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교육/삶과 공부

공부의 즐거움

리틀윙 2018. 10. 26. 16:10

오늘도 도서관에서 공부하고 왔다. ()부터 ()까지 중간에 안산에 강의하러 간 하루를 빼고 1주일 꼬박 도서관에 출근했다.

 

3 수험생과 취준생들이 북적이는 도서관 열람실에서 교사인 사람이 이렇게 열공하니 뭔가 좀 이상하다 할 것이다. 혹 교사인 어떤 이웃이 이곳에서 나를 만나면, ‘전문직(장학사) 시험 준비 하는가?’ 물어올 것 같다.

 

나는 공부하는 게 너무 즐겁다. 해서, 학창시절에 이렇게 열공 했더라면 1등급에 들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는데, 나의 답은 아니오.

 

지금 같은 공부에 대한 흥미나 남다른 지적 욕구가 학창시절에도 없지는 않았을 것이라 생각한다. 이런 상태 그대로 만약 학창시절로 돌아간다 하더라도 나는 열공 하지 않을 것 같다. 그 시절과 지금의 차이는 시험 치고 안 치고에 있다. , 지금 만약 내가 무슨 시험에 대비해서 공부를 하라고 하면, 이처럼 열심히 하진 않을 것이다.

 

이 글을 쓰면서 찾아든 통찰인데, 시험의 가장 심각한 폐단은 학습자가 풀고 싶지 않은 문제도 풀어야 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학창시절을 돌이켜보면 문제 같지 않은 문제를 얼마나 많이 만나 소모적인 스트레스를 받아 왔던가? “바보 같은 대답 없다. 오직 바보 같은 질문이 있을 뿐이다는 교육학 경구처럼, 우리는 바보 같은 문제를 풀지 못해서 스스로를 바보로 폄하하는 세뇌교육을 받아 왔다.

 

학이시습지면...

공자님 말씀처럼, 배우고 때로 익히는 인간활동(=학습)이 즐거움이 되려면 우리 학생들을 시험으로부터 자유롭게 만들어야 한다. 문제 같지 않은 문제를 출제해서 정답 꼭꼭 숨겨 두고 학생들에게 찾기를 강요하는 숨바꼭질은 학생의 성장에 아무런 도움 안 되는 정신고문일 뿐이다.

 

배움의 과정에서 평가라는 것이 꼭 필요하다면, 시험문제는 학교나 교육당국이 일방적으로 출제할 것이 아니라, 학생들이 스스로 평가도구를 제작하게 할 필요가 있다. 공부의 본질이 자기주도적 학습이라면, 시험 또한 그런 모습이어야 하는 것이다.

 

나이 들어서 도서관을 찾아 공부하는 게 이상할 것이 전혀 없다. 공부는 나이 들어서 하는 것이다. 시험으로부터 해방되어 스스로 읽고 싶은 책 읽고 탐구하고 싶은 문제의 인과관계를 파헤치는 즐거움을 만끽하는 공부는 오직 학교라는 울타리를 벗어날 때 가능한 것이다.

 

교육의 본질은 평생교육lifelong education이다.

학습 의욕은 시험이라는 외발적 동기보다 자기 성장이라는 내발적 동기에 의해 추동되어야 한다. 때문에, 기나긴 평생교육의 과정 속에서 진정한 공부는 학교 교문을 나서는 순간부터 시작된다.

 

내발적 동기에 추동된 자율학습은 즐겁다. 그 즐거움 속에서 우리는 나날이 성장해가고 우리 삶은 풍요로워진다.

 

學而時習之 不亦說乎.


8.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