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운동

빗나간 애국심

리틀윙 2019. 3. 27. 13:05

방탄소년단의 한 멤버가 입은 티셔츠 때문에 일본 측에서 공연을 취소하고 그 파장이 전 세계로 퍼져갈 전망이라 한다. 무엇이 문제이고 누가 문제인지 헤아려보기 위해 문제의 티셔츠를 검색해 봤다.

 

PATRIOTISM OUR HISTORY LIBERATION KOREA

애국심 우리역사 해방 한국

 

이라 적힌 글귀가 셔츠 전체에 빽빽이 적혀 있고 상단과 하단에 사진 2개가 인쇄되어 있다. 하나는 해방을 맞은 우리 국민들이 거리로 뛰쳐나와 만세를 부르는 장면이고 다른 하나는 일본 하늘에서 원자폭탄이 터지는 장면이다.

 

생각보다 심각하다!

애국심이니 우리역사니 하는 국수주의적 워딩도 유치하지만 원폭 사진은 너무 경솔했다. 일본인의 입장에서 이 사진은 가공할 민족적 트라우마를 불러일으키는 표상일 뿐이다. 세계적인 팝스타가 이 상징을 새긴 티셔츠를 입는 것은 일본국민에 대한 엄청난 폭력이고 모독이다. 거꾸로, 만약 일본의 팝스타가 소녀상을 포르노로 희화화한 사진이 박힌 셔츠를 입고 있을 때 우리가 그를 용인할 수 있는가?

 

우리가 일본을 미워하더라도 일본 사람을 미워해서는 안 된다. 1945년에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터진 원자폭탄에 희생된 사람들은 대부분 선량한 일본인들이다. 우리나라를 침략하고 세계대전을 일으킨 전범들이 아니라 그저 평범한 시민들이 죽어갔다. 그 속엔 아기를 꼭 껴안고 죽은 엄마들도 있고 또 조선인들도 있었다. 이들이 죽어 마땅한 사람들인가?

 

나는 방탄소년단에 대해 잘 모른다. 들은 바로는 이들이 전 세계의 음악팬들을 사로잡은 이유가 음악적 요소 외에 남다른 생각과 철학 때문이라고 한다. 바로 이런 이유에서 이 티셔츠는 문제가 많다.

 

우리나라 뉴스에서는 일본이 이 셔츠를 빌미로 소년단의 공연을 취소시킨 것이 속 좁은 처사로서 오히려 역풍을 맞을 거라 보도하고 있지만 내 생각은 다르다. 만약 티셔츠 사태에도 불구하고 방탄소년단이 계속 인기를 누린다면, 그것은 다음과 같은 이유에서 지금까지 그들이 누려온 유명세의 허구적 실체를 여실히 방증한다.

 

첫째, 이 문제투성이의 티셔츠가 소년단의 빈곤한 철학을 웅변적으로 말해주는데, 이들이 건강한 마인드를 소유한 젊은이라는 평가는 앞뒤가 맞지 않다. 이것은 그만큼 이들의 음악을 선호하는 팬들의 인식을 반영한다. 따라서 이들의 음악성은 그렇고 그런 케이팝과 다를 바가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둘째, 원폭 티셔츠에도 불구하고 소년단이 여전히 국제적인 명성을 누린다면, 국제적 international’의 범주는 미국으로 국한해야 할 것이다. 전 세계에서 미국의 원폭 투하를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나라는 미국 자신과 우리 밖에 없다. 일제 35년의 피해를 겪은 우리가 원폭 투하를 긍정하는 것은 이해할 수 있어도 미국인들이 그렇게 생각하는 것은 이성적이지 않다.

 

방탄소년단의 나이를 감안할 때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실수라 생각한다. 다만 현재 이들이 얻고 있는 세계적인 명성을 생각할 때 그 실수의 무게가 중할 따름이다. 누구든 실수를 통해 성장하는 법이다. 하지만 실수를 실수라 생각하지 않을 때 성장 대신 퇴보가 이어질 것이다. 그런 면에서 방탄소년단의 과오를 보지 못하고 오히려 일본 측의 반응을 비난하는 우리 언론이 더 한심하다. 언론의 이러한 태도는 이 국보급 청년들의 번영에 도움은커녕 해를 끼칠 것이다.

 

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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