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교육/삶과 공부

네가 사랑하고 싶은 것을 사랑하라!

리틀윙 2015. 11. 27. 08:02

최근 프로젝트 수업이란 걸 처음 시도해 보는데 이번 수업의 주제로 삼았던 것이 ‘빈센트’다.
한 아이가 빈센트에 관한 몇 권의 책자를 들고 왔고 그 중 일부를 내가 전체 아이들에게 읽어 주었다. 그 책 속에 빈센트가 한평생 좌우명으로 삼았던 금쪽같은 글귀가 있어 아이들과 공유했다.

 

네가 사랑하고 싶은 것을 사랑하라!

 

인물이 영혼 깊숙이 품은 좌우명인 만큼 이 말 속에 빈센트에 관한 모든 것이 들어 있다. 이 말을 이해하면 빈센트의 삶을 이해할 수 있다. 그리고 빈센트가 우리에게 주는 가르침의 전부가 이 말 속에 있다고 해도 좋을 것이다.
그러나 4학년 아이들이 이 말을 한 눈에 이해할 수는 없다. 자본주의 세상 물정을 모르는 아이들에게 이 말은 “사람은 누구나 죽는다.”라는 말처럼 동어반복의 명제로 들릴 것이다. “자신이 사랑하고픈 걸 사랑하는 건 당연한 것 아니냐?”는 식으로 말이다. 그렇다. 어린 아이들은 자신이 사랑하고 싶은 것을 사랑한다. 이를테면, 아이들은 수학을 싫어하고 체육을 좋아한다.


아이들이 모르는 것은, 진부한 말로 “이상과 현실은 다르다”는 것이다. 아이들의 사고로 당연한 무엇이 현실 속에선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이상과 현실의 괴리가 발생하는 인과관계를 이해하는 것이 진정 의미있는 공부가 될 수 있다. 교과서로 배울 수 없는 살아 있는 배움으로서 프로젝트 수업의 의의도 이런 것이 아닐까 싶다.

이전 시간의 수업을 통해 아이들은 빈센트의 특이한 삶과 그의 독특한 작품세계에 대해 배웠다. 빈센트는 잘 팔릴 법한 그림보다는 자신이 그리고 싶은 그림을 그렸다. 빈센트는 가난한 사람들의 진솔한 삶을 화폭에 담고 싶었는데(그 전형이 ‘감자 먹는 사람들’이다), 그림이라는 상품을 구매할 여유가 있는 부자들은 그런 그림을 원치 않았다. 그래서 그는 극도의 경제적 궁핍 속에서 몸과 마음이 피폐해져 갔고 마침내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권총으로 자살한 것이나 자신의 귀를 자르는 엽기적인 행각도 “자신이 사랑하고픈 것을 기꺼이 사랑하고자 한” 가난한 예술가의 필연적 귀결이지 ‘정신병’으로 호도해선 아니 될 일이다. 다음 시간에 다룰 돈 매클린의 아름다운 노래 ‘Vincent’를 통해 이러한 점이 보다 쉽게 이해될 것이다.

 

 

 

프로젝트수업은 하나의 주제를 통해 여러 과목의 공부를 동시에 하는 것으로서 ‘융합교육과정’과 관계있다. 빈센트의 삶을 이해하기 위해선 근대유럽자본주의사회의 시대상을 공부하고, 빈센트의 작품을 통해 미술(감상)을 배운다. 또 돈 매클린의 노래를 통해 음악과 영어를 배우며 새로운 시선으로 빈센트의 삶을 들여다본다.
 
Now I understand
What you tried to say to me
And how you suffered for your sanity
And how you tried to set them free

 

이 훌륭한 노랫말의 압권은 3행이다. 빈센트는 “온전한 정신(sanity)” 때문에 고통을 겪었던(suffered) 것이다. 사실, 들뢰즈의 말대로, ‘자본주의’ 자체가 정신분열이다. 정신병적인 사회에서 온전한 사람이 미치광이가 되고 반대로 제 정신이 아닌 사람은 정상인 취급 받는다.

그렇다.
자본주의사회에서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분열적 삶은 필연이다. 그 누구도 이 엄청난 모순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어린이들에겐 너무나 자명한 것처럼 보이는 “네가 사랑하고픈 것을 사랑하라”는 말이 빈센트라는 위인의 좌우명이 된 것은, 현실 속에서 우리가 사랑하고픈 것을 사랑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빈센트가 살았던 19세기까지 갈 것도 없이, 지금 당장 우리 주위를 둘러보자. 아니 이 글을 읽는 우리는 과연 자신이 사랑하고 싶은 것을 사랑하며 살고 있는지 돌아보자.

삶은 주로 선택의 문제다. 그러나 선택은 물질적으로 조건화되는 까닭에 우리는 우리가 사랑하고픈 것을 사랑하지 못하는 것이다. 어릴 때 누구나 이런저런 장래희망을 품지만, 세상물정을 알고 나면 자신이 진정 바라는 것과 무관한 “분열적인” 선택을 하게 된다. 공부 못 하는 아이는 말할 것도 없고 공부 잘 하는 아이의 경우도 그러하다. 이를테면, 피를 보면 기겁을 하는 아이가 의대를 진학하는 것이다.

자신이 진정으로 사랑하고 싶은 것을 사랑하기 위해선 우선 “내가 사랑하는 것이 과연 무엇인지” 깨닫는 것이 중요하다. 사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죽을 때까지 자신이 진정 사랑하는 것이 뭔지조차 모르고 살아간다. 철학이 부재한 삶을 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철학적 성찰을 바탕으로 용기와 결단이 요구된다.

전도양양한 증권회사 직원이 어느 날 모든 부와 단란한 가정을 뒤로 하고 그림도구를 챙겨 들고 집을 나가 버린다. 서머셋 모옴의 소설 [달과 6펜스] 속의 주인공으로서 고흐와 닮은꼴 삶을 산 화가 고갱의 이야기다. 고갱은 찢어지게 가난한 고흐의 자취방에 눌러 앉아 “우리가 돈이 없지 가오가 없냐?”는 호기를 부리며 동지적 관계를 유지하다가 고흐와 대판 싸운 뒤에 타히티로 향하여 원시적 삶을 살다가 나병으로 죽는다. 이 또라이 같은 비운의 두 예술가의 삶이 우리에게 선사해주는 교훈을 생각해보자는 것이 내가 이 글을 쓰고 또 프로젝트 수업을 기획하는 의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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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번 뿐인 인생, 어떻게 살 것인가에 관한 성찰은 정말 중요하다.
하나 뿐인 우리 삶을 후회 없이 살기 위해, 빈센트의 말대로 우리가 사랑하고 싶은 것을 사랑하며 사는 것이다.
교사인 우리가 지향해야 할 삶은, 교실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삶이지 교실과 수업을 벗어나 교장실로 진출하는 삶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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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경북교육연구소 공감 창립총회에서 만난 남** 선생.
내 초임 때 전교조 활동 하면서 인연을 맺은 중등 수학선생이다. 열혈 활동가가 시나브로 운동판에서 자취를 감춰 어디서 뭐하고 있나 싶어 알아 보니 국악에 미쳐 있었다. 이 분은 볼 때 마다 변신을 한다. 지금 전과해서 수학 선생 때려치우고 음악 선생 하고 있단다.
자신이 사랑하고픈 것을 마침내 사랑하게 된 남** 선생에게 큰 축하와 응원을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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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은 주로 선택의 문제이고, 선택에는 혜안과 용기가 요구된다.
답은 언제나 자기 속에 있다. 자신과 대화하라, 진정으로 내가 원하는 삶이 무엇인지...... 내 책에서 릴케의 말을 빌려 한 ‘내적 필연성’이다.
서른 즈음의 젊은 교사가 가야 할 길이 승진인지 자기 영혼에게 물어보라.

나를 추종(?)한다고, 그간 쌓아둔 승진 점수 다 포기하고 ‘현장교육 문제를 노래하는’ 교육 뮤지션의 길을 선택한 박**​ 선생에게도 응원의 박수를 보낸다.

 

네 갈 길을 가라, 남이야 뭐라 하든!
Segui il tuo corso, e lascia dir le genti! - 단테 & 마르크스

 

 

 

2015.1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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