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교육

대한민국의 과거와 현재

리틀윙 2019. 8. 21. 12:31

Once upon a time in 한국학교에 이런 일이 있었다고 한다.

장학사가 장학지도 나와서 과학실 수업을 참관했다. 장학사는 지구본을 들고 한 학생에게 물었다.

 

얘야, 이 지구본이 왜 삐딱하게 기울어졌지?”

 

(지축이 북극과 23.5도 기울어져 있기 때문인데) 학생이 답한다는 것이,

 

몰라요! 저는 손도 안 댔어요!”

 

장학사가 교사에게 물었더니 교사도 다음과 같이 답했다.

 

모르겠심더. 교육청에서 올 때부터 그랬던 것 같습니다.”

 

마지막으로 교장에게 물었다. 교장은,

 

국산품, 다 그런 거 아입니꺼!”

 

웃자고 지어낸 이야기겠지만, 마지막 교장의 발언속에는 그 시절 사회상에 관한 리얼리티가 담겨있다. 우리들 어린 시절엔 그랬다. 국산품은 질 낮은 상품을 의미하고 일제나 미제 물건은 부의 상징이었다. 그 시절 국민들에게 국가에 대한 자긍심은 밑바닥에 있었다.

 

그런 국민들이 우리나라에 대해 자부심을 갖게 되는 때가 가뭄에 콩 나듯 몇 차례 있었는데, 모두 스포츠를 통한 국위선양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의미 수준을 매기기 나름이지만, 최초라 할 사건이 1976년 양정모 선수가 몬트리올 올림픽 레슬링 경기에서 최초로 금메달을 딴 것이었다.

 

그 다음 역사적인 쾌거가 청소년 축구대표팀이 멕시코대회에서 4강에 든 것이다. 동양의 약소국 선수들이 붉은 색 유니폼을 걸치고 적진을 향해 질풍처럼 내달려 역습 골을 넣으며 개최국 멕시코를 비롯한 우승후보 팀을 연이어 격파하며 파란을 일으켰다. 전 세계 축구 팬들은 이름도 생소한 꼬레아(Corea)라는 나라 선수들의 활약에 경악했고 멕시코 신문은 이 팀을 '붉은 악마'로 묘사하며 대서특필했다. 이 때가 1983년으로 내가 대학교에 입학한지 얼마 되지 않은 6월의 일이었다. 광주를 피로 물들이며 집권한 전두환 정권 초기라 사회 전반에 음울한 기운이 만연한 때의 기쁜 소식이어서 국민들에게 큰 위로를 안겨 주기에 충분했다.

 

그로부터 36년이 지난 오늘 청소년 월드컵 4강신화가 재현되었다. 오늘 경기는 정말 흥미진진했다. '각본 없는 드라마'라는 표현이 진부하게 느껴질 만큼 특별했다. 그래서 36년 전 내 청년시절의 감회를 떠올리며 이 글을 쓴다. 그날 새벽 환호성을 지르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생일이 늦어 법적으로 미성년이었던 청년이 지금 초로의 나이에 접어들었으니 세월이 쏜살 같이 흘렀다.

 

 

36년 전과 지금 한국은 엄청나게 달라졌다.

국산품이 일제나 미제보다 더 인정받는 시대에 살고 있다. 오늘 축구경기에서 보듯 편파 판정으로 인한 약소국가의 설움 따위는 더 이상 겪지 않는다.

 

4강이란 성적표는 같지만, 그 시절 선수들과 오늘 선수들도 큰 차이가 있다. 1983의 청소년 대표팀은 박종환 감독이 어린 선수들을 혹사시켜 오직 스피드와 강단이 팀 전력의 전부였던 붉은 악마들이었고, 지금은 이강인으로 대표되는 개인기와 조직력이 조화를 이루는 우량 팀이다. 부디 4강에서도 선전하여 선배들의 성과를 더욱 진전시키면 좋겠다.

 

지금 프랑스 파리에선 BTS가 유럽인들을 매혹시키고 있고 며칠 전에 깐느에서 낭보가 들려왔다. 미국 메이저리거에선 류현진이 지구 최고의 투수로 명성을 날리고 있다.

 

애국자 코스프레 할 마음은 없다만, 대한민국 국민임에 자부심을 느끼는 요즘이다.

 

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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