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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가 아니다

리틀윙 2021. 6. 17. 15:30

4년 전 다부초라는 특별한 학교를 뒤로 하고 일반 학교로 향할 때 잘 적응할 수 있을 지 두려움이 앞섰다. 새 학교의 환경에서 가장 놀랐던 점이 교사의 인적 구성 면에서 나와 같은 오십 대의 교사들은 물론 사십 대의 교사들도 아주 드물었고 거의 이삼십 대의 젊은 교사들로 이루어진 것이었다.

 

나이든 교사가 젊은 교사들을 대할 때 가장 조심해야 할 점이 꼰대로 비치지 않기이다. 특히 나의 경우는 전교조 활동가라는 꼬리표를 달고 있기 때문에 최대한 선량한이미지를 보여야 한다는 강박관념을 안고 있는 편이다. 과거의 과격한 이미지를 쇄신하기 위한 신분세탁에 관한 고민이라 하겠다.

 

그렇다고 학교 일상에서 벌어지는 이런저런 문제에 입 닫고 마냥 조신하게 지낼 수만은 없는 일이다. 내가 무슨 국회의원 출마할 것도 아니거늘 이미지 관리 자체가 내 삶의 목표가 될 수는 없다. 다만 젊었을 때와는 달리 참을 만큼 참다가 도저히 참을 수 없고 참아서는 안 되는 국면에서는 한마디 하는 것이다. 그 학교에서 교무회의 석상에서 한 번 일어섰다. “벌떡일어선 것이 아니라 최대한 언어를 정련하면서 차분히 교장선생님을 향해 말을 던졌다. 연설 도중에 이런 말씀을 드려 선생님들께 정말 죄송하다는 사족성 발언을 두 번씩이나 덧붙였다. 전략이 아닌 진심으로 한 말이었다.

 

발언을 마치고 앉으면서 생각했다. ‘또 사고 쳤구나!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이 일로 젊은 선생님들이 나를 꼰대라 생각해도 할 수 없다. 이게 내 운명이다라는 자조적 상념에 침잠했다.

 

그런데 놀랍게도 반응이 폭발적이었다. 평소 안면을 트고 친하게 지낸 후배교사들은 너무 감동적이었다고 말하는가 하면, 그간 말 한 번 섞은 적이 없었던 어떤 분은 메시지로 선배님의 말씀이 신선한 충격이었다고, 모두가 공감하는 문제인데 아무도 말하지 못하는 것을 말씀해주셔서 고맙다고, 나는 용기가 없어서 같이 못해 미안하고 부끄럽다는 말을 보내왔다.

 

길을 가다가 장애물을 만났을 때 보통 사람들은 돌아가지만 뒷사람을 생각해서 그것을 치우고 가려는 사람이 있다. 전교조 꼰대들이 이런 부류다. 보통 사람들의 생각과 달리 이런 꼰대들이 사실 특별히 용감하고 강한 사람들이 아니다. 전교조 꼰대들이 빠져드는 가장 씁쓸한 비애가 나는 혼자라는 것이다. 혼자라고 생각했는데, 용기 있게 말문을 여니 혼자가 아니었음을 알게 될 때는 정말 세상을 다 가진 듯한 기분이다.

 

페이스북에서 가끔 교사들이 불편해 할 글을 올릴 때도 그때 교무회의에서 일어설 때와 마찬가지로, ‘젊은 선생님들로부터 꼰대 소리 듣겠다는 염려를 하곤 한다. 그래도 어쩔 수 없이 그런 글을 쓴다. 읽기 불편한 글이 좋은 글이라 믿는다. 모두가 편안하게 읽으며 웃고 즐기는 글은 이 광장에서 차고 넘친다. 불편한 글을 내가 안 쓰면 누가 쓰겠는가?

 

다행이 그때 동료 교사들이 호응했던 것처럼 이곳에서도 적잖은 후배 교사들이 나의 불편한 어젠다에 공감하고 성원해 주실 때 큰 힘을 받는다. 나는 좋아요나 긍정적인 댓글이 없는 많은 페친들이 내는 침묵의 목소리도 읽으려 한다. 침묵을 부정적인 의미로 해석하더라도, 비록 소수일지언정 긍정적인 댓글이나 좋아요의 반응 자체가 최소한 다음과 같은 희망을 갖게 한다 나는 혼자가 아니다!

 

나는 골고다 언덕을 오르는 예수일 수는 없고 동키호테에 가깝다. 내가 걷는 길이 가시밭길은 아닐지라도, 확신컨대 꽃길도 아니다. 가시밭길과 꽃길의 중간 지대에 있는 외딴 오솔길을 많은 사람이 동행하리라고는 전혀 기대하지 않는다. 다만,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만으로 큰 위안이 된다.

 

중요한 것은, 그때 교무회의 석상에서 발언할 때처럼 몸가짐을 최대한 조심하는 것이다. 같은 말이라도 표현하기에 따라 듣는 사람에게 불편을 넘어 불쾌를 유발하는 한편, 불편하지만 귀에 담고 싶은 말로 다가갈 수 있다. 나의 말하기(입말이든 글말이든)는 후자를 지향해야 한다고 늘 마음에 새긴다.

 

사람들은 내가 변했다고 한다. 나는 이것을 좋은 뜻으로 생각한다. 사람은 변해야 한다. 많은 경우 변화는 발전을, 불변은 퇴행을 의미한다.

 

사실, 예나 지금이나 내 삶은 변함이 없다. 그때도 지금도 나는 크고 작은 부조리를 만나면 마음이 불편하고 화가 나고 그 화를 풀기 위해 당면한 문제를 풀려고 조바심을 품는다. 내게 변한 것이 있다면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전략 전술적 측면에서의 관점과 태도의 변화가 전부이다. 그리고 이 변화는 매우 중요하다. 이것은 나이를 먹어봐야만 찾아드는 성장의 징후다. 사람이 나이를 먹는 것은 좋은 일이다.

 

2.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