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교육

우리가 선택한 삶이 아니다

리틀윙 2019. 3. 28. 13:45

 

201512월쯤의 일이다.

우리 아파트 내에 있는 슈퍼가 문을 닫았다. 노부부가 가게를 꾸려갔는데 장사가 너무 안 돼서 점포를 처분하고 떠나셨다. 슈퍼가 있을 때는 몰랐는데 없어지니 생활이 많이 불편해졌다. 사실, 있을 때도 슈퍼를 그리 많이 이용하진 않았다. 아파트에서 이삼백 미터 떨어진 곳에 홈플러스가 있기 때문에 운동 삼아 손수레를 끌고 거기 가서 맥주와 라면 같은 것을 가득 실고 오곤 했다.

 

사람들이 슈퍼를 이용하지 않는 이유는 물건값이 비싸기 때문일 것이다. 대형할인매장이란 곳을 처음으로 가본 때가 20년 전일 것 같다. 그때 구미에는 없었고 대구까지 원정 가서 차에 물건을 몇 박스씩 실고 왔다. 몇 년 뒤에 김천(구미-김천은 30km쯤 된다)에 이마트가 생기더니 이윽고 구미에도 생겼다. 현재 구미에는 이마트가 두 개, 홈플러스와 롯데마트가 하나씩 있다. 중소도시에 대형할인매장이 4개가 들어서면서 동네마다 슈퍼는 추풍낙엽처럼 떨어져갔다.

 

Home-plus는 가정(home)경제에 플러스가 되는 착한 시장이라고 홍보하지만, 대형할인매장에 의존하면서 우리 삶이 망가지기 시작했다. 맥주를 박스떼기로 실어 오니 안 먹던 술을 더 자주 그리고 더 많이 마시게 된다. 술만 먹는 것이 아니라 과자나 육포를 뜯어 먹으면서 시나브로 배가 나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대형매장에서는 과자 따위를 낱개로 파는 것이 아니라 패키지로 묶어서 파니 예전보다 소비가 헤퍼진다. 뿐만 아니라 쇼핑카트를 몰고 자본이 정해준 동선을 따라 움직이면서 충동구매를 마구 하게 된다. 강아지 키울 생각 없었는데 쇼윈도에 앙증맞게 꼬물거리는 애완견에 끌려 즉흥적으로 쇼핑카트에 담아온다. 여행지나 길거리에서 버려진 개들은 대부분 그렇게 팔려간 개들이다.

 

대형할인마트가 생긴 뒤로 엄마 아빠는 배가 나오고 아이들은 비만아가 되었다. 반려견을 길가에 버리는 사람의 도덕성도 문제지만, 따지고 보면 이러한 패륜의 출발점은 충동구매를 유도한 악덕 자본의 상술에 있다. 거대자본의 마수가 드리워지기 전에 우리는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이렇게 천박한 삶을 살지 않았다. 이것은 우리가 원한 삶이 아니다. 자본이 원하는 대로 살아진 것이다.

 

있을 때 잘하라고 했는데, 노부부가 어렵사리 운영하던 동네 슈퍼를 많이 이용하지 않았던 것이 후회된다. 한 번씩 슈퍼 갈 때 아지매들이 수군거리다가 나를 보고선 시치미를 떼곤 했다. 내 흉을 보나 싶었지만, 그게 사람 사는 풍경이다. 동네 관계망의 허브 역할을 하던 슈퍼가 사라지니 인간관계도 와르르 무너지는 실정이다. 거대 자본이 마을공동체를 파괴한 것이다. 이건 우리가 선택한 삶이 아니다.

 

거대 자본이 동네 슈퍼 주인을 강제로 쫓아내진 않았다. 하지만 그게 과연 슈퍼 주인의 자발적인 선택의 결과일까? 영세상인들이 게을러서 혹은 마케팅 전략이 나빠서 파산한 것일까? 초등학생과 이종격투기선수와의 싸움과도 같은 경쟁에서 영세상인들이 구사할 전략이 뭐가 있을까? 우리가 더 자주 이용해드렸더라도 이 분들의 패배는 불가피했다. 이건 그들이 선택한 삶이 아니다.

 

201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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