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운동

요즘 젊은 교사들은 왜 전교조를 기피하는 것일까?

리틀윙 2019. 4. 12. 12:58

새 학교에 와서 겪은 기분 좋은 일 하나와 우울한 일 하나를 소개하면서 교사집단의 문화와 전교조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

 

먼저 좋은 일은 후배 교사들과 술자리를 한 것.

이 학교 젊은 남교사들은 한 번씩 술자리를 마련한다고 한다. 술 마시는 자체가 중요한 게 아니라 술을 매개로 학교이야기와 살아가는 이야기를 주고받는 것에 의의가 있다. 예전의 우리 선배들은 술자리를 너무 자주 가져서 문제였고 요즘 교사집단 속에서는 공동체 문화를 잘 볼 수 없는 것이 유감이다.

 

이 기쁨이 채 가시지도 않은 다음 날 구미 전교조지회장님으로부터 우울한 소식을 전해들었다. 우리 학교에 전교조 교사가 나뿐이라는 것. 지금껏 학교에서 나홀로 조합원으로 지내기는 처음이다.

 

10년 전까지만 해도 이 학교처럼 젊은 남교사들이 많으면 그 중 2/3 쯤은 전교조에 가입해 있고 나머지 교사들도 집단분위기에 편승해 대부분 가입하곤 했다. 그런데 지금은 그게 정반대로 돌아가는 분위기다. , 전교조에 가입하지 않는 것이 대세이기 때문에 전교조에 드는 것이 오히려 이상해지는 집단정서가 작동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요즘 젊은 교사들은 왜 전교조를 기피하는 것일까?

이에 대해 한때 나는 전교조에 문제가 있어서 그렇다고 판단했다. 세상이 변했는데 신세대 젊은이의 눈높이와 감수성을 헤아리지 못하고 80년대 학생운동 식의 낡은 교육운동 방식을 고수한 탓으로 젊은 교사들이 외면한다는 것이다. 나의 이 판단은 여전히 유효하다고 믿는다. 하지만, 내 생각이 바뀐 것은 이것이 결정적인 원인은 아니라는 것이다. 젊은 교사들이 전교조든 교총이든 어느 집단에도 좀처럼 들지 않는 사실이 이를 방증한다.

 

개인주의가 팽배한 신세대 특유의 에토스 외에, 현장에 발령 받은 젊은 교사들이 전교조에 들지 않는 또다른 이유는 역설적으로 전교조가 학교를 바꿔놓았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전교조의 활약으로 전교조 따위가 필요 없는 교육현장이 된 것이다. 전교조가 태동할 당시의 현장교사들은 교육청의 횡포와 교장의 갑질에 울분의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이에 (전교조 노랫말처럼) “굴종의 삶과 반교육의 벽을 부수고분연히 일어난 집단이 전교조였고, 절대다수의 교사들은 이에 환호했다.

 

아침에 공문 보내고서 오전 11시까지 보고하라는 교육청의 횡포는 교육현장에서 사라졌다.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던 장학사가 이제는 교사를 섬긴다. 파쇼 교장의 갑질도 잘 볼 수 없다. 오히려 이제는 교장이 교사들을 두려워하곤 한다.

 

그러나 학교-교육청, 교사-관리자 간의 역학관계에 변화가 있을 뿐, 바람직한 교육이라는 측면에서 학교가 달라진 것은 별로 없다. 오히려 교육의 소외는 예전보다 더욱 심해졌다. 예나 지금이나 현장 교사들은 상급교육기관에서 양산해내는 무익한 행정업무를 처리하느라 헉헉거리고 그 과정에서 아이들은 뒷전으로 돌려진다. 입시위주의 찌든 경쟁교육은 예전보다 더욱 심화되어 초등학생은 물론 유치원 아이들까지도 과도한 학습노동으로 몸과 마음이 피폐해져가고 있다.

 

요컨대, 전교조의 노력으로 학교는 일정 부분 변했으되 교육은 변하지 않았다. 최근 드라마 스카이캐슬에서 보듯, 기득권 세력이 주도하는 반교육적 구조가 너무도 공고하여 전교조의 노력만으로 학교교육을 바꾸기는 역부족일 따름이다.

 

따라서 전교조는 교사대중과 국민들의 성원과 지지를 필요로 한다. 때문에...... 요즘 젊은 교사들이 전교조에 무관심하고 등을 돌리더라도 우리가 그들에게 등을 돌려서는 안 된다.

 

이 큰 학교에서 젊은 남교사가 이렇게 많은 곳에서 나홀로 조합원인 신세가 처량하지만, 이 엄중한 현실을 냉철하게 받아들이고자 한다. 그들이 전교조에 무관심한 자세를 보이는 것이 조금도 섭섭하지 않다. 혹 운이 좋아 그들 중 단 한 사람이라도 어떤 계기로 전교조에 호감을 품고 나와 함께 전교조 교사의 길을 가고자 하는 후배교사가 있다면 정말 기쁘겠다.


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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