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고츠키

결함이냐 손상이냐?

리틀윙 2021. 1. 27. 09:24

‘심리학계의 모차르트’라 불리며 현재 전 세계의 심리학자들로부터 각광을 받고 있는 비고츠키를 우리는 인지심리학의 대가로 알고 있지만, 원래 그의 전공 분야는 장애심리학이었다. 영어 전문 용어로 ‘defectology’라는 것인데, defect가 ‘결함’이란 뜻이기 때문에 이 낱말은 영어사전에서 ‘결함학’으로 옮겨지고 있다.

 

네이버 영어사전이 뭐라 하건 간에 적어도 비고츠키 맥락에서 이 용어는 ‘손상학’으로 옮기는 게 맞다. 장애인의 대립물을 가리키는 말로 ‘정상인’과 ‘비장애인’은 뜻은 같지만 의미는 완전히 다르다. 마찬가지로 장애심리학을 '결함학'이라 일컬을 때와 '손상학'이라 일컬을 때 의미가 완전히 달라진다. 비고츠키 가로되 “하나의 낱말은 인간 의식의 소우주”인 까닭에, 말의 의미가 다르면 해당 주체의 운명도 달라진다.

 

‘결함’과 ‘손상’은 문제의 원인이 전자는 내부에 있고 후자는 외부에 있는 점에서 엄청난 의미의 차이가 있다. 비고츠키는 장애를 개인적 측면의 문제로 보지 않았다. 장애는 개인적 요소와 문화 환경적 요소가 맞물려 발생하는 것인데, 환경 속에는 사회적 삶에 개인이 충분히 참여할 수 있는 여건을 공동체가 제공하지 못한 책임을 포함시켜야 한다고 보았다(비고츠키와 마르크스, 이성우 역, 265쪽).

 

생후 5개월 만에 눈과 귀가 멀어진 미셸이라는 여자아이가 훌륭한 스승의 도움으로 장애를 딛고 자아를 실현해가는 이야기를 그린 [블랙]이란 영화가 있다. 영화가 너무 흥미 있고 감동적이어서 실제 인물의 삶인지 알아보려고 인터넷 검색을 해보니 그렇지는 않은 것 같다. 하지만 실제 삶에서도 이런 일화는 얼마든지 볼 수 있는바, 헬렌 켈러의 삶이 그러하다. 헬렌 켈러가 우리가 아는 영웅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훌륭한 개인 교수 설리반을 통해서였다. 미셸 또한 사하이 선생의 불굴의 헌신과 조력으로 마흔 살에 대학을 졸업할 수 있었다.

 

 

비고츠키가 말한 환경적 측면에서 헬렌 켈러와 미셸의 중요한 공통점은 두 집안 모두 경제적으로 부유했고 자녀 교육에 대한 부모의 의지와 열성이 남다른 점이다. 이것은 평범한 가정에서 태어난 수많은 중증장애인들이 헬렌 켈러로 성장하지 못한 것은 자신이 못난 탓(즉, 개인적 결함 탓)이 아니라, 공동체의 무관심과 지원의 결여로 방치된 결과(즉, 사회적 손상 탓)임을 말해준다.

 

집안이 부유하지 않은 장애인에 대한 조력은 어떻게 이룰 것인가? 국가와 사회가 책임을 져야 한다. 비고츠키가 “모든 장애에는 보상이 뒤따라야 한다”고 한 것은 이런 뜻이다. 혹 한 사람의 장애인을 위한 조력 비용이 너무 크다는 것을 들어 장애에 대한 사회적 책임을 부정하고픈 것이 비장애인의 인지상정일 수 있다. 하지만, 이 같은 생각은 부도적한 이기주의를 넘어 실용적으로도 어리석은 사고방식일 뿐이다. 왜냐하면 우리 모두가 잠재적 장애인이기 때문이다. 불의의 사고로 인한 지체 장애의 가능성은 차치하더라도 노화에 따른 정신 장애는 그 누구도 피해갈 수 없는 것이 냉엄한 현실이 아닌가?

 

 

영화 ‘블랙’에서는 미셸이 치매로 모든 기억력을 상실한 사하이 선생의 손을 잡고 창밖에 떨어지는 빗물을 느끼게 하며 “워터”라는 낱말을 상기시켜 주는 마지막 장면이 감동의 절정을 이룬다. 이 교수법은 자신의 어린 시절에 스승으로부터 배운 것이기도 하고, 설리반 선생이 헬렌 켈러를 암흑세계(블랙)에서 빛의 세계로 인도해준 시발점이기도 하다. 장애를 결핍이 아닌 손상의 문제로 접근하여 모든 장애인들이 적극적인 사회적 조력에 힘입어 블랙의 절망을 딛고 희망의 나래를 펼쳐나가길 소망한다.

 

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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