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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신학교 세우기

리틀윙 2021. 6. 17. 15:32

지난주에 충북의 어느 초등학교에서 혁신학교 강의하면서 뜻 깊게 느꼈던 인상이 아직도 내 뇌리에서 떠나지 않는다.

 

지금 방학 중이지만 2월 하순의 어느 한 주에는 학교마다 새 학년도 교육을 준비하기 위해 교사들이 출근을 한다. 보통은 학년 차원에서 동학년 교사들이 모여 학년교육과정과 학급교육과정을 짜는데 이 일은 2~3일 정도면 끝이 난다. 이 일만 끝내면 주5일 가운데 나머지 시간은 쉬어도 된다. 이것이 보편적인 초등학교의 모습이다.

 

혁신학교에서는 이 주간에 5일 내내 워크숍 형태로 일정이 돌아간다. 오전은 일반학교처럼 학년/학급 교육과정을 짜고 오후 시간은 전체 교사들의 다모임(교사회의)과 연수를 배치한다. 그러니까 출근시간부터 퇴근할 때까지 하루 종일 숨 가쁘게 부대껴야 하니 방학이 방학이 아니고 오히려 평상기보다 몇 곱절 팍팍한 일상인 것이다.

 

이러니 교사집단의 불만이 터져 나오기 마련이다. 처음으로 혁신학교라는 곳에 근무하는 교사, 특히 자신의 의사와 무관하게 교육청 인사발령에 의해 얼떨결에 근무하게 된 분은 더욱 그러하다. 이런 분은 그 학교에 오자마자 빨리 떠나고 싶은 마음을 품게 될 것이고 그 열망은 1년 내내 지속될 수도 있다.

 

교사들의 불만이 형성되는 메카니즘에 대한 자세한 이해가 필요하다. 바로 이 지점에서 현재 전국의 모든 혁신학교가 당면하고 있는 가능성과 한계의 생생한 리얼리티가 담겨 있다. 그리고 그 리얼리티로부터 혁신학교가 나아가야 할 방향성을 성찰할 수 있으리라 본다.

 

어느 집단에서도 구성원들이 불만을 품는다. 개개인이 품는 사적인 성격이 아닌 집단적 불만은 어떤 보편성을 띠는데, 관료제의 기반 하에 돌아가는 조직사회에서 그것은 아랫사람이 윗사람에게 품는 불만이 전부라 해도 좋을 것이다. 학교도 그러하다. 교사들은 관리자를 향해 불만을 품는다. 갑질 교장은 교사집단의 공공의 적이다.

 

그런데 혁신학교에서는 교사집단의 불만이 관리자가 아닌 특정 그룹의 교사들을 향하는 경우가 있다. 혁신학교를 이끌어가는 그룹이다.

 

“교육의 질은 교사의 질을 능가하지 못한다”는 경구가 웅변하듯, 혁신학교의 성패가 교사에게 달려있음은 말할 필요가 없다. 혁신학교 교사에게 요구되는 자질은 “자기 교실의 아이들을 얼마나 잘 가르치는가” 하는 것보다는 동료 교사들과 혁신교육의 상(像)을 공유하고서 학생과 교사의 바람직한 성장을 도모하기 위해 서로 연대하며 건강한 “교육공동체”를 경작해가는 자세를 견지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1)교사다모임을 통한 치열한 토론과 2)공부모임(전문적 학습공동체)의 일상화가 필수적이다.

 

혁신학교를 바로 세우기 위해 혁신적인 교육공동체를 이끄는 교사들은 이 두 가지 목표를 관철하기 위해 혼신의 노력을 기울인다. 그 과정에서 교육혁신에 대한 마인드나 의지가 아직 준비되지 않은 교사들과의 충돌은 불가피하다. 교사들은 다음과 같은 불만을 토로한다.

 

1)일반학교는 한 달에 한 번 회의에 그것도 지시와 전달 위주로 30분 만에 끝내는데 왜 1주일에 한 번씩 2시간 가까이 토론식 협의를 하는가?

2)교사는 가르치는 사람인데 왜 공부를 하라 하는가? 내일 수업 잘 하기 위해 교재 연구하는 것이라면 몰라도 왜 재미도 없는 이론서를 같이 읽어야 하는가?

 

이런 비지성적인 논리가 합리성을 상실하고 있음에 대해 따로 논하지 않겠다. 슬프지만 이게 우리 교단의 현주소이고 나 역시도 한때 이런 생각으로 살았던 한 사람이다. 나도 다부초에서 근무하기 전까지는 혁신학교의 중요성에 대해 알지 못했다. 그 학교에서도 처음에는 너무 잦고 또 긴 시간동안 열리는 회의(교사다모임)에 대해 불만을 품었다. 다부초에서의 4년을 지나면서 아이들을 바라보는 나의 시선이 달라졌고 바람직한 교직살이와 혁신학교가 나아가야 할 방향성에 대한 관점이 생겨났다.

 

지난주 강의에서 그런 관점들을 선생님들께 말씀 드렸다. 3시간 동안 혼자 떠드는데 대체로 선생님들이 집중력을 잃지 않고 잘 따라와 주셨다. 전국의 여러 학교에 강의를 다니다 보니 강의에 참여하는 교사들의 자세에서 학교 특유의 에토스가 느껴진다. 이 학교는 교사공동체의 기본기가 탄탄히 세워져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교직사회는 기본적으로 관료조직이다. 교사는 관리자의 지시와 명령에 따라 몸을 움직인다. 그런데 이 학교의 경우 교사집단이 스스로 자기규율을 발동하여 1주일 내내 하루 종일 견실한 일정을 꾸려가는 것이 예사롭지 않다. 확신컨대, 여기에 관리자의 입김이 작용한 것은 1도 없을 것이다. 오히려 관리자들은 어떤 부작용을 우려해 “대충할 것”을 바랄 것이다. 하지만 혁신학교라는 나무는 대충 경작해서는 열매가 맺히지 않는다. 아마 이 학교가 여기까지 오는 과정에서 혁신을 주도한 교사들이 일반 교사들과 부대끼는 과정에서 숱한 눈물과 한숨으로 점철되었을 것이다. (예상대로 이분들은 교육운동 경험이 많은 전교조 활동가들이었다.)

 

직위가 같은 동료교사에게 어떤 대의를 설득하는 것은 혁신학교를 이끄는 교사들이 피할 수 없는 지난한 과업이다. ‘학교혁신’이라는 대의에는 공감하면서 그것을 꾸려가는 방향성을 달리할 때는 토론을 통해 이견을 좁힐 수 있다. 하지만 혁신학교의 절대적 조건인 “튼실한 교사공동체 확립”의 필요성 자체를 거부하는 분들과의 대립은 피할 수 없다. 이것은 일종의 “투쟁”이다. 폭언과 고성이 오가는 일대일 투쟁이 아니라 동료교사들과 부대끼는 과정에서 본인이 받는 이런저런 스트레스와 상처를 극복해가는 “자신과의 투쟁”이다. 혁신학교는 이런 교사들의 피와 땀과 눈물을 자양분으로 열매 맺는 꿈나무이자 이 나라 미래의 희망이다.

 

잦은 회의와 딱딱한 공부모임을 좋아할 교사는 잘 없다. 허나 교사 없는 학교는 생각할 수 없으므로 활동가들은 어떻게든 동료교사들을 다독이며 함께 가야 한다. 혁신교육을 신봉하는 선배교사가 따뜻한 리더십과 진정성 있는 헌신으로 교사집단을 이끌어감에 따라 후배교사들이 조금씩 마음을 내며 혁신학교에 대한 흥미와 열정을 키워갈 때 학교는 비로소 희망의 교육공동체로 거듭날 것이다.

 

2.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