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1 34

비계설정

3월 1일 새 학년도가 개시되었지만 코로나로 인해 6월 초가 되어서야 대면 수업을 시작했다. 3개월 동안 온라인 수업을 진행하면서 28명 아이들의 면면이 대충 읽혔다. 매 수업 시간에 댓글로 올라온 과제 결과물을 통해 아이들의 학습태도나 지적 역량이 대략적으로 판단되는 것이다. 3개월 뒤 오프라인 등교해서 만났을 때 나의 예상을 완전히 비껴간 아이가 있었다. 온라인 댓글에서 봤던 학습 능력이나 언어 구사력은 우리 반에서 톱이었는데, 실제 아이의 발달 수준은 평균 이하인 것이다. 이러한 괴리가 말해주는 것은, 온라인에서 제출된 결과물은 아이의 실력이 아닌 어머니의 실력이라는 것이다. 코로나 국면에서 학생들 간의 학업 격차가 심화되고 있다고 한다. 가정에서 혼자 방치된 아이와 부모의 관리와 조력을 받는 아이..

비고츠키 2021.01.27

한글 이름을 영어로 표기할 때 주의할 점

한글 이름을 영어로 표기할 때 주의할 점에 대한 나의 생각을 적어봅니다. 이해하기 쉽도록 우리나라 축구선수로 해외에서 이름을 떨치고 있는 두 사람, 이강인과 손흥민 선수의 이름을 예로 들어 보겠습니다. 먼저 이강인 선수의 이름이 어떻게 불려지는지 영상을 보시기 바랍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myQ8wmJFtlk https://www.youtube.com/watch?v=IyiPHCCnc0I 첫 번째 영상은 스페인 액센트가 강한 영어이고 두 번째 영상은 스페인어로 보입니다. 어느 경우든 ‘강인’이라 발음하지 않네요. 각각 ‘간긴 리’와 ‘간진 리’로 들립니다. 이런 현상이 벌어지는 이유는 두 번째 영상의 자막에서 알 수 있습니다. ‘Kangin Lee’ ‘강’을 ‘Gan..

우연과 필연

경북은 땅이 넓고 험준해서 다니기가 힘든 편인데 최근에는 산간 오지에도 4차선 도로가 뚫려 교통이 점점 편리해지고 있다. 그런데 세상사가 다 새옹지마인지라, 복(福)과 화(禍)가 동전의 양면처럼 붙어 돌아가기 마련이다. 북동부에 위치한 어느 산간 지역에 주민들의 오랜 숙원인 4차선 도로가 개통되었는데, 역설적으로 이 편리한 길이 생기면서 이 지역에 전례 없는 우환이 생겨났다. 이 도로가 강원도 정선으로 연결되는데, 지역민들 가운데 정선 카지노를 들락거리며 패가망신하는 사례가 속출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인간 삶의 행불행이 개인의 자질에 의해 좌우되는지 사회 구조에 의해 좌우되는지에 관한 좋은 토론거리를 제공해주고 있다. 이 문제는 우연과 필연이라는 차원에서 접근할 때 그 진실이 보다 명쾌하게 규명된다...

이론과 실천 2021.01.27

글쓰기 클리닉

국어나 영어의 교육목표는 말하기와 듣기로 압축된다. 입말의 경우는 말하기/듣기이고 글말이라면 읽기/쓰기이다. 어떤 경우든 이 과업에는 “의미”가 동반되어야 한다. 어린 아이가 칸트가 쓴 문장은 읽을 수 있지만 그 뜻은 이해할 수 없다. 말하기도 마찬가지다. 학교나 집에서 있었던 일을 말해보라 하면 무의미하게 나열하기만 하는 아이들이 많다. 입말보다 글말이 더욱 그러하다. 아이들이 글쓰기를 어려워하는 가장 큰 이유가 이런 것일 거다. 아이들에게 글쓰기가 어렵듯이 교사들에겐 글쓰기 지도가 어렵다. 글쓰기를 제대로 지도하려면 교사 또한 마음을 다잡아야 한다. 1학기와 2학기에 한 단원씩 글쓰기를 다루고 있는데 이 단원을 다른 단원처럼 쓰르륵 지나치면 아이들의 글쓰기 실력에 변화가 없다. 반대로 교사와 아이들이..

교육적 만남

6학년 밴드부 아이가 악기실에 들어오면서 나랑 마주쳤을 때 “존경하는 선생님, 안녕하세요?”라고 인사를 건넨다. 그리 무거운 톤은 아니고 애교 섞인 인사말인데 ‘존경’이라는 수사 속에는 상대에 대한 나름의 각별한 마음이 느껴졌다. 밴드부 아이들은 매주 한두 번 합주할 때 음악적으로만 만나다 보니 인간적인 교감을 나눌 기회가 잘 없다. 더구나 이 아이는 여학생인데 요즘 학교에서 남교사가 여학생과 소통하기가 매우 조심스러운 입장인 한편 아이의 성격도 그리 소탈해 보이지 않아서 지금껏 서로 편하게 대하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이전까지 아이의 인사말은 그냥 ‘안녕하세요’였다. 아이는 어떤 특별한 시점 이후부터 내게 존경심을 품게 된 것인데 그 계기로 작용한 것이 무엇인지 궁금하다. 그것이 무엇이든 내가 아이에게..

교실살이-1 2021.01.27

People

people에 해당하는 우리말은 1)사람들 2)국민 3)민중 4)인민 등이 있다. 이 다양한 용어들은 맥락에 따라 다르게 쓰며 그 용어가 풍기는 뉘앙스 또한 천양지차를 보인다. 박정희 전두환 때 ‘인민’은 물론 ‘민중’이란 말조차 불온시 되었다. 그 관성이 지금까지 이어져 ‘인민’이란 용어는 많은 이들이 사용을 자제해오고 있다. South Korea’s main opposition party changes its name to People Power Party in a move to the left. 한국의 주요 야당이 좌파로 이동하면서 이름을 인민권력당으로 변경 이 나라 주요 야당의 정체성을 아는 우리들에게 이 문장은 너무 낯설게 다가온다. 보수는 보수대로 ‘국민의 힘’을 ‘인민의 권력’으로 옮기는 것..

이론과 실천 2021.01.27

실존적 자극

아침에 수업준비를 하고 있는데 희동이가 교실문을 살포시 열고 들어와서 발열체크 요청을 한다. 엇! “이 시간에 네가 웬일이니?” 희동이는 지각을 하지는 않지만 이렇게 이른 시간에 오는 건 처음 있는 일이다. 어제 수학 학습지 숙제를 학교에 두고 와서 아침에 일찍 와서 하려고요! 너무 좋다. 올해 아이들은 대부분 모든 면에서 양호한 편이지만 코로나 체제 하에서 학교나 가정에 뭘 두고 그냥 오가는 경우가 아주 많다. 등교일과 가정학습일이 수시로 바뀌니 아이들이 잘 챙기질 못하는 것이다. 그래서 “학습지를 학교에서 안 가져가는 바람에 숙제를 못했어요”라는 아이들이 많이 생겨난다. 몇몇은 상습적으로 이런 모습을 보이는바 수시로 일장훈시를 하곤 한다. 어릴 때 생활습관의 중요성 운운하면서 말이다. 희동이의 이 반..

교실살이-1 2021.01.27

렛잇비

한 달 전만 해도 아이들에게 “밴드를 해체해야겠다”는 엄포를 놓곤 했다. 보컬을 맡은 녀석들은 계속 이 핑계 저 핑계 대며 토요일 수업에 빠지고 드럼 치는 아이는 내가 정성껏 지도를 해도 도무지 따라 오지 않아서 실력이 늘지 않았다. 총체적으로 팀 분위기가 침몰해가고 있었다. 보컬 두 녀석은 결국 나갔다. 밴드활동은 중간에 나가면 타격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그래서 입단할 때부터 중도이탈 않겠다는 각서를 받고 뽑건만, 실컷 키워놨더니 지도교사와 또래집단에 배신감을 안기는 아이의 무심함이 허망하기만 하다. 그나마 위로가 되는 것은, 내가 정성들여 가르친 호동이의 드럼 실력이 일취월장한 점이다. 나의 열성적인 지도에 부응을 하지 않아서 호되게 자극을 준 뒤로 등교하지 않는 날도 오후에 꼬박꼬박 악기실에 와서 ..

이성과 감성 2021.01.27

드럼 바이러스

요즘 우리 반에 팬데믹까지는 아니지만 어떤 바이러스가 전파되고 있으니 그 이름은 ‘드럼 신드롬’이다. 이 아이는 처음에 토요방과후 기타반에 들었다가 기타에 적응을 못해 드럼으로 전과(?)시킨 학습자다. 기타 배울 때는 그렇게 힘들어 하더니 드럼을 배운 뒤로는 매일 드럼 치고 싶어 환장하는 모양새다. 아마 이 아이는 식탁에 앉을 때 반찬 그릇이 드럼 북으로 보일 것 같다. 우리가 당구에 미칠 때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기타와 달리 드럼에는 흥미도 많고 소질도 꽤 있는 편이다. 지금 영상은 아이 몰래 찍은 것인데(드럼 연주에 흠뻑 몰입해서 내가 촬영하는 것도 몰랐다), 다양한 리듬을 나름대로 조합하여 필인을 시도하는 것으로 이는 내가 아직 가르치지 않은 과정이다. 새로운 시도를 하다 보니 자기 생각대로 잘 ..

교육을 말한다 2021.01.27

문학을 시험지 속으로 가져가는 순간. . .

2004년 서울시교육청 수능모의고사에서 ‘아마존수족관’이란 시에 관한 문제가 출제되었다. 그런데 나중에 시를 쓴 최승호 시인에게 문제를 풀게 했더니 두 문제 다 틀리는 촌극이 발생했다. 이에 시인은 “이 시의 주제가 뭐냐? 시의 사조가 뭐냐? 시인은 어느 동인 출신이냐? 묻는 게 수능시험이다. 그런 가르침은 가래침 같은 것이다.”라고 논평했다. 5지선다형 시험에 내재된 치명적인 한계가 적나라하게 드러난 점에서 수능 제도가 일대 위기에 봉착한 중대한 사건이었다. 이 위기를 수습하기 위해 수능 출제 위원이었던 교수는 시인의 비판에 대해 다음과 같이 응수했다. >> 수능 역사 15년 동안 시의 사조나 시인이 어느 동인 출신이냐고 묻는 문제는 단 한 번도 없었다. 수능에서는 문학 작품에 관한 단순 지식이 아니라..

교육을 말한다 2021.01.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