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6 18

원로 벌떡을 위한 학교는 없다

교직사회는 일정한 위계질서를 근간으로 영위되는 점에서 전형적인 관료조직이라 할 수 있다. 교무회의가 그 단적인 방증이다. 교무회의는 ‘직원협의회’로 통용되는데, 말이 ‘협의회’이지 협의는 전혀 이루어지지 않고 업무담당자의 지시 또는 전달과 교감 교장의 ‘훈화 말씀’이 전부이다. 이 엄숙한 회의 석상에서 간혹 돌출적으로 일어나서 자기 의견을 표출하는 교사가 있다. 이런 교사는 ‘벌떡교사’라는 낙인을 감수하는 점에서 비상한 용기와 소신의 소유자라 하겠다. 라때는 벌떡교사의 열에 아홉은 전교조교사들이었고 내가 그 대표적인 인물이었다. 그런데 요즘은 “전교조와 전혀 무관한” 벌떡교사들을 더러 보게 된다. 편의상 전자를 ‘전교조 벌떡’ 후자를 ‘신종 벌떡’이라 칭하기로 하자. 전교조 벌떡과 신종 벌떡 사이엔 중대..

카테고리 없음 2021.06.17

착한 아이들과의 이별

성격상 누가 내게 도움을 주거나 호의를 베풀면 반드시 사례를 해야 직성이 풀리는 편이다. 어떤 때는 고마운 마음을 너무 지나치게 표현해서 상대방이 불편해 하는 경우도 있다. 사실 이런 성격은 좋은 것이 아니다. 자신이 상대에게 호의를 베풀 때 그 사람으로부터 감사의 마음을 받지 못하면 상처를 받기 때문이다. 생각해보면, 내 성격이 좀 별난 탓도 있지만 요즘 사람들이 세상을 너무 각박하게 살아가는 것 같다. 나 어릴 적에는 없이 살아도 마음은 넉넉했다. 나도 힘들지만 나보다 더 힘든 사람을 생각하며 정을 나누며 살았다. 지금은 정을 안 주고 안 받는 삶에 익숙해 있는 것 같다. 그러고 보니 우리 어릴 때 도덕과 사회 시험에 단골 문제로 나왔던 ‘동방예의지국’이란 용어가 언제부터인지 자취를 감추었다. 동방예..

카테고리 없음 2021.06.17

사람이냐 구조냐?

사람이냐 구조냐? 실로 인간 세상에서 빚어지는 대부분의 문제, 거의 모든 사회적 이슈는 이 물음으로 환원된다고 말할 수 있다. 때문에 이에 관한 철학적 관점을 정립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가난한 사람들이 가난을 못 벗어나는 이유나 학교에서 어떤 아이가 학업성적이 낮은 이유에 대해, 개인의 의지나 노력의 문제로 볼 수도 있고 불평등이 고착된 사회구조의 문제로 볼 수도 있다. “사람이냐 구조냐”에서 사람이 문제라는 시각이 ‘보수’이고 사회구조가 문제라는 시각이 ‘진보’에 해당한다고 보면 대체로 맞아 떨어진다. 여기서 어느 관점이 옳은가 하는 것은 그리 간단치 않다. 중요한 것은, 사람과 구조 가운데 어느 한 쪽의 중요성을 절대화하지 않는 것이다. 브라질의 교육사상가 파울루 프레이리는 “사람이냐 구조냐”에서..

카테고리 없음 2021.06.17

사람의 변화 가능성에 대한 믿음

이 세상에는 두 종류의 교사가 있다. 돈 벌러 학교 오는 사람과 돈만 벌러 오는 사람. 인류 구원의 사명을 띤 독수리5형제가 아닌 이상, 교사든 회사원이든 직업생활을 영위하는 일차적인 이유는 생계유지를 위한 소득 확보, 즉 ‘돈벌이’다. 시쳇말로, “모든 게 다 먹고 살려고 하는 짓”이니 말이다. 하지만 인간 삶은 먹고 사는 게 전부일 수는 없다. 먹고 사는 게 전부인 삶과 먹고 사는 것 외의 어떤 가치를 지향하는 삶, 이 둘 사이에서 동물과 인간의 삶이 구별되리라. 교육의 질은 교사의 자질을 능가할 수 없다. 나는 ‘교사의 자질’이란 의미를 “자기보존 외에 교육적 대의를 영혼에 품고 학생의 성장과 사회발전을 위해 최소한의 헌신을 하려는 의지”로 규정한다. 그리고 이 의지를 지닌 교사를 ‘참교사’ 혹은 ..

카테고리 없음 2021.06.17

혁신학교 세우기

지난주에 충북의 어느 초등학교에서 혁신학교 강의하면서 뜻 깊게 느꼈던 인상이 아직도 내 뇌리에서 떠나지 않는다. 지금 방학 중이지만 2월 하순의 어느 한 주에는 학교마다 새 학년도 교육을 준비하기 위해 교사들이 출근을 한다. 보통은 학년 차원에서 동학년 교사들이 모여 학년교육과정과 학급교육과정을 짜는데 이 일은 2~3일 정도면 끝이 난다. 이 일만 끝내면 주5일 가운데 나머지 시간은 쉬어도 된다. 이것이 보편적인 초등학교의 모습이다. 혁신학교에서는 이 주간에 5일 내내 워크숍 형태로 일정이 돌아간다. 오전은 일반학교처럼 학년/학급 교육과정을 짜고 오후 시간은 전체 교사들의 다모임(교사회의)과 연수를 배치한다. 그러니까 출근시간부터 퇴근할 때까지 하루 종일 숨 가쁘게 부대껴야 하니 방학이 방학이 아니고 오..

카테고리 없음 2021.06.17

복잡성 철학

[혁신교육, 철학을 만나다] 살림터출판사에서 2011년에 출간한 책이다. 이 책의 원제목은 ‘Complexity and Education’인데 우리말로는 ‘복잡성(철학)과 교육’으로 옮겨진다. 그러니까 한글 제목은 원제목을 완전히 비껴가고 있다. 출판사 입장에선 책이 많이 팔리길 바라는 마음에서 이런 이상한 제목을 뽑았을 것인데, 내가 볼 때 차라리 원제목에 충실했으면 책이 더 많이 팔렸을 것이다. ‘혁신교육’ 운운하는 책은 너무 흔해 식상한 반면, ‘복잡성철학과 교육’이란 원제목은 뭔가 전문성이 있어 보인다. 그리고 실제로도 그러하다. 현직 교사인 역자들(현인철, 서용선)의 번역 역량도 훌륭하다. 모처럼 잘 번역된 책을 접하게 된다. 책을 구입해서 읽을 때 우리 정수리를 치는 멋진 한 문장만 건져도 본..

카테고리 없음 2021.06.17

혼자가 아니다

4년 전 다부초라는 특별한 학교를 뒤로 하고 일반 학교로 향할 때 잘 적응할 수 있을 지 두려움이 앞섰다. 새 학교의 환경에서 가장 놀랐던 점이 교사의 인적 구성 면에서 나와 같은 오십 대의 교사들은 물론 사십 대의 교사들도 아주 드물었고 거의 이삼십 대의 젊은 교사들로 이루어진 것이었다. 나이든 교사가 젊은 교사들을 대할 때 가장 조심해야 할 점이 “꼰대로 비치지 않기”이다. 특히 나의 경우는 ‘전교조 활동가’라는 꼬리표를 달고 있기 때문에 최대한 “선량한” 이미지를 보여야 한다는 강박관념을 안고 있는 편이다. 과거의 과격한 이미지를 쇄신하기 위한 ‘신분세탁’에 관한 고민이라 하겠다. 그렇다고 학교 일상에서 벌어지는 이런저런 문제에 입 닫고 마냥 조신하게 지낼 수만은 없는 일이다. 내가 무슨 국회의원 ..

카테고리 없음 2021.06.17

학교 회의와 회사 회의

회사 광고를 맡은 5명의 부서원들이 테이블에 앉아 회의가 시작되기를 기다린다. 회의 주제는 "회사를 홍보하는 구호 선정하기"이다. 여자 팀장이 들어와 앉으면서 회의가 시작된다. 팀장: 다들 준비됐지? 자, 던져봐! 남자1: 세계의 중심 글로벌 삼진. 팀장: 약해. 남자2: 월드 베스트 글로벌 삼진. 팀장: 뻔해. 여자1: 세상을 즐겨라. 인조이 월드 글로벌 삼진. 팀장: (제안자의 얼굴을 쳐다보며) 이유는? 여자1: 소비자의 관점에서 익사이트한 게 뭔지 생각해 봤습니다. 팀장: 나쁘지 않아. (잠시 생각하다 불현듯 흥분된 목소리로) 이거 좋은데! 엑썰런트! 요즘 인기 있는 영화 [삼진그룹 영어토익반]의 한 장면이다. 영화 속에서 회의하는 장면이 여러 번 나오는데, 모두 저런 식으로 열린다. 영화를 보면서..

카테고리 없음 2021.06.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