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가 시민에게

어머니와 김치

리틀윙 2019. 3. 27. 17:06



어머니 댁에서 김치를 받아 왔다.

어머니께서 담그신 김치가 아니라 작은 누나 시어머님이 담아 어머니께 주신 것을 꼬불쳐서 내게 전하시는 것이다.

 

누나에게도 어머니에게도 그리고 다른 형제들에게도 미안해서 나는 받고 싶은 마음이 전혀 안 든다. 김치 주인이 엄마에게 드린 것을 왜 내가 받는가? 그리고 많은 자식들 가운데 하필 막내아들인 내가 받아야 하는가?

 

하지만 어머니의 자식 사랑은 어떤 합리성에 기초해 있지 않아서 이성적인 소통이 불가능하다. 어머니의 이런 불합리성 때문에 사실 자식들 간에 불편이 초래되거나 한 적이 없잖아 있었지만 이제는 이런 것들을 초월할 만큼 연륜이 들었고 또 우리 형제들은 모두 의좋은 편이다.

 

그래서 별 망설임 없이 그냥 받아와서 맛있게 먹는 것, 이게 어머니를 위해 내가 취할 수 있는 최선임을 안다. 만약 이런저런 합리적 근거를 대면서 고사한다면 어머니께 마음의 병을 안겨다 드리는 점에서 그것이야말로 불효막심한 짓일 것이기 때문이다.

 

한평생 어머니는 맛있는 것, 좋은 것을 절대 혼자 차지하지 않으셨다.

어머니와 김치이야기는 내 책에도 나오는데, 그 글을 쓸 때까지만 해도 어머니께서 손수 김치를 담아 주셨다. 사진 속 김치 통을 여러 통 담아 자식들에게 나눠 주셨다. (딸들에겐 적게 주시고 아들 가운데도 특히 내게 많이 주셨다)

 

그러던 엄마가 이젠 몸이 말을 듣지 않아서 더 이상 김장을 못해 주겠다고 하셨다. 나는 마음 잘 쓰셨다고, 이젠 아무 것도 하지 말고 편히 쉬시기만 하라고 했지만, 어머니의 그 선언이 이루어진 행간을 생각하니 마음이 아팠다. 사랑은 주는 것이다. 더 이상 무엇을 줄 수 없을 때 사람은 참담해진다.

 

손수 김장을 못해 주니 사돈에게 받은 김치를 고이고이 간직해서 내게 전하시는 어머니,

해마다 이맘때 김치통을 차 트렁크에 실으면서 드는 생각은......

앞으로 몇 번이나 더 받아올 수 있을까 하는 것이다.



  

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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