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교육

탈북 동포에게 관심 갖기

리틀윙 2019. 3. 27. 11:22

지난 토요일에 있었던 일이다.

 

태극기 집회에 탈북민들이 많이 참여한다는 기사를 읽고 그들을 비판하는 글을 페북에 올렸다. 글 올린 지 얼마 되지 않아 자신이 탈북민이라 밝힌 어떤 분이 내 글에 대한 불편한 소회를 댓글로 남기셨다.

 

>> 지금까지 써주신 많은 글들, 감사히 잘 읽어 온 한 사람으로서, 사회 속에서 처절히 살아가는 한 탈북민으로서, 글을 잘 쓰지 못하지만 감히 댓글을 달아봅니다. <<

 

위와 같이 말문을 여시면서, 태극기집회와 대척점이라 할 세월호 집회에 참석했을 때 보수세력으로부터 니네 북한에서 한국에 가서 시위 나가라고 시키드냐, 그렇게 좌빨이 좋으면 북한에 있을 노릇이지 왜 남한에 왔냐, 적화통일 하려고 왔냐는 식의 공격을 받았다고 한다.

 

이 분의 통절한 사연을 접하면서 나의 경솔과 무지가 너무 부끄럽고 미안해서 바로 글을 내렸다. 그리고 사과문을 올렸다.

 

>> ...... 제가 경솔했습니다. 미안합니다. 제 글이 틀린 말을 담고 있지는 않더라도 제 페친 가운데 탈북자가 있어서 제 글을 읽는다는 것을 인지했더라면 그 글을 쓰진 않았을 겁니다. ...... 제 좁은 식견을 부끄럽게 생각하고 깊이 반성하겠습니다.... <<

 

그랬더니 그 분이 메시지를 보내오셨다. 내가 틀린 말 한 것도 아닌데 괜히 자신의 댓글로 인해 불편을 끼쳤다며 미안해하신다.

 

댓글도 그렇고 메시지의 글귀들이 예의범절이 깎듯한 점이나 자신의 생각을 풀어내는 글재주가 범상치 않았다. 그래서 인간적인 호감과 탈북민에 대한 인식론적 호기심이 발동해서 메시지로 몇 차례 대화를 이어갔다. 대화 끝에 우리가 주고받은 메시지를 포함해서 오늘 있었던 일을 글로 올려도 되겠냐" 했더니 흔쾌히 동의하셨다.

 

마침 사회수업에서 요즘 공부하는 주제가 소수자에 대한 이해이기 때문에 나의 경험을 아이들에게 들려주었다. 그리고, 내가 몸소 겪은 이 특별한 일의 사회적 함의에 대해 다음과 같이 풀어 설명했다.

 

선생님은...... 내 페친 가운데 탈북민이 있으리라고는 상상도 못했어요. 그런데, 현재 우리나라에 정착해서 사는 탈북민 수가 상당히 많아요(지금 통계를 확인해보니 2001부터 2017년까지 탈북자 수가 3만명 가까이 된다). 다시 말해, 우리 주변에도 어디엔가 탈북민이 살고 있을 텐데 여러분 가운데 혹 그런 분을 본 사람이 있나요? ... 그러면 왜 탈북민을 보기 힘들까요?

 

(아이들이 대답한다. 우리와 비슷하게 생겨서 못 알아보는 것이라고. )

 

맞아요. 동남아 사람들은 외모로 한 눈에 구별이 되고, 중국인과 일본인은 말로 구별할 수 있지만 북한 사람은 우리와 같은 말을 쓰니......

 

하지만, 북한 말씨는 우리와 다르기 때문에 이 분들과 길게 얘기해보면 북한 분이라는 것을 알 수 있겠죠? ...... 안타깝게도 그래서 이 분들은 자신의 말투를 버리고 한국말을 배우기 위해특별한 노력을 한다고 합니다.

 

(나와 대화를 나눈 그 분의 타임라인에서 읽은 사연을 얘기해주었다. 밤새 라디오 들으며 한국어 발음 연습을 했다는...... )

 

어차피 남한 사람들도 지방마다 액센트가 달라서 서로 알아듣기 힘들 때가 있어요. 하지만, 우리 경상도 사람들이 서울 표준어를 익히기 위해 서울말 연습을 하거나 하진 않아요. 그런데 이 분들은 왜 이러시는 걸까요?

 

손가락질 받지 않으려고 그러시는 것 같아요!

 

(생각이 이쯤 미치니, 자연스레 함께 살아가는 대한민국이라는 학습목표에 대한 답이 도출된다.)

 

장애인이 비장애인에게 제일 바라는 것이 똑같이 대하기라고 배웠죠. 다문화가정이나 북한이탈주민들이 제일 바라는 것도 그런 것이랍니다.

 

저 사람은 뭐뭐야라고 딱지를 붙이는 것이 아니라 우리라는 테두리 속에 그들을 포함시켜야 합니다.

 

그런데 나는 그저께 그러하지 못했다. 그분들을 대상화했다. 내가 실수한 이유는 탈북민은 그저 내 머릿속에 개념으로만 존재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내가 저지른 실수가 약이 됐다. 그 분과의 불편한 조우가 내게 소중한 깨달음과 의미있는 사회수업 재료를 제공했기 때문이다.

 

지금 생각하니, 나의 실수보다 더 심각한 과오는 무관심이었던 것 같다.

우리 사회에 탈북 동포는 아주 구체적인 모습으로 존재한다는 것을 잊지 말자. 그들이 우리라는 써클 속에 들어오기 위해 처절한 노력을 하고 있다는 것을 기억하자. 우리가 더 많이 관심을 가지면 그 분들이 그런 불필요한 노력을 하지 않아도 되는 세상을 만들 수 있을 것이다.

 

1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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