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가 학부모에게

정신과정과 교실의 행복

리틀윙 2019. 3. 28. 14:13

2017~2018, 두 해 동안 도량초에서 3학년을 맡았다. 이 둘은 모두 내 교직생애에 가장 기억에 남을 아이들이다. 둘 다 착하고 순진하고 정이 많은 아이들이었다. 하지만, 둘 사이에는 큰 차이점이 있다. 올해(2018학년도)와 달리 작년(2017학년도) 아이들은 나를 무척 힘들게 했다. 그래서인지 녀석들은 4학년이 된 올 한 해 내내 우리 교실을 기웃거리면서 나를 향해 미안함과 고마움을 담은 정겨운 눈인사를 보내곤 했다. 지나고나니 사랑스럽지만 함께 할 때는 힘들었던 것이 사실이다. 반면, 올해 아이들과는 1년의 교실 생활이 너무 행복했다. 작년에는 월요일을 마주하기가 너무 두려웠지만, 올해는 조금 과장해서 말하면 아이들 만나러 학교에 가는 것이 설렐 정도였다. 요컨대, 작년과 올해의 교실은 지옥과 천국에 비유할 수 있을 것 같다.

 

같은 학교, 같은 교실에서 같은 3학년을 맞이했는데 이 둘이 크게 다른 이유가 뭘까?

작년 아이들도 올해 아이들도 보통의 3학년처럼 개구쟁이들이다. 하지만 이 둘은 정신과정 면에서 현격한 차이를 보인다. 정신과정mental process 혹은 정신기능은 개인의 인지적/정서적 역량을 일컫는다. 작년 아이들은 상황 판단 능력이 부족해서 장난기를 발산할 때와 정숙을 유지해야 할 때를 구별하지 못했다. 놀랍게도 이렇게 내 속을 썩이는 녀석들이 쓰레기봉투 누가 좀 버리고 올래?” 하면 서로 가겠다고 실랑이를 벌이는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이 아이들로부터, “아이들이 교사를 힘들게 하는 것은 악한 품성이 아니라 낮은 정신과정에 기인한다는 것을 배웠다.

 

반면, 올해 아이들은 앉을 자리와 설 자리에 대한 분별력이나 공동체를 위해 자신의 욕망을 절제하는 자기조절역량이 발달해 있어서 내가 너무 편했다. 작년에는 중간놀이 시간 끝나고 수업 분위기를 잡는데 5분 정도가 소요되었지만, 올해는 수업 시작 5분 전 예비 종이 울리면 바로 자리에 앉아서 나를 기다린다. 해서 동학년 커피타임 끝나고 허겁지겁 교실로 들어가면서 내가 아이들에게 미안해하는 입장이니, 작년과 정반대의 형국이라 하겠다.

 

아이들의 정신과정이 발달해 있다고 해서 교실의 행복이 보증되는 것은 아니다. 정신과정은 교실행복의 필요조건이지 충분조건은 아니다. 행복한 교실이 되기 위해서는 교실의 사회적 역학관계가 안정되어 있어야 한다. 이와 관련하여, 작년 교실과 올해 교실은 큰 차이를 보인다.

 

작년 아이들은 개성 강하고 기질이 센 아이들이 많아서 군웅할거의 전국시대마냥 교실에서 '피바람'이 그칠 날이 없었다. 그런데 올해 아이들의 역학관계는 매우 안정적이어서 교실의 응집력이 탄탄했다. 이것이 가능한 이유 또한 정신과정과 관계가 있다. 정신과정은 의지력을 비롯한 정서적인 측면을 포함하는 개념인데, 똑똑하고 선량한 의지를 지닌 아이가 교실 내 아동 관계망을 주도해갈 때 교실은 행복꽃이 만발해간다.

 

올해 우리 교실에서 선량한 지도자들은 여자 아이들의 몫이었다. 발달과정상 초등학교 저학년에서는 남학생보다 여학생들이 정신적으로는 물론 신체적으로도 더 성숙해 있다. 따라서 정신과정이 발달한 여학생을 교사 편으로 만드는 것이 성공적인 학급경영을 위한 최대 관건이 아닌가 생각해본다.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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