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운동

학교공동체

리틀윙 2020. 8. 2. 00:33

 초임 시절인 80년대 말에는 학교 교직원의 구성이 간단했다. 교사와 관리자 그리고 기능직(지금의 주무관)이 전부였다. 그러던 것이 학교급식이 이루어지고 방과후학교에 이어 돌봄이 도입되면서 학교일상이 복잡다단해져갔다. 이 일련의 변화들은 90년대 초에서 2000년대 중반까지 10여 년에 걸쳐 이루어졌는데, 이때까지만 해도 학교사회 내의 집단들 사이에 갈등 같은 것은 잘 없었다.

 

그러던 것이 2011년에 전국학교비정규직노동조합(학비노조)이 생겨나면서 내적으로 균열이 일기 시작했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노동조건과 처우 개선을 위해 노조를 결사하고 단체행동을 하는 것은 좋은 일이다. 이러한 움직임(운동)은 개인의 이익이나 사회의 진보를 위해서도 분명 필요한 일이다.

 

하지만, 여느 사회와 달리 학교는 집단구성원 사이에 원시적인 관계망을 근간으로 돌아가는 점에서 사회학자 퇴니스의 개념으로 게젤샤프트(이익사회)보다는 게마인샤프트(공동사회)에 가까운 곳이다. 무릇 학교는 학교공동체이어야 한다고 나는 믿는다. 공동체의 이름으로 서로 다른 입장을 존중하고 배려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최근에 내가 전교조가 학비노조와 연대해야 한다는 글을 쓴 뜻도 이게 전부이다.

 

그런데, 지금 코로나 사태로 학생들은 등교를 안 하고 교직원들은 출근을 하는 특수한 상황에서 조리노동자들이 모두를 위해조리실을 가동하면 좋으련만, 상식적 차원의 자기 업무는 방기한 채 학교 구석진 곳을 청소하거나 하는 것에서 큰 아쉬움을 느낀다.

 

물론, 조리노동자 본연의 업무는 학생 급식이지 교직원 급식은 아니다. 급식 대상에서 학생이 주이고 교직원은 부수적인 대상일 뿐이다. 하지만, 코로나 시국이라는 특수한 상황에서 교사들을 비롯한 교직원들이 학생 교육을 위해 출근하여 근무하는 만큼 조리실을 가동하는 것은 공적인 명분이 충분할 따름이다. 더구나 지금 긴급돌봄 대상 학생들도 학교에 나오는가 하면, 조리 노동자 본인들도 식사를 해결해야 하는 판국이다.

 

30년 넘게 학교생활을 해온 나의 직관으로, 학비노조가 없었다면 현 상황에서 조리실은 당연히 가동되었을 것이라 본다. 모르긴 해도, 그 분들이 학교장의 위압에 의해 마지못해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당연한 자기소임으로 생각하며 자발적으로 그렇게 할 것이다.

 

만약 내가 그 분들의 입장이라면 기꺼이 그렇게 할 것이다. 왜냐하면 이것은 내가 잘 할 수 있는 일이고, 나의 노동으로 인해 공동체 동료들의 민생고가 해결된다면 보람된 일이기 때문이다. 내가 학교에 근무하는 것은 요리를 하기 위해서이지 청소하기 위함이 아닌 것이다.

 

조리가 본업인 사람들이 빗자루 들고 있지도 않은청소거리를 찾아다니며 청소하는 시늉을 해대는 것이 좋은 일인가? 도대체 어떻게 해서 이 우스꽝스러운 작태가 연출되었는지 그 인과관계를 짚어 보자.

 

3월이 되었지만 코로나로 아이들이 등교하지 못하니 급식소 직원들도 학교에 근무할 일이 없어졌다. 실제로 며칠 동안 학교에 나오지 않았다. 그러다가 학비노조 집행부가 조리 종사자들 굶어 죽게 생겼다고 아우성치니 교육청에선 알았다. 그러면 학교에 나와라고 화답했다. 그 와중에 학비노조에서 교사들은 놀면서도 월급 받니 뭐니하며 교사집단을 분노케 하는 실수도 빚어졌다. (참고로, 이 글을 쓰는 나는 그래도 교사들이 관용을 베풀며 이 분들의 입장을 이해해야 한다는 글을 썼다. 앞으로 똑같은 상황이 벌어져도 그럴 것이다.)

 

그런데 지금 교사도 조리원들도 학교에 출근한다. 교사들은 온라인수업 준비로 바삐 움직인다. 조리원들은 뭐 하시는지 모르겠다. 아이들이 없는 학교에 청소할 일도 없다. 그래도 착한 우리 학교 젊은 선생님들은 아무런 불평 없이 각자 끼니를 해결하고 있다. 어떤 이는 컵라면으로 떼우고 어떤 이는 중화요리를 시켜 먹기도 한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같은 교사이면서 젊은 교사집단에 맞서 공무직 편을 든 글을 쓴 내가 학비노조에 분노가 생기려 한다. 교육노동운동진영에 몸 담고 있고 사회진보와 관련한 담론 생산을 즐기는 한 사람으로서 학비노조에 한마디 하고 싶다.

 

조리노동자에게 조리를 하게 하라.

노동조합은 사용자가 노동자에게 부당한 업무를 강제하거나 할 때 노동자를 대변하라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지금 시/도 교육감이 여러분들에게 교직원들을 위해 조리 노동을 부탁하는 것이 부당업무을 권하는 것이라 생각하는가? 학교공동체에서 컵라면으로 끼니 떼우는 동료들의 시선을 외면하며 인간적 유대를 파기하는 것이 학비노동자의 권익 수호라 생각하는가?

 

노동해방은 노동으로부터의 도피가 아니다. 코로나로 굶어 죽게 생겼다고 아우성치던 사람들이 지금 코로나 덕분에 일 안 하고 돈을 벌게 된 것이 축복일 수 없다. 돈은 물론 중요하다. 하지만 진정한 노동자는 일을 삶의 수단뿐만 아니라 목적으로 품어야 한다. 일 자체를 통해 보람과 긍지 그리고 자기효능감을 느끼며 유적 존재로서의 내 삶이 고양되어 가는 것, 이것이 노동해방이다. 그런데 조리도구 대신 청소도구를 든 조리원들이 일말의 자기효능감이라도 느낄 수 있을까?

 

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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