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가 시민에게

엘리트 체육교육

리틀윙 2019. 3. 28. 13:59

몇 해 전 어느 학교에서 체육부장을 맡았을 때의 일이다.

체육부장의 본분은 학교 체육교육에 힘쓰는 것이지만 이보다 학교 밖의 체육사업에 더 많은 신경을 써야 한다. 학교 밖 체육사업이란 주로 교육청과 학교의 실적 거양을 위한 육상대회를 말한다.

 

우리 학교에 육상 유망주가 있어서 도 대회를 앞두고 매일 공설운동장에 그 학생을 데리고 가야했다. 교육청에서 고용한 전문 트레이너에게 아이를 데려다 주고 훈련 끝나기를 기다렸다가 다시 아이를 내 차에 태워 집에 데려다 주는 게 나의 임무였다. 이 임무의 성격은 운전기사 노릇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학교체육교육과 학급학생교육에 전념해야 할 교사가 업무시간의 대부분을 이런 일에 소진하는 자체가 이 나라 체육교육의 구조적 문제를 여실히 보여준다.

 

그러던 어느 날 공설운동장에서 관내의 고등학교 체육교사와 학생이 대화를 주고받는 장면을 목격했다. 그 분도 나처럼 육상코치에게 학생을 데려다 주기 위해 온 것 같은데 두 사람 사이에 오가는 언어의 코드(code)가 이상했다. 교사-학생 사이의 화법이 아니라 조폭 선후배 사이에서나 엿볼 수 있는 언어형태였다. 분위기로 미루어 야단치거나 하는 상황이 아니었음에도, 교사가 학생에게 던지는 모든 문장에 새끼야라는 낱말이 들어갔다. “내가 말했잖아 새끼야. 머시기 머시기 한다고 새끼야.” 더욱 씁쓸한 것은 고3쯤 되어 보이는 남학생은 교사의 이런 말투가 너무 자연스러운 듯 실실 웃으면서 같이 말을 섞어가는 것이었다.

 

체육선생님들을 욕되게 할까봐 조심스럽다. 나는 이것이 체육교사 특유의 행동양식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학생에 대한 교사의 비교육적 언행은 어디서든 볼 수 있다. 이 씁쓸한 풍경은 체육교육의 문제가 아니라 체육엘리트육성체제의 문제가 파생시킨 비극의 단면일 뿐이다. 아마 그 선생님도 성장과정에서 그런 대접을 받았을 것이며, 학생 또한 나중에 그런 지도자로 자랄 가능성이 많다고 본다. 그러므로 사람을 탓할 것이 아니라 구조를 탓해야 한다.

 

모든 것을 성과로만 말하는 결과중심주의는 소외를 낳는다. 교육이 소외되고 인간이 소외된다. 학생의 인격을 짓밟더라도 실적을 거양하는 지도자는 보상을 받는 반면, 학생을 인격적으로 대하되 성과를 못 내는 지도자는 퇴출된다. 그러니 지도자는 수단과 방법을 안 가리고 실적 거양에 목숨을 걸 수밖에 없다. 이런 구조 속에서 스승과 제자 사이에 인간적인 관계는 없고 오직 물화된 실적만 존재한다.

 

빙상에 이어 유도에서도 성폭행 미투가 터져 나왔다. 피해자의 진술 가운데 가장 가슴 아픈 말이 맞는 게 너무 싫어서 열심히 했다는 것이다. 전 세계가 놀라는 한국체육의 빛나는 성과는 짐승 같은 아동학대를 자양분으로 이룬 것이다. 자랑스런 대한의 딸들이 시상대의 제일 높은 곳에 오른 것은 이들의 영혼이 비인간의 심연으로 추락해간 결과였으니, 전 세계에 울려 퍼진 애국가는 이 나라 체육정책 양심의 실종을 애도하는 레퀴엄이다.

아 대한민국이여!

 

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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