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과 감성

렛잇비

리틀윙 2021. 1. 27. 09:55

한 달 전만 해도 아이들에게 “밴드를 해체해야겠다”는 엄포를 놓곤 했다. 보컬을 맡은 녀석들은 계속 이 핑계 저 핑계 대며 토요일 수업에 빠지고 드럼 치는 아이는 내가 정성껏 지도를 해도 도무지 따라 오지 않아서 실력이 늘지 않았다. 총체적으로 팀 분위기가 침몰해가고 있었다.

 

보컬 두 녀석은 결국 나갔다. 밴드활동은 중간에 나가면 타격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그래서 입단할 때부터 중도이탈 않겠다는 각서를 받고 뽑건만, 실컷 키워놨더니 지도교사와 또래집단에 배신감을 안기는 아이의 무심함이 허망하기만 하다.

 

그나마 위로가 되는 것은, 내가 정성들여 가르친 호동이의 드럼 실력이 일취월장한 점이다. 나의 열성적인 지도에 부응을 하지 않아서 호되게 자극을 준 뒤로 등교하지 않는 날도 오후에 꼬박꼬박 악기실에 와서 열심히 연습한 결과 이 곡을 거의 완벽하게 연주해내고 있다. 사실, 아이는 음악적 감각이 매우 둔한 편이었다. 그런 아이가 지금 이 위치에 오기까지 내 손이 많이 갔다. 공들인 보람을 느낀다. 호동이의 성장을 보면서, “부진아는 교육이 불가능한 아이가 아니라 다만 교사의 손이 조금 더 가는 학습자일 뿐”이라는 평소 지론에 확신을 품게 된다.

 

 

 

리드 기타를 치는 아이는 정말 예쁜 녀석이다. 아마 6학년 아이 가운데 제일 똑똑한 아이일 건데, 공부뿐만 아니라 심성도 갑이다. 아이는 입단할 때 드럼을 지망했는데, 베이스 연주자가 따라오지 못해서 이 아이에게 세컨 베이스를 맡겼다. 그러다가 베이스 파트가 어느 정도 궤도에 오른 뒤에는 다시 기타를 맡겨 지금까지 오게 된 것이다. 역량이 출중해서 무슨 파트를 맡겨도 빠른 시일 내에 소화를 해내니 나로선 그저 기특하고 예쁠 따름이다. 정말이지 이런 아이는 평생 만나고 싶다. 그래서 언젠가 둘이 있을 때 아이에게 “ㅇㅇ아 우리 평생 만나자. 나중에 네가 어른 돼도 나를 찾으라”라고 귀띔했더니 아이도 기꺼이 그러겠다고 한다^^

 

나머지 아이들도 다 착하고 성실하다. 다만 아쉬운 점은 멤버들 간에 응집력이 느슨한 것인데... 팀이 이렇게 되는 가장 큰 이유는 지도교사인 내가 아이들의 학교일상의 중심에 위치해 있지 않기 때문이다. 내가 아이들의 담임이나 동학년 교사라면 아이들의 삶 속에서 내가 영향을 발휘할 텐데 그러하지 못하고 단지 음악밖에 지도하지 않으니 이런 약점이 노출되는 것이다. 교육이든 음악활동이든 삶의 안받침이 없으면 그 존립이나 발전에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비틀즈의 ‘Let It Be’는 나의 단골 지도 레퍼토리다. 이 곡은 음악적 미는 물론 철학적으로도 깊은 정신세계를 담고 있는 수작이다. 이 노래의 지적 배경은 노자의 ‘무위자연’ 철학이다. “Let it be”는 무위(無爲)를 영어로 옮긴 것이다. “Let it be”의 진리를 믿노니, 보컬 놈들에게서 상처 받은 나의 마음도 시간이 지나면 풀릴 것이다.

 

아이들의 생음악 반주에 맞춰 노래 부르니 나도 모르게 내가 보컬리스트로 아이들과 합주하는 착각에 빠져든다. 연주 뒤에 아이들에게 “얘들아, 호동이가 드럼을 멋지게 치고 또 선생님이 보컬을 하니 너희들도 연주할 맛이 나지?” 물었더니 “정말 그래요!”라고 답한다. 이런 게 그룹 음악의 묘미다. 동료 연주자들과의 관계망을 바탕으로 펼쳐지는 예술의 향연에서 느끼는 카타르시스, 실로 인간이 경험할 수 있는 최고의 쾌감이다. 사실, 아이들이 예술 활동에 몰입하게 되면 학교폭력 따위는 저절로 사라진다. 미학적 카타르시스를 느끼는 아이가 폭력성을 지닐 수는 없기 때문이다.

음악은, 예술은 그 자체로 위대한 교육이다!

 

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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