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1 34

광주

나의 살던 고향 대구에서 광주까지 자동차로 2시간 안에 갈 수 있다. 하지만 대구 사람에게 광주는 가깝고도 먼 곳이다. 거리는 가까워도 광주는 내겐 아무런 연고가 없는 도시여서 29살이 되어서야 처음으로 가봤다. 5.18을 머리와 가슴에 담아오기 위해 망월동 묘역을 찾았던 것이다. 그리고 정확히 29년이 지난 어제 같은 장소를 찾았다. 그간에 부침 많은 우리 정치사를 대변하듯 망월동 묘지는 명실상부한 국립묘역으로 거듭나 있었다. 정확한 명칭은 국립5.18민주묘지다. ‘민주묘지’라는 명칭이 시사하듯 지금 이곳에는 5.18 이후의 민주 열사들도 안장되어 있다. 내가 존경하는 김남주 시인, 나와 같은 나이로서 내가 첫 발령을 받은 1988년 군사독재에 저항하며 명동성당에서 몸을 던진 조성만 열사, 교사 출신으..

삶과 운동 2021.01.27

개인주의와 집단주의 그리고 교육운동에 대한 단상

집단주의가 실종되고 개인주의가 횡행하는 교직사회 문화에 절망을 느낀다! 이런 말을 내가 잘 쓴다. 이에 대해 “이기주의가 문제이지 개인주의는 나쁜 게 아니다”라는 식의 발론을 제기하는 분들을 접한다. 맞는 말이다. 개인과 전체의 관계가 그러하듯, 개인주의(individualism)와 집단주의(collectivism)은 변증법 용어로 양극 범주쌍(bi-polarity)을 구성한다. 서로 대립적인 두 요소의 가치를 동시에 생각하는 것이 변증법이다. 반대로, 둘 가운에 어느 하나를 배제하고 다른 하나를 선택하는 접근법이 형이상학이다. 이 문맥에서 ‘형이상학’이라 함은 마르크스주의 철학 용어로서 존재론에서 말하는 형이상학과는 다른 개념이다. 이 용어는 간단히 ‘이분법적 사고’와 동일한 개념이다. 유감스럽게도, ..

삶과 운동 2021.01.27

지금 교사에게 전교조는?

이 학교에서 2년을 보냈다. 다른 직장도 그러하겠지만, 학교라는 공동체의 보람과 행복은 구성원들, 그 중에서도 교사집단에 달려 있다. 교사들끼리 따뜻한 관계망을 뜨개질해가며 바람직한 학생교육을 위해 서로 선한 영향력을 주고받는 학교라면 매일의 교직 일상이 즐겁고 신명날 것이다. 내가 볼 때 이 학교는 그럴 수 있는 “가능성”을 갖추고 있다. 교사 개개인의 면면을 뜯어보면 대체로 좋은 선생님들이 많다. 그 중 몇몇은 요즘 보기 드물게 교사로서 자질과 품성이 훌륭한 분들이다. 나의 교직 삶은 전교조와 함께 걸어왔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전교조는 내가 교단에 처음 선 88년에 전교협(전국교사협의회)으로 시작하여 이듬해에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을 선포하였다. 과거에도 지금도 또 앞으로도 나의 삶은 “모든 사람이 인간..

삶과 운동 2021.01.27

교육적인 것이 인간적이고, 인간적인 것이 교육적이다

연말정산 때문에 학교에 갔다. 마침 교장선생님이 계셨다(방학 중에 교사는 학교에 안 나와도 되지만 교장과 교감은 한 사람씩 교대로 근무한다). 연말정산 끝내고 교장실에 들렀다. 집으로 바로 갈 수도 있지만 오랜 만에 학교에서 만났는데 그냥 사라지는 것이 예의(상하 관계의 예의가 아니라 비슷한 연배의 동료로서의 예의)에도 어긋날 뿐더러, 그간에 어떻게 지냈는지 학교에 별 일은 없는지 궁금한 마음에서 찾았다. 돌이켜보니, 지금껏 교직생활에서 이렇듯 따뜻한 마음으로 교장실 문을 노크하는 것이 처음인 것 같다. 몇 년 전 어느 학교에서는 내가 발령 받아 갈 때 교장실에서 교장과 교감이 머리 맞대고 1시간 동안 대책회의를 열었다 한다. 그 말을 내게 해준 이는 다름 아닌 교감(교장 교감 모두 나의 선배다)이었다...

교실살이-2 2021.01.27

추상 abstract

어떤 낱말은 영어보다 우리말이 훨씬 어렵다. ‘추상’이라는 낱말이 그러하다. 추상에 해당하는 영단어 abstract는 1)형용사 2)명사 3)동사를 동시에 함의한다. 이를 우리말로 옮기면 (형)은 추상적인, (명)은 추상, (동)은 추상하다가 된다. 그런데 우리 일상에서 형용사로서 ‘추상적인’이란 말은 잘 써도 명사 ‘추상’과 동사 ‘추상하기’는 거의 안 쓴다. 낱말을 쓸 일이 없으면 해당되는 개념이 우리 관념 속에 자리하지 않는다. 명사로서 ‘추상’이란 낱말 대신 ‘초록’이란 말을 쓰기도 한다. 사실 초록(抄錄)은 추상이란 말보다 더 어렵다. 대학원에서 논문을 써본 사람은 논문 말미에 ‘영문초록’이란 것을 작성한다. 논문 내용을 압축하여 영문으로 나타낸 것이 영문초록인데, 영어로 ABSTRACT(초록)..

비고츠키 2021.01.27

학교에서 민주주의교육이 실패하는 까닭에 관한 일문일답

◎ 학교는 뭐 하는 곳인가? -- 학교는 학생을 가르치는 곳이다. ◎ 학교는 학생에게 무엇을 가르쳐야 하는가? 학교교육의 궁극목표는 무엇인가? -- 민주주의다. 기독교는 사랑, 불교는 자비, 학교교육은 민주주의를 지고의 가치로 삼는다. ◎ 민주주의가 중요한 가치라는 것은 누구나 아는 바이지만 학교교육에서 학생들은 민주주의를 잘 배우지 못한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우리 교육이 입시 위주로 흘러가서일까? -- 꼭 그렇지는 않다. 학교교육 문제의 기저에 질곡의 입시제도가 자리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이를테면 초등학교 학생들이 민주주의를 제대로 배우지 못하는 것은 입시제도와 무관하다. 구조적인 모순의 해결은 중요한 문제지만, 여기서는 학교교육에서 민주주의가 뿌리 내리게 하기 위해 현 시점에서 우리 교사들이..

교실살이-2 2021.01.27

자유, 자기의 이유로 살아가기

방학하기 며칠 전에 교직원 회의가 소집되었다. 내년도 예산안을 검토하기 위함이다. 며칠 전에도 두 번의 미팅(회의)이 있었기에 회의에 대한 교사들의 회의감이 증폭되었다. 이 두 번의 미팅은 행정실장 때문이었다. 한 번은 2년 동안 이 학교에서 함께한 기존 실장과 이별의 정을 나누기 위한 자리였고 다른 한 번은 새로 부임한 실장과 상견례를 하기 위한 자리였다. 행정실장과의 이별과 환영을 위한 두 번의 회의 소집은 인간적으로 이해가 되는 부분이고 또 불과 10여 분만에 끝났기 때문에 별 불만이 없었다. 그런데 예산안 문제로 1시간 넘게 회의를 여는 것은 교사들이 납득하기 힘든 것이었다. 전체 교사들이 한 명씩 앞에 나와 자신이 맡은 업무와 관련된 예산 편성 내역을 브리핑하고 동료 교사들의 질문이나 의견을 주..

교실살이-2 2021.01.27

실천과 깨달음

교직생애 처음으로 ‘시 쓰기’를 시도해봤다. 해마다 글쓰기 지도는 나름 열심히 했지만 시 쓰기를 공 들여 지도하기는 처음이다. 그 이유는, 글짓기(산문)보다 시 쓰기(운문)가 더 어렵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막상 아이들에게 시를 쓰게 했더니 좋은 작품이 마구 쏟아져 나와 깜짝 놀랐다. 그것도 6학년이 아닌 3학년이 말이다. 더욱 놀라운 것은, 평소 산문은 단 한 줄도 못 써 글짓기 과제는 아예 포기하는 ‘쓰기 포비아’ 아이들도 근사한 창작 시를 완성해낸 점이다. 애초에 이 과업은 미술수업과 국어수업을 겸하여 ‘시화 그리기’로 목표를 잡았다. 전날 숙제로 자기 시를 지을 사람은 시를 짓고 시 짓기가 부담 되는 사람은 인터넷에서 좋은 시를 검색하여 공책에 적어 온 뒤 미술 시간에 옮겨 쓰고 그림을 완..

교실살이-2 2021.01.27

머리와 가슴

일상 속에서 신문이나 책을 읽다가 어떤 생각이 떠올라 그것을 글로 남기고 싶을 때가 있다. 감동적인 영화 한 편을 보고 자신의 상념을 감상문의 형식으로 쓰고 싶을 때가 있다. 그렇다면 글을 쓰는 작업은 즉각적으로 실행해야 한다. 시간이 흐른 뒤에는 못 쓴다. 병뚜껑을 열어 놓은 소주가 하룻밤 자고 일어나면 술맛이 가셔버리는 것처럼, 글을 쓰기 위한 우리의 정신도 시간이 지나면 휘발되어 버린다. 떠오른 생각을 즉시 기록해두더라도 다음 날 글 작업을 하려 하면 글이 잘 안 써진다. 우리의 정신을 구성하는 두 요소인 이성과 감성 가운데 전자는 보존되었으되 후자의 휘발은 막을 수 없기 때문이다. 이 맥락에서, 우리의 사고가 머리와 가슴 가운데 무엇으로 말미암는가 하는 의문의 답을 찾을 수 있다. 머리가 가슴을 ..

교육을 말한다 2021.01.27

분노한 사람들을 효율적으로 응대하기

10~20년 전만 해도 학교에서 교사가 두려워해야 할 사람은 없었습니다. 있다면 교장 교감 정도인데, 이 마저도 소신 있는 교사는 위축될 필요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지금 교장 교감보다 더 두려운 사람이 있으니 학부모입니다. 예전에는 교사가 학부모에게 갑질을 했지만 지금은 전세가 완전히 역전되었습니다. 학부모가 학교교육의 한 주체로 우뚝 서게 된 것은 분명 발전의 한 모습이지만, 간혹 선량한 교사들이 학부모들로부터 부당한 대접을 받고 내상을 입는 경우를 자주 보게 되며, 나 역시도 그런 험한 일을 겪을까봐 늘 불안 속에 살아가는 게 모든 교사들의 운명이 아닌가 싶습니다. 이것은 피해 교사에게는 물론 학생들에게도 바람직하지 않은 일입니다. 이런 불상사로부터 자신을 지키는 것은 오직 교사의 몫입니다. 격한 분..

교실살이-2 2021.01.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