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운동

지금 교사에게 전교조는?

리틀윙 2021. 1. 27. 13:30

이 학교에서 2년을 보냈다. 다른 직장도 그러하겠지만, 학교라는 공동체의 보람과 행복은 구성원들, 그 중에서도 교사집단에 달려 있다. 교사들끼리 따뜻한 관계망을 뜨개질해가며 바람직한 학생교육을 위해 서로 선한 영향력을 주고받는 학교라면 매일의 교직 일상이 즐겁고 신명날 것이다.

 

내가 볼 때 이 학교는 그럴 수 있는 “가능성”을 갖추고 있다. 교사 개개인의 면면을 뜯어보면 대체로 좋은 선생님들이 많다. 그 중 몇몇은 요즘 보기 드물게 교사로서 자질과 품성이 훌륭한 분들이다.

 

나의 교직 삶은 전교조와 함께 걸어왔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전교조는 내가 교단에 처음 선 88년에 전교협(전국교사협의회)으로 시작하여 이듬해에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을 선포하였다. 과거에도 지금도 또 앞으로도 나의 삶은 “모든 사람이 인간답게 살아가는 세상”을 지향할 것이다.

 

더 나은 세상을 위한 움직임(movement, 운동)은 집회장이 아니라 우리 삶 어느 곳에서도 가능하다고 믿는다. 아니, 자신이 발 딛고 서 있는 일상에서 최선을 다하는 삶이야말로 가장 위력적인 사회운동이라 생각한다. 이를테면, 자기 교실에서 아이들과 학부모에게 인정을 못 받는 교사가 참교육을 부르짖은들 누구도 호응하지 않을 것이다.

 

다행히 전교조 활동가 교사들은 대부분 자기 삶에 충실한 분들이다. 아이들을 사랑하고 혼신을 다해 교육실천을 하는 전교조 교사가 곧 전교조의 표상이다. 언론의 마타도어에 영향을 받아 전교조에 부정적인 시각을 품고 있던 후배교사들이 그런 훌륭한 선배를 보면서 전교조를 다시 보게 되고 마침내 전교조에 발을 들이게 된다.

 

모르긴 해도 나 역시도 그런 선배교사를 자임해왔다. 이 학교에 2년 근무하면서도 최소한 교육적인 마인드를 품고 있는 남자 후배교사들은 내게 일정한 신뢰와 존경심을 품고 있는 것을 느낀다. 그래서 말인데......

 

이쯤이면 그런 후배들에게 전교조 가입원서를 들고 교실문을 노크하겠지만, 도무지 엄두가 안 난다. 그리고...... 나 스스로도 그럴 필요성을 못 느끼는 것에서 심각한 혼란에 사로잡히게 된다.

 

- 교직 평생 처음으로 전교조 조합원 교사가 나 혼자 밖에 없는 학교에 근무하고 있다.

- 그리고 교육적으로 각별한 신뢰와 호감이 가는 후배 교사가 이렇게 많은 학교도 처음이다.

 

이 두 명제가 상충되는 것이 지금 내가 봉착하고 있는 혼란의 실체를 대변해준다. 예전에는 좋은 교사는 대부분 전교조교사였다. 반대로 전교조를 기피하거나 비난하는 교사는 대체로 반교육적인 경우가 많았다. 그런데 지금 내가 목도하는 현실은 그런 이분법적 도식을 박물관으로 보내야 함을 웅변적으로 말해준다.

 

나는 이러한 현상의 원인이 전교조에게 있다고 보지 않는다. 전교조를 걱정하거나 비판하는 사람들은 흔히 “전교조가 낡은 운동방식을 혁신하지 않음에 따라 젊은 교사들을 유인하지 못한다”고 말한다. 나 역시도 한때 이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이것은 올바른 진단이 아니다. 만약 이 말이 맞다면, 젊은 교사들이 전교조 아닌 신생 교원단체나 교사노조에 대거 가입을 해야 하지만 그렇지 않다. 교육공무직 노조가입율은 90%에 달하지만 교사 노조/단체 가입율은 10%도 안 된다.

 

지금 교사들은 전교조든 교총이든 “결사association”의 필요성 자체를 못 느낀다. 젊은 교사들의 이런 경향성은 이들이 성장과정에서 “집단주의collectivism”에 대한 학습을 전혀 받지 못한 탓이 크다. 이 치열한 생존경쟁 사회에서 어릴 때부터 처절하게 살아남는 법만을 배웠으며, 노동조합이라 하면 무슨 뿔 달린 괴물처럼 인식하도록 학습 받은 젊은이들이 전교조에 호감을 품을 까닭이 없는 것이다.

 

아니 더 중요한 이유가 있다. 사실, 요즘 젊은 교사들이 전교조에 잘 안 드는 이유는 다름 아닌 전교조 때문이다! 과거에 “교장의 왕국이던 학교”를 전교조 교사들이 헌신적으로 투쟁하여 “지금의 학교”로 바꿔 놓았기 때문이다.

 

내 또래의 초등 여교사 가운데 지금까지 전교조 조합원으로 남아 있는 교사들이 많다. 나와 학번이 비슷한 교대 출신 교사들은 학창시절에 데모 한 번 안 하고 졸업한 사람들이다. 아마 평생 사회과학 서적 한 권도 접하지 못한 소박한 의식의 소유자라 해도 좋을 것이다. 이런 분들이 전교조 조합원으로 남아 있는 것은 특별히 선진된 사회의식과 무관하다는 뜻이다. 그럼 무엇이 이들을 전교조에 머물게 했을까? 더구나 전교조 회비는 교총 회비보다 3배도 넘는다. 그것은, 전교조에 대한 부채의식이 전부다!

 

참신한 교육자적 자질을 지닌 젊은 교사들이 전교조에 들지 않는 것을 허망하게 생각하지 말자. 그것은 지금 전교조가 못나서가 아니라 과거의 전교조가 찬란했기 때문이다.

 

이 땅의 교육역사 속에서 전교조는 제 할 일을 다 했다. 나는 “새로운 전교조”라는 움직임을 신뢰하지 않는다. 젊은 교사들을 유인한답시고 이를테면, 참교육운동보다 교사권익보호에 무게중심이 쏠리는 노선에 반대한다. 이런 것은 혁신이 아니라 퇴행이다.

집단주의가 실종되고 개인주의가 횡행하는 교직사회에서 역설적으로 과거의 노선을 고수하는 것이 참교육전교조의 정체성에 부합한다. 이렇게 해서 전교조가 망해도 그만이다. 제 할 일 다 한 마당에 전교조답게 망하는 것이 참교육전교조다.

 

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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