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가 학부모에게

진정한 1학년

리틀윙 2019. 3. 28. 14:18

1학년 담임선생님이 한 해 생활을 마무리하는 시점에서 아이들에게 질문을 던졌다.

 

진정한 1학년은 어떤 것일까요?”

 

질문의 취지는 3월 학교에 입학했을 때와 지금 자신의 모습이 어떻게 달라졌는지를 돌아보고, 자신의 달라진 부분에 긍지를 갖고 2학년 생활을 맞이하라는 뜻으로 이해된다. 이 질문에 어떤 아이가 다음과 같이 답했다고 한다.

 

진정한 1학년은 울지 않고 교실에 들어오는 것입니다!

 

어린 아이가 엄마 품을 떠나 학교에 들어가는 것은 스무 살 청년이 군대 갈 때 보다 더 낯설고 두려울 것이라 봐야 한다. 그래서 1학년 교실 앞에서는 엄마 손을 놓지 않고 안 들어가겠다고 울고불고 하는 아이들을 자주 보게 된다. 위의 아이가 그런 아이다. 어쩌면 아이는 1학기 내내 그러다가 2학기의 어느 시점 이후로 울지 않고 교실에 입장할 수 있었을 것 같다. 그 시점이 언제인지 부모도 교사도 친구들도 몰라도 자신은 안다. 아이에게 그 시점은 자신이 진정한 1학년으로 거듭난 순간으로 기억될 것이고, 그 기억은 아마 평생토록 이어질 것이다.

 

3월의 학교는 많은 아이들에게 그저 가기 싫은 곳으로서 거부감의 대상일 뿐이었다. 그러다가 차츰 현실 감각이 형성되면서, 학교란 가기 싫어도 어쩔 수 없이 가야만 하는 곳이라는 인식이 내면에 자리할 것이다. 하지만 아이는 여전히 엄마와 짧은 실랑이를 벌인 뒤에 눈물을 글썽이며 교실에 입장한다. 이 때 아이는 숱한 갈등과 좌절 그리고 어떤 열등감에 사로잡힐 것이다. 그런 어느날 아이는 마침내 눈물 없이 씩씩한 발걸음으로 교실에 입성한다. 아이에게 이 순간은 고치에서 빠져나와 날개를 펄럭이며 세상을 자유롭게 나는 한 마리의 나비가 된 것처럼 자기 생의 일대 혁명을 이룬 것이다. 이 혁명을 통해 아이는 비약적으로 성장한다.

 

비고츠키의 페레지바니예perezhivanie라는 개념이 이런 것이다. 페레지바니예는 생생한 경험'이란 뜻이지만, 어려움을 견뎌내는 과정에서 수반되는 카타르시스의 의미도 함축하기 때문에 번역이 불가능하다. 비고츠키는 유전과 더불어 페레지바니예에 의해 인격이 결정된다고 봤다. 당신의 삶을 돌아보고 가슴 벅찼던 경험을 떠올려보라. 어려운 상황을 용기 있게 극복하거나 여러 사람들 앞에서 수모를 겪은 일, 꾸중을 듣고 부당한 일을 겪거나, 찬사를 받은 경험을 기억하라. 당신의 인격은 이 모든 페레지바니예의 총합이다.

 

아이의 성장은 페레지바니예를 통해 이루어진다. 교과서 지식이나 시험 공부가 우리를 성장시킨 것은 별로 없다. 우리 삶에서 위기로 다가온 어떤 시기를 견뎌내면서 우리 내면에 자리한 마음의 근육, 정신의 굳은살이 우리 삶을 밀고 가는 동력이다.

 

이런 의미에서, 특히 초등학교 저학년 아이들에게 당해 학년도에 자신을 성장시킨 계기가 된 나름의 페레지바니예를 성찰하고 발표하게 하는 것은 교육적으로 굉장한 의의가 있다. 이를 통해 공동체 구성원들이 서로 격려하며 연대의식을 기르는 한편, 개인의 생생한 경험을 공유함으로써 집단지성을 도모하는 효과도 기대된다.

 

교사의 좋은 질문이 아이를 성장시킨다.

 

진정한 1학년은, 2학년은...... 6학년은 어떤 것일까?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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