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고츠키

비계설정

리틀윙 2021. 1. 27. 10:44

3월 1일 새 학년도가 개시되었지만 코로나로 인해 6월 초가 되어서야 대면 수업을 시작했다. 3개월 동안 온라인 수업을 진행하면서 28명 아이들의 면면이 대충 읽혔다. 매 수업 시간에 댓글로 올라온 과제 결과물을 통해 아이들의 학습태도나 지적 역량이 대략적으로 판단되는 것이다.

 

3개월 뒤 오프라인 등교해서 만났을 때 나의 예상을 완전히 비껴간 아이가 있었다. 온라인 댓글에서 봤던 학습 능력이나 언어 구사력은 우리 반에서 톱이었는데, 실제 아이의 발달 수준은 평균 이하인 것이다. 이러한 괴리가 말해주는 것은, 온라인에서 제출된 결과물은 아이의 실력이 아닌 어머니의 실력이라는 것이다.

 

코로나 국면에서 학생들 간의 학업 격차가 심화되고 있다고 한다. 가정에서 혼자 방치된 아이와 부모의 관리와 조력을 받는 아이의 학업 성취 수준은 정반대 방향으로 치달을 가능성이 많다. 하지만, 부모의 조력 방식이 아이의 공부를 송두리째 대행해주는 식으로 흐르면 차라리 안 도와주는 만 못하다.

 

그러면 부모는 아이 공부를 어떻게 도우는 것이 최선인가?

그 답이 ‘비계설정scaffolding’이다. 비계는 공사 현장에서 건물을 지을 때 건축 자재 같은 것을 들고 올라갈 수 있게 하기 위해 임시로 설치한 시설물을 말한다. 브루너(J. Bruner)는 비고츠키의 근접발달영역(ZPD) 이론에서 영감을 얻어 이 개념을 창안하였다.

 

 

아동의 학습활동을 건축물 공사에 비유할 때, 부모의 조력 활동은 아이가 건물을 오르내릴 수 있는 비계를 설정해주는 것이지 건물 자체를 지어줘서는 아니 될 일이다. 흔히, 올바른 교육 방법으로 회자되는 “고기를 잡아주지 말고 고기 잡는 방법을 가르쳐주라”는 말이 브루너의 ‘비계설정’ 개념과 관계있다.

 

아이에게 자전거 타기를 가르치는 상황을 생각해보자. 자전거를 처음 타는 아이는 핸들 조작이 서툴러 균형 잡기가 전혀 안 되기 때문에 어른이 뒤에서 잡아줘야 한다. 말하자면 이 단계에서는 강력한 비계 설정이 요구되는 것이다. 다음 단계에서 조력자는 처음 출발할 때만 잡아주고 몇 미터 간 뒤에는 놓아 버린다. 느슨한 비계를 제공하는 것이다. 그러면 이내 넘어지겠지만 이런 과정을 몇 번 반복하면 마침내 처음부터 안 잡아줘도 운전자 스스로 갈 수 있게 된다. 즉, 모든 비계를 해체한 이 상태가 학습 목표 도달 지점이라 할 수 있다.

 

 

아동의 학습활동을 돕기 위해 비계를 어떻게 설정할 것인가에 관해서는 비고츠키의 근접발달영역(Zone of Proximal Development) 이론에서 답을 찾을 수 있다. 특정 과업과 관련한 아동의 발달 수준은 크게 세 영역으로 나뉜다. 1)스스로 할 수 있는 것 2)조력자의 도움을 받아 할 수 있는 것 3)도움을 받아도 할 수 없는 것. 비계설정은 2)를 타겟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가정에서 부모가 아이의 숙제를 도와주거나 하는 행위도 엄연한 교수-학습 활동으로 볼 수 있다. 부모든 교사든 아이의 학습을 지도하기 위해서는 현재 아이의 근접발달영역을 정확히 파악하고 있어야 한다. 이게 안 되면 교육은 불가능하다.

 

모든 교육활동은 근접발달영역과 비계설정의 원리에 입각해 이루어진다. 비단 비고츠키와 브루너의 이론을 모를 때도 우리 교사들은 대부분 이렇게 지도해 왔다. 그러나 부모님 가운데 이 원리를 거스르고 건물 자체를 지어주는 우를 범하는 경우가 있다. 이런 조력은 아이의 지적 성장에 아무 도움이 안 될 뿐만 아니라, 모든 것을 부모님께 의존하게 되는 정서나 생활습성을 형성하는 역기능을 초래한다.

 

1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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