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교육

야만인

리틀윙 2019. 3. 28. 14:10

며칠 전, 미국 토착민(인디언)의 권리를 주장하는 한 노인에게 백인 고교생들이 야유하고 조롱의 눈길을 보내는 영상이 공개되면서 많은 미국인들과 세계 시민들의 분노를 자아냈다. 더욱 가증스러운 것은 미국 대통령 트럼프가 거듭 이 학생들을 두둔하는 발언을 한 것이다.

 

현장에서 이 학생들은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Make America Great Again”가 적힌 '트럼프 모자'를 착용하고 있었다. 학생들은 인디언들의 시위에 맞서 이 같은 퍼포먼스를 펼치면서 트럼프의 이주민 차단 정책을 옹호하는 장벽을 세우라와 트럼프의 재선을 염원하는 “2020트럼프라는 구호를 외쳤다고 한다. 이에 트럼프가 학생들을 지지하는 발언을 하는 모양새는 흡사 문화대혁명기의 홍위병과 마오쩌둥을 연상케 한다.

 

학생들이야 철이 없어서 그렇다 치더라도 미국 대통령은 너무 뻔뻔스럽다. 미국 땅의 주인이 누구인데 그들 앞에서 장벽을 세우라고 외치는 짓거리를 두둔해 대는가?

 

독도가 일본 땅이 아니듯이 아메리카는 백인 땅이 아니었다. 인디언이 아메리카의 주인이고 백인들이 이주민들이다. 그런데 이 백인 이주민들이 원주민들을 몰살시키고 뺏은 땅에서 주인을 자처하면서 또 다른 가난한 외국인들의 이주를 막는 것을 당연한 듯 떠들고 있으니 기가 막힐 노릇이다. 파렴치한 백인들이 어떻게 인디언들의 땅을 강탈해갔는지 간략히 살펴보자.

 

아메리카원주민의 땅이 백인의 땅으로 되는 과정은 인디언에 대한 문화파괴와 폭력, 그리고 사기로 점철되었다. 위대한 미국이 탄생할 무렵 어떤 정치인은 인디언의 땅을 뺏기 위해 연방정부에 인디언으로 하여금 백인과 교역을 시켜 부채를 지게끔 하고 이 부채를 땅으로 상환하게 만들어야 한다는 제안을 했다. 이 잔머리의 귀재가 미국 건국의 아버지라 일컫는 토머스 제퍼슨이다.

 

토마스 제퍼슨은 그래도 양반이었다. 제퍼슨과 함께 미국 지폐에 등장하는 앤드류 잭슨은 아메리카원주민에게 악마와도 같은 존재였다. 아이들 교과서에 잭슨은 프론티어 정신의 화신이자 민주주의의 수호자로 나온다(트럼프 모자 쓴 학생들의 빗나간 애국심은 이런 거짓 교육의 결과일 것이다). 하지만 잭슨의 실상은 토지투기업과 노예무역으로 떼돈을 번 악덕 사업가일 뿐이다. 이 자의 치졸하고 악랄한 인간성은 한국의 이명박을 능가한다. 하워드 진에 따르면, 잭슨은 대규모 뇌물행각까지 자행한 인물이다(미국민중사, 233).

 

잭슨이 국민적 영웅으로 추앙된 계기가 된 역사적 사건이 1812년 전쟁이다. 이 전쟁을 통해 미국은 플로리다와 캐나다로 영토를 확장해갔다. 잭슨은 이 전쟁에서 인디언들을 분열시키는 전략을 통해 백인들의 희생을 최소화하면서 인디언을 몰살시켰다. 심지어 자기편에 서서 싸웠던 크리크족의 땅까지도 빼앗았다. 1814년에 잭슨이 크리크족과 맺은 협정은 사기와 협잡으로 백인들이 인디언 땅을 야금야금 갈취해가는 시발점이 되었다. 이 협정을 통해 잭슨은 인디언들에게 토지에 대한 개인소유권을 부여함으로서 인디언을 서로 분열시키고 토지 공동소유제를 파괴했다.(같은 책, 230-235)

 

>> 하늘을, 대지의 따스한 기운을 어떻게 살 수 있는가? 그런 사고는 우리에게 너무도 낯설 뿐이다. 우리는 대기의 신선함이나 강물의 눈부심을 소유하고 있지 않은데, 당신들은 어떻게 그것들을 우리에게서 사겠단 말인가? 우리 부족에게 이 땅의 모든 것은 신성하다...... <<

 

예전에 초등학교 국어교과서에도 실린 시애틀 추장의 항복 선언문이다. 비슷한 맥락에서 (아브라함 링컨이 행정장교로 참전한) 전쟁에서 패한 검은매 추장의 항복 선언문도 자못 감동적이다. 시애틀의 글귀와 마찬가지로 검은매 추장의 선언문도 문명과 야만의 역설에 대한 신선한 충격을 전한다.

 

>> ... 이제는 백인의 포로지만, 인디언이 부끄러워해야 할 것은 하나도 없다. ... 부끄러워해야 할 쪽은 백인이다...

 

백인만큼 나쁜 인디언은 없다. 그런 사람이 있다면 우리 부족에서 살 수 없으며 사형에 처해져 늑대의 밥이 될 것이다. 백인은 불쌍한 인디언을 속이려고 면전에서 웃음을 흘리고, 믿음을 사려고 악수를 하고, 속이기 위해 술을 먹이고, 우리 부녀자들을 타락시킨다...

 

백인들은 우리처럼 머리가죽을 벗기진 않지만 더 나쁜 짓을 한다. 영혼에 독을 풀어 넣는다. .... 나의 부족이여 안녕! 검은매여 안녕! <<

 

도널드 트럼프에게서 앤드류 잭슨을 본다. 두 사람 다 부동산 투기로 떼돈을 벌었고 또 위대한 미국의 대통령이 된 점에서 닮은꼴이다. 위대한 백인들이 알아듣지 못할 노래를 부르고 북을 치는 원주민들을 향해 당신의 철부지 홍위병들은 야만인으로 놀리지만, 양심이 있으면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보라. 과연 누가 야만인이고 누가 품위 있는 인종인지?

 

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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