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론과 실천

우연과 필연

리틀윙 2021. 1. 27. 10:42

경북은 땅이 넓고 험준해서 다니기가 힘든 편인데 최근에는 산간 오지에도 4차선 도로가 뚫려 교통이 점점 편리해지고 있다. 그런데 세상사가 다 새옹지마인지라, 복(福)과 화(禍)가 동전의 양면처럼 붙어 돌아가기 마련이다. 북동부에 위치한 어느 산간 지역에 주민들의 오랜 숙원인 4차선 도로가 개통되었는데, 역설적으로 이 편리한 길이 생기면서 이 지역에 전례 없는 우환이 생겨났다. 이 도로가 강원도 정선으로 연결되는데, 지역민들 가운데 정선 카지노를 들락거리며 패가망신하는 사례가 속출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인간 삶의 행불행이 개인의 자질에 의해 좌우되는지 사회 구조에 의해 좌우되는지에 관한 좋은 토론거리를 제공해주고 있다. 이 문제는 우연과 필연이라는 차원에서 접근할 때 그 진실이 보다 명쾌하게 규명된다.

 

카지노를 찾는 고객 가운데 가끔 잭팟을 터뜨리는 경우가 있다. 이 행운의 주인공이 아무개인 것은 우연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카지노에서 돈을 털리고 나온다. 고객과 카지노 업주 사이의 도박에서 업주가 이기는 것은 필연이다. 카지노의 모든 도박 기계가 그렇게 되도록 프로그램 되어 있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카지노는 좋았던 한 순간에 집착하는 인간 심리를 이용한 전술로 선량한 고객을 도박 중독으로 만들어 파멸시키는 무서운 계략까지 갖고 있다. 그래서 처음에 호기심에서 슬롯머신을 당긴 사람 가운데 돈을 잃은 사람보다 돈을 딴 사람이 패가망신을 할 가능성이 훨씬 높다.

 

이 악마 같은 계략이 도사리고 있는 메카니즘에 빠져들면 누구든 파멸하기 마련이니 이것은 필연이다. 그럼에도 "건강한 정신의 소유자는 도박에 빠져들지 않는데, 오직 문제 있는 사람들만 그렇게 되니 이것은 개인 자질의 문제"라고 생각하기 쉽다. 이런 사고는 우연과 필연이 맞물려 돌아가는 이치를 간과하는 오류를 범하고 있다.

호기심에서 카지노를 찾았다가 승용차 저당 잡히고 회사를 며칠 결근하다가 아예 거기서 눌러 앉아 실직자가 되고 급기야 한강으로 향하는 사람들 가운데 멀쩡한 사람들 건실한 회사원들이 많다. 카지노가 존재하는 한, 그 괴물의 희생양이 내 가족이 될지 옆집 사람이 될지는 순전히 우연의 문제일 뿐, 누구든 피해자가 생겨나고 그 집안이 송두리째 망가지는 것은 필연인 것이다.

 

나는 건강한 정신의 소유자여서 카지노로 인한 사회적 불행은 나와 무관한 문제라고 생각하는 것이 잘못된 또 다른 이유는, 도박 빚으로 궁지에 몰린 사람이 범죄를 저지를 가능성이 많고 그러한 범죄의 위험으로부터 자유로운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점을 망각하는 것이다.

 

모든 것은 연관되어 있다. 개인의 행불행과 사회의 행불행은 우연과 필연이라는 날줄과 씨줄에 얽혀 있기 때문에 사회적 불행이 모든 개인의 불행에 직간접적으로 연결되어 있음을 알아야 한다. 따라서 건강한 사회라면, 카지노와 같은 괴물은 없어져야 한다. 진정으로 건강한 정신의 소유자라면, 우리 사회 모든 이들의 행복을 위해 이런 괴물을 제거하는 데 앞장 서야 한다.

 

1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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