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교육

환경파괴의 등가물

리틀윙 2019. 8. 21. 12:28

   

20141월 북유럽 교육탐방 때 스웨덴에서 있었던 일이다.

하루 일정을 마치고 식당에서 저녁을 먹는데 누군가가 웨이터에게 물티슈를 요구했다. 그런데 한국인 고객과 현지 종업원 사이에 의사소통이 전혀 안 됐다.나중에 알았지만, 그 상황에서 소통이 안 됐던 이유는 언어의 장벽이 아닌 문화의 장벽 탓이었다. 당시 스웨덴 사람들에겐 물티슈에 대한 개념이 자리하고 있지 않은 듯했다.

 

아프리카 어느 나라에서 이런 일을 격었다면 물티슈를 모르는 그 나라 사람들을 미개하다고 폄훼하겠지만, 우리보다 훨씬 선진된 사회에서 이러니 생각을 달리 할 일이었다. 아프리카든 유럽이든 물티슈를 모르는 사회보다 물티슈를 비롯한 일회용품이 범람하는 우리 사회가 진정으로 미개한 사회라는 반성이 들었다.

 

언제부터인지 주변에서 손수건을 갖고 다니는 사람을 극히 보기 드물다. 식당이나 공공건물의 화장실마다 세면기 옆에 일회용 휴지가 비치되어 있으니 굳이 손수건을 챙길 필요가 없다. 천민자본주의사회에 살고 있는 우리는 모든 것을 돈의 가치로 환원하는 사고에 익숙해 있다. 식당에서 사용하는 일회용 휴지나 물티슈를 쓰는 비용이 밥값 속에 포함되어 있을 것이므로 그것을 고객의 당연한 권리로 생각하는 식이다.

 

하지만, 명심해야만 할 엄중한 진실이 있다. 그렇게 쉽게 폐기처분된 일회용품이 지구 환경을 오염시키는 비용을 우리가 지불한 적이 없다는 것이다. 그 비용은 돈으로 환산이 불가능하다. 하나 뿐인 지구를 오염시킨 과오, 지구생태공동체 내의 동물형제들에게 인간이 끼친 피해를 어떻게 돈으로 갚을 수 있단 말인가?

 

물티슈의 주성분은 플라스틱이다. 손수건 대신 물티슈와 페이퍼 타월을 즐기면 바다와 땅이 오염되고 숲이 파괴되어 간다. 문명의 이기가 가져다준 작은 편리에 길들여져 시나브로 지구가 병들어가고 우리의 영혼이 망가져가고 있다. 콧구멍에 빨대가 박혀 피 흘리는 거북의 사진은 문명사회 인간 양심의 표상이다. 실종된 인간 양심을 회복하기 위한 첫걸음은 일회용품 사용에 대한 물화된 사고를 청산하는 것이다. 우리가 구매한 일회용품의 가격 속에는 환경파괴 비용이 책정되어 있지 않다. 그리고 환경파괴 비용을 만족시킬 등가물은 존재하지 않는다. 아무리 부자라도 그런 권리를 지닐 사람은 없다. 인간의 편의를 도모하기 위해 상처받아도 좋을 생명은 없다.

    






 

 

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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