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교육/삶과 공부

공부

리틀윙 2017. 2. 15. 15:07

 

공부 -1

강남 대치동, 명문 입시학원으로 유명한 동네다.

그러나 학원관계자들의 견해로는 이곳에서 효과를 보는 학생은 10% 정도밖에 안 된다고 한다. 더욱 흥미로운 것은, 10%의 학생들은 다른 학원에서 공부를 하거나 혼자서 공부를 해도 효과를 볼 아이들이라고 한다.

수능 만점생들이 인터뷰에서 혼자서 공부했다는 말은 영 거짓말은 아닌 것이다. 모든 학습은 결국 스스로 하는 것이다. 자신을 가르칠 수 있는 사람은 자기 자신밖에 없다. 자전거 타기를 어떻게 배웠는지 생각해보라. 교사든 스승이든 멘토든 주변의 인물들은 우리에게 어떤 자극이나 방향성을 제시할 뿐 그 가치를 수용하는 것은 결국 자신의 몫이다. 이 이치는 똑같은 스승에게 배웠는데 학생의 성장이 저마다 다른 것을 봐도 자명해진다.

학원 다니면 성적이 오르는 것은 방금 말한 가치로운 자극이나 방향성의 제시와도 무관한 아주 얄팍한 요령을 습득하는 것 이상은 아니다. '족집게 과외'란 말 자체가 장기적으로 볼 때 학생의 성장에 독이 되는 자충수임을 시사한다. 모든 학원교육은 족집게로 이루어진다. 모든 노력들이 단기간에 성적 올리기 위해 맞추다 보니 근시안적으로 흐르고 편법으로 일관한다. 심지어 애들 두들겨 패며 폭력과 폭언을 너무 쉽게 일삼는데 어처구니없게도 부모들이 이를 "기꺼이" 승인한다. 어떻게든 성적만 올려주면 된다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학원숙제는 열심히 하고 학교숙제는 방치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이런 식의 교육이 학생의 성장에 오히려 독이 된다는 것은 학원을 끊었을 때 깨닫게 된다. 스스로 공부하는 요령과 방법을 터득하지 못하다 보니 혼자서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모르는 것이다. 이건 마치 약물에 중독된 사람이 약을 끊었을 때 무기력하게 되는 이치와도 같다. 따라서 그런 상황에서 다시 학원을 찾는 것은 약물 중독자가 다시 약에 의존하는 것과도 같다. 담배나 마약은 하루라도 빨리 끊는 게 바람직하듯 학원은 빨리 벗어나는 것이 최선이다.

자전거 타기도 혼자 배우는 것보다 전문가가 도와주면 훨씬 빨리 배우는 것은 사실이다. 따라서 스승이 없는 것보다 있는 게 낫다는 것은 자명하다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이런 논리가 놓치고 있는 중요한 사실이 있다. 혼자 무엇을 터득하는데 익숙한 사람은 다른 새로운 세계에 입문할 때 다른 사람보다 훨씬 빨리 배운다. 그리고 사물의 본질을 정확하게 꿰뚫어 보는 안목과 통찰을 길러 간다.

배움은 본질적으로 자기주도적 학습인 것이다.

물론 어떤 공부는 스승이 꼭 필요한 경우도 있다. 혼자서는 아무리 애써도 일정 목표에 도달할 수 없는 배움... 이런 경우에 해당하는 예로 나는 재즈따위를 배우는 것밖에 떠올리지 못하겠다만... 이런 특수한 배움이 아닌 '지적 학습'에서 스승이 꼭 있어야 할까? 책이 있는데, 스승이 왜 필요한가? (다음 글에서 이것을 말하겠다.)

 

 

 

 

<공부 2>

어른들도 공부를 한다. 이 글은 어른들의 공부에 관한 비판적 테제다.

나도 한때 취미로 음악활동을 조금 했지만, 내 주위에 음악을 업으로 하는 벗이 많다. 그 중 드럼을 치는 한 친구가 한 말을 지금 이야기의 소재로 삼고자 한다. 이 친구는 가정형편이 어려워 중학교를 다니고선 바로 사회생활을 하며 산전수전을 다 겪은 자수성가형 인물이다. 중학교 졸업 후 한동안 못 보다가 내가 대학 다닐 때 우연히 음악을 매개로 조우하게 되었다. 우리가 학교에서 영어 단어를 외우고 수학 문제 푸는 법을 배울 때 이 친구는 인생을 배우고 음악에 심취해 갔던 것이다. 학교가 아닌 삶 속에서 세상 이치를 깨우쳐 가는 사람들은 말 한마디를 해도 사물의 정수를 맛깔나게 잘 표현하는 법이다. 이 친구가 한 말이, “판이 선생이다.”는 것이다. ‘이라는 것은 레코드판을 말한다. 이 친구는 당시 지역에서 수준급 드럼 연주자로 명성을 얻고 있었는데, 자신은 남이 모르는 드럼 주법이라든가 리듬 패턴을 죄다 레코드 판을 듣고 분석하여(음악인의 용어로 곡을 딴다고 한다) 자기 것으로 만들었다고 한다.

이 친구의 말을 패러디 하여, 나는 책이 선생이다는 말을 하고자 한다. 레코드 판 속에 세계 최고의 드럼 연주자가 드럼 이렇게 치는 것이다라고 가르쳐 주는데 초보 단계에선 몰라도 일정 수준이 되면 굳이 스승을 찾을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책을 통해 당대 최고의 지성을 다 만날 수 있는데 강의는 뭐 하러 듣는가 하는 것이 나의 논리다.

팔순 넘은 우리 어머니는 1년에 한 두 번씩 절에 가서 스님에게서 설법을 듣고 와서 내게 이러니저러니 전달연수를 하곤 하신다. 돌팔이 땡중이 떠드는 말도 안 되는 수준 이하의 말씀을 대단한 배움이라 가슴에 묻으시며 지적 갈증을 풀어 가시는 어머니를 보면서 사람은 죽을 때까지 배운다는 평생교육의 개념을 실감하는 것이지만...... 나는 우리 어머니와 같은 연로하신 분이나 하다못해 동네 아지매들을 위한 주부아카데미 따위의 강좌를 들으러 가는 것은 몰라도 지성인집단이라는 교사들이 명사 초청 강연회에 열광하는 것을 이해할 수 없다. 신영복의 말씀을 듣고 싶으면 강연장을 찾을 것이 아니라 신영복 선생이 지은 책을 사서 읽어보면 된다.

책보다 강연은 좋은 점보다는 안 좋은 점이 더 많다. 음성 언어는 문자 언어보다 우리의 감성과 이성에 훨씬 용이하게 전달되는 이점은 있다. 그러나 책은 내가 필요한 부분을 골라서 읽으면 되지만, 강연은 내가 다 아는 이야기도 억지로 들어야 한다. 반대로 무슨 말인지 이해가 안 갈 때는 다시 들을 수도 없다. 말하자면 책이나 비디오와 달리 라이브에선 '되감기' 기능이 없는 것이다. 이런 이치로 나는 영화도 제대로 보기 위해선 극장을 갈 것이 아니라 집에서 DVD로 빌려보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그나마 강연에서는 질문을 할 수 있지 않냐고 생각하기 쉬운데, 실제로 대부분의 강연에서 강연자와 청중이 자유롭게 질의응답하거나 토론을 나누는 경우는 거의 없다. 차라리 혼자서 책을 읽고서 저자에게 메일을 보내거나 블로그를 방문하여 글 남기는 것이 훨씬 심도있는 대화가 가능할 것이다.

노움 촘스키의 말씀을 듣기 위해 미국 갈 생각을 품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촘스키의 아이디어를 내 지성의 양분으로 삼고 싶다면 그가 쓴 책을 읽어보면 된다.

이렇게 생각하면...... ~ 대학교라는 곳을 갈 필요도 없다.

서울대든 경북대든 한국의 무식하고도 오만한 대학교수들 강의 들으러 갈 필요가 뭐 있나? 사실 국내에서 탁월한 지식인들은 죄다 대학 밖에 있지 않은가? 대학 속에는 지식 장사꾼들밖에 없지 않은가? 한국의 대학이 대학인가?

그런데 책으로는 세계 최고의 지성을 얼마든지 만날 수 있다. 심지어 지금 이 세상에 없는 지식인들도 만날 수 있다.

그럼에도 죽으나 사나 대학을 가는 것은... 종이 쪼가리 한 장 받으러 가는 게 아닌가? 이건 일종의 물신숭배.

한때 무협지와 무협 만화를 열심히 본 적이 있다. 무협지에서 가장 흔한 테마가 무슨 비법을 담은 한 권의 책을 손에 넣기 위해 주인공이 천신만고의 고생 끝에 그것을 구하고 일약 중원의 절대강자로 성장한다는 이야기다.

마르크스의 말대로 당대 인간의 역량은 생산력이라는 물질적 한계를 못 뛰어 넘는 법이어서... ‘복사기 한 대만 있어도 그런 피비린내 나는 일대 살육의 혼란 따위는 벌어지지 않을텐데하는 생각을 나는 책장 넘길 때마다 하곤 했다.

하지만 그 시대엔 충분히 그랬다. 한 권의 책이 개인이나 조직에 엄청난 영향력을 미칠 것이기 때문이다. 강연도 DVD도 없이 그 때는 한 권의 책으로 엄청난 배움을 이룰 수 있었던 것이다. 지금 우리는 한 권의 책을 놓고 다툼을 벌일 필요가 없는 세상에 살고 있다. 공부하고자 하는 의지만 있으면 세상에 늘린 것이 책이다. 좋은 책이 무한한데 도서관이나 서점을 찾을 것이지 왜 강연회를 찾는가.

책이 스승이다. 동네 아지매들이 아닌 선생이라는 사람들이 강연에 너무 많이 의지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진리는 책 속에 다 있다. 혼자 읽는 것이 힘들면 독서토론회에 나가 집단지성의 덕을 보는 것도 좋다.

 

 

2014. 1.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