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교육/삶과 공부

글쓰기 클리닉

리틀윙 2021. 1. 27. 10:41

국어나 영어의 교육목표는 말하기와 듣기로 압축된다. 입말의 경우는 말하기/듣기이고 글말이라면 읽기/쓰기이다. 어떤 경우든 이 과업에는 “의미”가 동반되어야 한다. 어린 아이가 칸트가 쓴 문장은 읽을 수 있지만 그 뜻은 이해할 수 없다. 말하기도 마찬가지다. 학교나 집에서 있었던 일을 말해보라 하면 무의미하게 나열하기만 하는 아이들이 많다. 입말보다 글말이 더욱 그러하다. 아이들이 글쓰기를 어려워하는 가장 큰 이유가 이런 것일 거다.

 

아이들에게 글쓰기가 어렵듯이 교사들에겐 글쓰기 지도가 어렵다. 글쓰기를 제대로 지도하려면 교사 또한 마음을 다잡아야 한다. 1학기와 2학기에 한 단원씩 글쓰기를 다루고 있는데 이 단원을 다른 단원처럼 쓰르륵 지나치면 아이들의 글쓰기 실력에 변화가 없다. 반대로 교사와 아이들이 치열하게 부대끼며 한바탕 에너지를 쏟고 나면 아이들의 글이 달라진다. 이 특별한 교수법에 ‘글쓰기 클리닉’이란 이름을 붙이고서 “선생님에게 클리닉 받을 사람 줄 서세요”라고 안내한다.

 

# 글쓰기 클리닉 전략 1

친구들의 글을 함께 읽으며 타산지석으로 글쓰기를 배우게 한다.

 

클리닉을 요청한 학생들의 글을 하나하나 ‘실물화상기’에 올려놓고 읽어 내려가면서 잘 된 점과 고칠 점들을 짚어준다. 이 방법이 좋은 것은,

 

1) 효율적으로 지도할 수 있다. 개별 학생을 맨투맨으로 지도하는 하는 것은 시간이 많이 걸린다. 그리고 특정 학생에게 조언할 내용은 다른 학생들에게도 적용될 것이기에 여러 학생들에게 같은 말을 여러 번 하지 않아도 되니 효율적이다.

2) 아이들의 글들은 대부분 생활문(일기)인데 개인의 삶을 반 전체 아이들에게 노출함으로써 공동체 정신과 연대감을 다질 수 있다.

3) 아이에게 가장 좋은 스승은 또래다. 어른이든 아이든 타인이 쓴 좋은 글을 모방하면서 글쓰기 실력이 향상되는 법이다. 그런데 아이들에게는 교과서에 나오는 글처럼 완성된 글보다는 또래가 쓴 좋은 표현이라든가 효율적인 전략을 어깨너머로 배우는 것이 훨씬 실질적인 도움이 된다. 나와 비슷한 친구가 저렇게 하니 나도 할 수 있다는 생각을 품게 되고 반대로 친구가 범한 오류를 피하기 위해 스스로를 규제하는 성찰의 기회로 삼을 수 있다.

 

 

#2. 대상과 나를 연결 짓게 하라.

글쓰기를 어려워하는 아이들이 범하는 가장 흔하고 심각한 오류는 있었던 일을 기계적으로 나열하는 데 그치는 것이다. 학교에서 있었던 일을 쓰라고 하면 1교시에 국어 하고 2교시에 체육하고 3~4교시에 미술하고 점심 먹고 집에 왔다는 식이다. 서두에서 말한 “의미”가 실종된 전형적인 글이다. 아이들이 이런 방식으로 흐르는 이유는 이렇게라도 몇 줄이라도 채워 빈곤한 사고력을 만회하려는 심산이다. 따라서 이런 아이들에게는 글의 분량에 대한 부담을 갖지 않고 단 한 줄을 쓰더라도 자기 말을 쓰게 하는 배려가 우선돼야 한다.

 

자기 말을 쓰게 하기 위한 나의 전략은 “대상을 나와 연결 짓기”라는 프레임을 아이들에게 주입시키는 것이다. 그리고 이 프레임이 잘 구현된 아이들의 글을 공유시키는 것이다. [꽃다발]이란 글에서 “비록 지금은 시들었지만 아직도 내 마음에 담아두고 있다”는 아이의 표현이 그 빛나는 전범을 보여주고 있다. 보통의 아이라면, “엄마에게 꽃다발을 받아서 기분이 좋다” 정도로 그칠 텐데 이 아이는 자신이 난생 처음으로 받은 꽃다발에 매우 특별한 의미를 부여한 점에서 좋은 글이다.

 

 

‘꽃다발’을 모델로 대상을 나와 연결 짓는 글쓰기를 강조했더니 바로 다음 주에 한 아이가 재미있는 글을 써왔다. 이 글은 ‘대상과의 연결 짓기’를 너무 많이 해서 흠이 될 정도로 아이는 나의 가르침을 완전히 숙달한 결과로 보인다.

 

- 붕어빵이 내 눈에 쏙 들어왔다.

- 나는 시든 꽃에 물을 줘서 활짝 핀 것처럼 해맑게 웃었다.

- 뜨끈뜨끈 얼음사람이었던 내 몸을 불로 살살 녹여주는 것 같았다.

- 나는 물고기가 되어 바닷속을 헤엄치며 다니는 것 같았다.

- 내가 물고기가 된 것 같은 신비하고 정말 맛있는 붕어빵이었다.

 

 

#3. 교과서에서 배운 감각적 표현을 활용하게 하라.

3학년 국어 글쓰기 단원에서 ‘감각적 표현’이란 개념이 일관되게 강조되고 있다. 글을 읽는 사람이 마치 직접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져지듯이 생생하게 표현하라는 것인데, 사진 속 아이들의 글들이 모두 감각적 표현이 잘 쓰인 예에 해당하지만, 그 중에서도 치과에서의 끔찍한 경험을 표현한 글은 그 느낌이 너무 생생해서 치과의사의 전동드릴 소리와 아이의 고통이 읽는 이에게 생생하게 전해져온다.

 

의미가 실종된 무미건조한 글들의 특징은 글 쓰는 주체와 객체(대상)이 물과 기름처럼 따로 따로 존재하는 것이다. 이것은 일종의 소외 현상으로 강 건너 불구경하는 식이다. 어떤 대상에 의미를 이끌어내기 위해서는 강을 건너가서 불을 끄든지 아니면 최소한의 조바심을 내야 한다.

그런데 자신에게 닥친 비범한 고통을 마주했을 때는 “주체와 객체의 연결”이 저절로 이루어진다. 치과에서의 끔찍한 경험을 글로 쓴 아이의 글이 그런 예인데, 특별한 상황을 감안하더라도 이 아이의 글은 읽는 재미도 특별하다.

 

해맑은 동심이 흠뻑 배어있는 글을 읽는 즐거움만으로도 글쓰기지도의 노고에 대한 달달한 보상이다.

 

11.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