른 비평은 대상에 대한 인식 능력이 요구되는 문제이다.

아는 만큼 대상의 가치를 음미할 수 있다.

 

 

..............

(그렇다고, 뭐에 대해 모르면 떠들지 말라는 뜻은 아니다. 몰라도 말을 내질러야 한다. 이에 관해서는 다음 글에서 논하자.)

 
7.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