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가 시민에게

망가져본 사람만이...

리틀윙 2019. 5. 17. 09:59

대학 때까지 나는 정말 농땡이였다. 맨날 강의 빼먹고 학교 주변 대폿집과 당구장을 전전했다. 그러다 보니 학점을 못 받아 학사경고를 2번이나 먹고 결국 전교 꼴찌에서 2등으로 졸업했다. (나보다 밑에 있는 그 친구는 누군지 몰라도 정말 한심하다)

 

지금 나를 아는 사람들은 과거에 내가 그랬다는 것이 믿기지 않는다 하고 그때 나를 안 사람은 또 지금 나의 모습에 놀란다. 그렇다고 내가 카멜레온 같은 인간이냐 하면 그렇지 않다. 둘 다 내 모습이 맞다고 생각한다. 진리는 전체다. 어느 한 시기의 모습만으로 사람을 평가하면 안 된다. 인간은 끊임없이 변화 발전해가는 존재이기 때문에 한 사람을 온전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전체 삶을 조망해야 한다. 그리고 서로 이질적인 두 모습 사이에는 필연적인 연결고리가 있다. 그것을 포착할 때 사람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 아이 키우는 부모, 학생을 가르치는 교사는 이 점을 유념해야 한다.

 

모두가 나처럼 극단적으로 대조적인 삶을 살아오진 않을 것이다. 나의 삶이 다른 사람들과 조금 다른 점은 치열한 역동성에 있다. 이것을 자랑질하려는 게 아니다. 반대로, ‘어두웠던나의 과거에 대한 고백이다. 나아가, 그것이 역설적으로 내게 어떤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던가를 짚으면서 나의 소박한 교육론을 제안하고자 한다.

 

이번 방학 때 근 40년 만에 고등학교 동창을 만났다. 그 친구가 나를 보고 하는 첫 말이, “, 니가 선생한다니 상상이 안 간다!”는 것이다.

 

적어도 나와 교직생활을 같이 했거나 페북에서 나를 아는 분은 친구의 말에 동의할 분이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 친구의 말에는 일면 진실이 담겨 있다. 그래서 순간적으로, 흡사 귀부인 행세하다 과거를 들킨 화류계 출신 여성과 비슷한 심경에 휩싸였다. ‘그래, 내가 옛날에 좀 그랬지...’ 하며 말이다. 담배 피다 들켜 학생과장에게 불려가 죽도록 맞았던 일, 학교 뒷산 동굴에서 숨어 짤짤이 하던 일, 빵집에서 도너츠 훔쳐 먹던 일 등의 기억이 주마등처럼 스쳐갔다.

 

하지만, 위축될 필요는 없었다. 왜냐하면, 그리 자랑스럽지는 않을지언정 나의 이 소박한 흑역사는 인간과 사회 그리고 학생을 이해하기 위한 나의 교육자적 자질 형성에 중요한 자양분으로 자리해 있기 때문이다.

 

>> 당신은 어떻게 작가가 되었소? 누군가 내게 묻는다면 내 대답은 한 가지다. “엉망진창으로 십대를 보냈기 때문입니다하고 말이다. ... 그렇다. 망가져본 사람만이 작가가 될 수 있다. 만약 망가진 적이 없는데도 작가가 된 인간이 있다면 그 사람은 변태다. <<

 

소설가 박민규의 말이다. 작가는 독자에게 정신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존재라는 면에서 교사와 다르지 않다. 그렇다면 훌륭한 교사가 되기 위한 필수불가결한 조건 또한 그러하지 않을까?

 

예전에 동학년 선생님 가운데, 숙제 안 해오는 애들 보면 이해가 안 간다는 푸념을 입버릇처럼 늘어놓는 분이 계셨다. 자신은 학창시절 선생님 말씀을 거스르거나 숙제 안 해간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는데 자기 말 안 듣는 애들의 머릿속을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이다.

 

같은 교사로서 이 분의 답답한 심정을 이해 못할 바는 아니지만, 이 분이 놓치고 있는 중요한 사실이 있다. 선생 말 잘 듣는 아이에게는 선생이 필요치 않은 점이다. 건강한 자에겐 의원이 필요 없나니, 교사의 존재 이유는 온전한 아흔아홉 마리의 양보다 길 잃은 한 마리의 양을 위해서이다. 그리고, 소시 때 자신이 길을 잃어봤어야 길 잃은 어린 양을 이해할 수 있다.

 

작가와 달리 교사가 망가진 삶을 살 필요까진 없지만, 최소한...

벚꽃이 만발한 화창한 봄날 야간자율학습 제끼고 친구들과 놀러갈 역모를 감행한 적이 한 번도 없는 사람은 교육자가 아니라 변태다. 그런 교사는 수업을 할 순 있어도 교육을 할 순 없다. 학생을 공무원으로 조련할 수는 있겠지만 인간으로 길러내지는 못한다. 절대로!

 

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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