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교육

나쁜 것은 사람이 아니라 제도다

리틀윙 2020. 9. 17. 16:38

언젠가 프랑스 교사들이 급당 학생 수를 줄여달라며 길거리에 나와 시위를 하는 뉴스를 봤다. 학생 수 감축은 우리 교사들의 오랜 숙원이지만 단체행동권이 없는 전교조는 한 번도 시도해보지 못한 일이어서 부러워했던 기억이 있다. 한 사람의 교사가 가르쳐야 하는 학생 수가 줄어들면 교사의 노동 강도도 줄어들지만 무엇보다 학생 교육의 질이 높아진다.

 

그런데!

의사를 증원하여 의료 질을 개선하고자 하는 국가 정책에 전국의 의사들이 의료파업이라는 초강경 태세로 정부와 국민에 맞서고 있다. 한 사람의 의사가 돌봐야 하는 환자 수가 줄어들면 의사의 노동 강도도 줄어들고 의료 수준이 개선될 텐데 의사는 왜 교사와 정반대로 자기 영역의 일꾼 증원을 반대하는 것일까?

 

우리는 물론 그 이유를 알고 있다. 자신이 누릴 부의 크기가 줄어들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들이 지금껏 보통 사람들에 비해 엄청난 부를 누려왔기에 설령 의사 수가 늘어나도 경제적으로 큰 타격을 입는 것 아니라는 점이다. 그럼에도 이들은 이 엄중한 코로나 시국에 국민 생명을 뒷전으로 하며 의료인으로서 최소한의 양심도 내팽개치고서 지독한 이기주의의 화신을 자처하고 있다.

 

같은 ‘사’자 돌림의 직업인으로서 나는 의사들의 이런 반응을 비난할 생각은 없다. 언제나 나쁜 것은 사람이 아니라 제도다. 선한 제도 하에서는 선한 사람이 길러지고 나쁜 제도 하에서는 나쁜 사람이 길러진다. 만약 교사들도 이를테면, 자기가 맡은 학생 수에 비례하여 수익이 돌아오는 구조 속에 있다면, 교사 증원을 반대할 것이다. 그런 사회에서 교사는 한 학생이라도 더 서비스해주기 위해 밤늦도록 가르치고 토요일까지도 교실 문을 열 것이다. 수업료를 내지 않는 학생들에겐 서비스를 중단할 것이며, 보충 지도가 필요한 부진 학생이 있어도 추가 비용을 내지 않으면 특별한 마음을 쓰지 않을 것이다.

 

생각만 해도 끔찍하지 않은가? 그런 곳에서 나는 단 하루도 선생 못할 것만 같다. 혹 내가 학생들을 잘 가르친다는 소문이 나서 지금보다 수입이 몇 십 배 늘어나더라도 나는 전혀 행복하지 않을 것 같다. 단언컨대, 그런 곳에서 선생은 선생이기를 그친다.

 

마찬가지로, 금전적 이익을 환자의 생명보다 우선시 하는 의사들은 더 이상 의사가 아니라 할 것이다. 의사가 의사다운 의사로 존재하게 하기 위해서는 제도를 바꿔야 한다. 국민의 교육을 국가가 책임지는 공교육 시스템으로 만들 듯이, 국민의 건강을 국가가 책임지는 공공의료 시스템으로 전환해야 한다.

 

사회주의 식이라고? 비현실적이라고?

마르크스 시대라면 몰라도 현대사회에서 국가 제도를 자본주의 식과 사회주의 식으로 구분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지금 지구상에 순수한 자본주의 국가는 존재하지 않는다. 북유럽의 국가들은 사회주의 국가보다 복지제도가 훨씬 발달해 있다. 의료제도에 관한 한, 우리나라는 북유럽에 비하면 자본주의적이고 미국에 비하면 사회주의적이라 할 수 있다. 미국에서는 손가락 2개 잘린 사람이 병원에 가서 봉합 수술을 받으려니 비용이 각각 3천만 원과 1억이 나와서 3천만 원짜리만 봉합하고 나머지 하나는 갈매기 밥으로 던져줬다는 이야기가 마이클 무어의 영화 ‘식코Sicko’에 나온다. 사회주의 식이 나쁘다는 사람은 자본주의 식이 인간적이라는 말인가?

 

자본주의적 의료 체계(민영화)로 운영하는 최고의 부자 나라 미국 국민들은 수술받기 위해 가난한 사회주의 나라 쿠바로 날아간다. 가난한 쿠바에서는 의료비가 전액 무상이다. 우리보다 훨씬 가난한 나라에서 이렇게 하는데 우리가 그렇게 못할 이유가 없지 않은가? 이게 비현실적인 망상인가?

 

"의사선생님, 제발 제 목숨 좀 지켜달라"는 환자들의 울부짖음을 뒤로 하고 파업 대오로 나간 젊은 의사들은 학교 다닐 때 수재 소리 들었던 사람들이다. 그런 사람들이 자신들의 이기적인 집단행동이 어떤 재앙을 불러올 것인지 그 인과관계를 모르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우리 모든 국민들은 이들을 원망한다. 하지만, 불선한 것은 사람이 아니라 제도다. 우리의 똑똑한 젊은이들이 더 이상 사람 생명 보다 돈을 더 중히 여기는 나쁜 의사로 타락하지 않도록 의료제도를 완전히 공영화하는 세상을 소망한다.

 

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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