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9 7

애국가와 애국심

어제 우리 학년은 온라인 수업이었다. 새 학기가 시작되면 학교는 바쁘다. 긴급히 논의해야 할 일이 있어서 오전에 학년 선생님들끼리 모여 회의를 했다. 회의 도중에 옆동 건물에서 아이들이 애국가 부르는 소리가 들려 왔다. 방송으로 개학식을 하는 것이었다(일부 학년은 어제 개학했다). 그런데 아이들이 애국가를 너무 무성의하게 부르는 것이 나의 심기를 자극하여 잠시 생각에 잠겼다. 3학년 아이들은 애국가를 부를 때 성실하게 부른다. 그런데 아이들이 교육을 받을수록 더 나아져야 하는데 왜 더 못해지는 것일까? 하지만, 아이들 입장에서 곰곰이 생각해보면 충분히 그럴 만한 이유가 있을 것 같다. 국영수 실력이나 음악 체육 기능은 교육을 받을수록 더 나아지는 게 분명하다. 아이들이 교육을 받을수록 더 나빠지는 것은 ..

학교 참 많이 변했다!

오늘 개학이다. 아침 일찍 출근하여 아이들 책걸상을 닦다가 잠시 상념에 젖는다. 학교 참 많이 변했다! 최근 5년 이내 교사가 된 분들은 무슨 말인지 모르실 것이다. 예전에는 방학 끝자락에 반장 어머니에게서 전화가 온다. “선생님, 교실 청소하러 언제 들어갈까요?” 아이가 반장이면 엄마도 반장이었다. 무슨 패키지 상품처럼 한 세트로 인식되었다. 반장 어머니를 중심으로 학급 어머니회가 조직되어 정기적으로 교실 청소를 했다. 그 시절에 학모는 식모였던 것이다. '전설의 고향' 이야기가 아니다. 불과 10년도 채 못 된 이야기다. 2015년인가 김영란법이 제정된 이후로 공직사회, 특히 학교가 엄청나게 변했다. 바람직한 변화인 것은 말할 것도 없다. 사실 학교가 학모님을 식모처럼 부려 먹을 때 젊은 교사들은 대..

교실살이-1 2021.09.09

우리들의 일그러진 아이돌

연예인. 한자어에 대한 개념이 발달하지 않은 어린 시절엔 연예인이 ‘연애인’인 줄 알았다. 어린 아이는 새로운 낱말을 만날 때 앞뒤 문맥이나 대상의 특징적 측면을 근거로 뜻을 유추해서 개념을 정립해간다. 나는 얼굴이 잘 생기고 예쁜 사람들이니 대중들에게 사랑을 받는 사람들, 즉 팬들이 연애 감정(戀心)을 품는 대상이라는 뜻으로 ‘연애인’인 줄 알았다. 실제로 소년소녀들은 연예인에게 연애 감정을 품는다. 자기 아버지가 사고로 병원에 입원해도 슬퍼할 줄 모르는 아이가 자신이 좋아하는 아이돌이 교통사고를 당했다는 소식을 들으면 눈물을 펑펑 흘리고 꽃다발을 사들고 병원 앞에서 다른 팬들과 함께 밤을 지새운다. 사실 스타들이나 기획사가 천문학적인 돈을 긁어모으는 기제가 이런 것이다. 팬들이 스타들을 향해 품는 연..

왜 공부 못하는 청춘은 자존감이 낮아지는가?

방학 내내 도서관 열람실에서 글 작업에 몰두하고 있다. 더운 여름에 도서관보다 더 좋은 피서지도 없다. 적막이 감도는 조용한 열람실에선 책장 넘기는 소리조차 민폐가 될 수 있다. 그런데 내 앞자리 청년의 이어폰에서 소음이 새 나와 신경이 거슬린다. (내가 좀 민감한 편이이서 이런 걸 잘 못 견딘다 ㅜ ) 내 불편한 의사를 전하려 다가갔더니 맙소사 휴대폰으로 게임을 하고 있다. 게임을 할 것 같으면 도서관에 뭐하러 오는지 이해할 수 없다. 그런데 젊은 분들 가운데 이런 사람 한둘이 아니다. 그들에게 게임은 숨 쉬고 물 마시는 것처럼 삶의 한 부분을 차지하는지도 모른다. 문제는 공부를 이런 식으로 하는 것은 자기 발전에 전혀 도움이 안 된다는 것이다. 이럴 것 같으면 차라리 밖에 나가서 친구랑 술 마시거나 ..

이기는 것보다 잘 지는 것이 훨씬 중요하다

지구촌 최대의 축제인 하계 올림픽이 2주간의 대장정을 마쳐 간다. 사상 초유의 코로나 사태로 개최 자체가 불가능할 것 같았지만 일본 정부가 절박한 의지로 강행했고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살인적인 무더위와 태풍 예보로 난항이 예상되었음에도 큰 탈 없이 마무리 되는 듯하여 다행이다. 무관중으로 진행되어 예의 축제 분위기와는 거리가 멀었지만 세계 최고의 운동선수들이 발군의 실력을 펼치는 스포츠 본연의 감동은 변함없었다. 탁월한 운동 기능도 그러하지만 상대 선수를 배려하는 인간미와 결과에 연연하지 않고 최선을 다해 자기 기량을 유감없이 펼친 것에 의의를 두는 스포츠맨십은 보는 이들에게 크나큰 감동을 선사하고 존경심을 자아냈다. 특히 여느 대회와 달리 이번 올림픽에서 우리 한국 선수들이 보여준 태도에 뜨거운 갈채를..

존재와 의식

2014년 1월에 북유럽 3개국(덴마크, 스웨덴, 핀란드)을 다녀왔다. 관광이 목적이 아닌 학교 탐방을 위한 여행이었는데, 학교도 신선했지만 우리와 다른 사회의 모습들에 적잖이 놀랐다. 그 신선한 충격 중의 하나가, 낮은 계층의 사람들의 표정이 우리와 달리 밝다는 것이었다. 북유럽 사람들의 표정이 다 이런 것은 아니다. 오히려, 대체로 어두운 편인데 그건 날씨와 관계있다. 세계 최고의 복지사회에서 자살률이 높은 것이 이를 말해준다. 내가 낮은 계층의 사람들의 표정이 밝다는 것은, 우리와 달리 팍팍한 삶에 지쳐 피폐한 모습이 아니라는 의미다. 작업복 차림으로 무거운 물건을 옮기는, 우리가 흔히 ‘노가다’라 일컫는 건설 노동자의 얼굴에서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한 어떤 자부심 같은 것이 묻어 있었다. 이 같은 ..

삐삐

3학년 사회 시간에 요즘 배우는 공부 주제가 “옛날과 오늘날의 통신수단"이다. 이 단원 마지막 페이지에 ‘쉬어가기’ 코너로 삐삐 이야기가 소개되어 있다. 요즘 교과서는 참 재미있게 잘 만들어져 있다. 문제는, 내겐 흥미 있는 이 이야기가 아이들 입장에선 이해가 어려워서 도무지 흥미를 끌지 못하는 점이다. 그래서, 가르치지 않아도 되고 또 슬쩍 지나가라고 있는 이 쉬어가기 코너에서 1시간 내내 설명을 했다. 삐삐가 한창 보급되던 시기이니 아마 1990년대 중반쯤의 이야기일 것 같다. 신문 기사를 재구성해서 편집한 것으로 보이는데, 헤드라인에서 ‘열풍’, ‘이색 풍경’이란 어려운 낱말을 풀이해주는 데만 몇 분이 걸렸다. 헤드라인의 말은 어렵지만, 속 내용은 재미있게 이해할 줄 알았다. 하지만 삐삐라는 말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