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교육/삶과 공부

혁신교육 비틀어 보기 (1) 학력과 평가에 관하여

리틀윙 2015. 1. 14. 18:32

 

 

 

지난 1.9()~1.11() 작은학교연대 주관으로 워크숍이 열렸습니다. 그 주제는 혁신교육 비틀어 보기였습니다. 현 단계에서 꼭 필요한 과업이라 생각합니다. 20차 모임이라 하니 딱 10년을 지나오고 있네요. 10년 전에는 앞만 보고 달려왔지만, 진보교육감 시대를 맞아 혁신교육은 이제 뒤를 돌아봐야 합니다 현 단계의 혁신학교운동을 제 관점에서 비틀어 보고 싶은 대목을 크게 세 가지 정도로 정리해 보겠습니다.

 

  그 첫째는 학력과 평가에 관한 것입니다.

현재 우리 학교교육이 당면하고 있는 문제가 심각하다는 것은 모두가 아는 바입니다. 때문에 기존 교육을 혁신해야 한다는 것에 동의하지 않을 사람이 없을 겁니다. 그러나 막상 학부모 입장에서 자녀를 혁신학교에 보내기를 주저하는 것은 성적이라는 지극히 현실적인 문제가 발목을 잡기 때문입니다.

이 문제는 비단 혁신교육운동 주체가 아니더라도 거의 모든 교사가 봉착하는 딜레마이기도 합니다. 교육자로서 교사가 품는 자기 방향성에 대한 모든 고민이 이 문제로 귀결된다 해도 틀린 말이 아닐 겁니다. 이상적인 것과 현실적인 것 사이의 괴리를 극복하는 문제, 이 두 대립물의 조화로운 통합(synthesis)을 꾀해가는 것이 현명한 교사에게 요구되는 가장 중요한 자질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혁신학교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문제에 대한 학부모 대중의 의구심을 불식시켜주지 못하는 한 혁신교육운동은 절대 성공하지 못 할 것이라고 힘주어 말하겠습니다.

교육의 장에서 이상적인 부분과 현실적인 부분은 과연 물과 기름처럼 서로 상극적이기만 한 것일까요?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인성교육과 지식교육의 관계처럼 이 둘은 얼마든지 조화를 이룰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본질적으로 양자는 서로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에 있습니다. 이 둘이 분리될 법한 경우는 시험을 코앞에 둔 학생이 벼락치기 공부를 해야 할 상황에서나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식의 얄팍한 학습이 학생의 지적 성장에 도움이 될 리가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개별 학생의 흥미와 발달단계를 무시한 채 오직 당면한 시험 성적 올리기에 급급한 근시안적인 교수-학습은 학생의 미래에 현실적인이득이 되지 못합니다. 실험실습 따위는 무시해버리고 문제 풀이나 암기 위주로 공부할 때 학습의 흥미는 둘째 치고 그 지식이 학생의 뇌리에 오래도록 남아 있지 않을 것임은 하나의 상식입니다. 국어나 사회 공부도 그러하지 않을까요? 학생들의 시적 감수성을 자극하는 생동감 있는 국어수업, 사회현상이 생겨나는 현실적 인과관계를 심도 있게 탐구하는 사회수업, 학생이 주체적으로 참여하는 가운데 다음 수업시간이 기다려지는 그런 배움에서 학생의 지적 성장이 활발히 이루어질 것은 자명합니다. 이런 수업을 학부모가 반대할 리가 만무하고요.

 

 

 

초등 혁신교육에서 학력과 관련한 최대 쟁점은 평가의 문제일 겁니다. 이명박 정부 시절만 해도 초등학교에서 시험을 많이 쳤습니다. 3월초 시·도교육청 주관 진단평가 외에도 대부분의 학교에서 매학기 중간고사와 기말고사를 치르곤 했습니다. 그러다가 학교폭력이 심각한 사회문제로 부각됨과 동시에 새 정부가 들어서면서 6학년을 대상으로 한 국가수준학업성취도평가가 폐지됨으로써 많은 학교에서 중간고사를 없애고 연 2차례 정도로 시험을 치는 추세입니다. 결국, 초등학생에게 과도한 시험은 해가될지언정 최소한의 평가는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 대부분의 교육주체들의 일반적인 생각이 아닐까 싶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평가란 일제고사를 말합니다.

그러나 일제고사는 학생들 사이에 지나친 경쟁심과 성적 스트레스를 야기하며, 성취도가 낮은 학생들이 부정적인 자아개념과 열패감에 휩싸이게 하는 문제점이 있다는 것은 익히 아는 바입니다. 교사의 입장에서도 일제고사는 가르치는 사람과 평가하는 사람이 분리됨으로써 창의적 수업이 무시되고 결국 교과서에나 충실한 획일적 수업을 강제하는 결과를 초래합니다. 또한, 학급간의 성적이 비교되어 교사들 사이에 불필요한 경쟁의식이 조장되어 시험 성적 올리기 위한 교육이 될 가능성이 많습니다.

이러한 문제들을 생각하여, 많은 혁신학교에서는 일제고사를 폐지합니다. 문제는 대안적 평가체제를 마련하는 것인데 이게 쉽지 않은 일입니다. 그래서 어떤 학교에서는 수행평가를 제외한 모든 평가를 없애버리는 경우가 있는데, 이건 결코 자랑할 바가 못 됩니다. 평가는 정상적인 교육 프로세스의 한 축을 차지하기에 결코 간과될 수 없습니다. 학생을 성장시키기 위함뿐만 아니라 교사가 더 나은 교육실천을 위한 피드백 정보를 얻기 위해서라도 평가(진단평가, 형성평가, 총괄평가)는 반드시 치러야 합니다. 그러나 평가도구는 기성의 문제지를 통해 확보할 것이 아니라, 학교교육목표와 학급교육과정, 핵심성취기준, 담임교사의 교육철학 등을 토대로 교사가 직접 제작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처음에는 한 두 교과만이라도 이렇게 시도를 하면서 점차 전체로 확대해가면 좋을 것입니다. 그리고 평가결과가 수치화되어 나타나는 정량평가 형식은 지양해야 합니다. 적어도 초등학교에서는 그러해야 합니다.

 

 

 

 

작은학교연대 워크숍에서 가장 기대했던 프로그램은 분임토의였습니다. 비슷한 뜻과 의지를 가진 선생님들과의 토론은 기대한 만큼 매우 유익했습니다. 가장 큰 소득은 혁신교육 실천과정에서 품은 모종의 고민이 결코 나만의 것이 아니라는 것을 확인한 것이었습니다. 내가 근무하는 학교는 혁신교육과 관련한 아무런 제도적 지원을 받지 않고 교사들의 자발적인 의지로 버텨가는 자생적 혁신학교입니다. 기존 제도권 학교의 찌든 교육 실상에 염증을 느꼈던 터라 이 학교로 건너올 때 큰 기대와 설렘을 품었더랬습니다. 전국에서 몇 안 되는 보수교육감 지역의 우리 학교는 타학교에 비해 많은 장점과 특색이 자랑할 만합니다. 그러나 학생의 학력 수준면에서는 내가 생각한 기대치에서 많이 벗어나 있는 점이 당혹스러웠습니다. 그런데 워크숍에서 만난 선생님들을 통해 타 지역 혁신학교도 우리 학교의 실정과 비슷하다는 것을 알게 되니 한편으론 위로가 되지만 다른 한편으론 혹 이게 혁신학교의 현주소일까 싶은 걱정도 듭니다.

혁신학교의 학생 학력에 대한 우려를 표명하면 대개 학력관 논쟁으로 이어집니다. “학력이란 게 대관절 뭔가하는 것입니다. 나의 학력관도 진보를 자임하는 분들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초등학생이 객관식 시험 문제를 척척 풀어대는 것을 학력이라 보지 않습니다. 초등교육목표는 건강한 공민을 길러내는 것이지 엘리트 육성이 아닙니다. 그러나 진보적 입장과 보수적 입장이 의견일치를 이루는 최소한의 목표라는 게 있을 수 있습니다. 그것은 기초기본학습능력입니다. 제 아무리 진보적인 교육을 추구하더라도 이것을 외면할 수는 없습니다. 세계적으로 성공한 진보교육의 메카의 위상을 자랑하는 핀란드에서도 배움의 기초가 되는 3Rs에 대해서는 철저히 지도한다고 합니다(후쿠타 세이지, 핀란드 교육의 성공).

 

 

 

혁신교육이 하향평준화교육이 되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무릇 혁명은 이루기 보다 지켜내기가 더 어려운 법입니다. 앙상레짐(구체제)을 혁파하겠다는 비상한 결기를 품는 것과 그것을 실천해내는 것은 별개의 문제임을 명심해야 합니다. 혁신교육이 내용적으로 실천되는 것이 아니라 그저 혁신이라는 구호 속에 머문다면 이것은 우리가 그렇게 식상해온 기존 제도권 교육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기존의 교육프로그램에 문제가 있다고 해서 그걸 안 해버리는 것이 능사일 수는 없습니다. 혹 우리는 혁신이라는 이름으로, 평가와 시험을자율과 방기를 혼동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되돌아 봐야 합니다. 진보든 보수든 어떤 교육의 장에서도 교육의 성패는 교사의 열정과 헌신에 의해 결정됩니다. ‘혁신이란 이름으로 교사의 책무성이 방기되는 곳에서 학생의 인지적·정의적·심동적 성장은 요원할 수밖에 없습니다. 혁신교육은 하향평준화교육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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