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가 학부모에게

What do you want to be?

리틀윙 2012. 1. 21. 16:12

 

 

 

내 나이 다섯 살 때 어머니로부터 행복이 우리 인생에서 제일 중요하다고 들었습니다.

학교에서 “When you grow up, what do you want to be?”라는 과제를 내 주길래, “행복한 삶이라고 적어 냈습니다.

그들은 내가 문제 뜻을 잘못 이해하고 있다고 말하지만, 나는 그들이 삶을 잘못 이해하고 있다고 말해주었습니다.

 

.....................

 

너무 재밌습니다. 과연 레넌다운 유머 감각입니다.

 

영어에서 be 동사의 보어로 형용사명사둘 다 올 수 있는데 두 경우에 따라 be 동사의 의미가 달라지죠. 레넌의 이 천재적인 유머가 이 같은 이치에 연유하는 것 같습니다.

 

What do you want to be?

일반적으로 이 물음이 요구하는 답으로 “I want to be ( )”에서 ( ) 속에 올 말은 형용사가 아닌 명사로서 소위 장래희망으로서의 직업이 와야 합니다.

그러나 레넌은,

넌 장차 뭐가 되고 싶냐 What do you want to be?”는 질문을 넌 장차 어떤 삶을 살고 싶냐 What do you want to be?”는 뜻으로 이해해 나는 행복한 삶을 살고 싶다 I want to be happy”라고 답했습니다. 레넌의 빛나는 자질은 사람들이 문제의 뜻을 모른다고 면박을 줄 때 그걸 되받아쳐 "너희는 인생을 모른다"고 일갈한 것에서 절정을 이룹니다.

 

인간에게 중요한 것이 뭡니까?

사실, 나도 레넌처럼 너 커서 뭐가 될래?”라는 질문을 대할 때마다 황당합니다.

내 생각으론, 이에 대한 가장 훌륭한 정답은 노래 제목처럼 ‘Que sera sera / What will be will be’입니다. 이 말을 될 대로 되라로 해석하면 안 됩니다. “저절로 무엇이 될 것으로 된다.”는 뜻입니다. 선생이든 의사든 농부든, 쥐박이 빼고 사람은 누구나 이 세상에서 쓸모 있는 그 무엇, 자기 팔자(운명론이란 의미가 아닌 저마다 타고난 소질을 발휘하는 무엇)대로 무엇이 된다는 것입니다.

 

, 여기서 우리는 초딩 아니 유딩 때부터 지겹도록 강요받아온 말도 안 되는 물음 ‘What do you want to be’에 대한 준비된 답변으로 의사, 판사, 축구선수... 등등의 희망사항 속에 배어 있는 슬픈 물신의 기제를 살펴봐야만 합니다.

 

장래희망이란 말이 그렇습니다.

자본주의사회에 사는 어린 학생에게 장래 희망이란 기표는, 레넌의 답변처럼, “장차 내가 어떤 삶을 살고 싶다는 존재론적인 희망이 아닌 내가 무슨 직업을 가지고 싶다는 식의 물신화된 욕망을 함의하는 것입니다.

이에 조응하여, 학생들이 열심히 공부하는 이유도 훌륭한 삶을 살기 위해서가 아니라 돈 되는 직업을 차지하기 위해서입니다. 3 교실의 급훈으로 걸려 있는 한 시간 더 공부하면 마누라 몸매가 바뀐다거나 남편 직업이 바뀐다는 천박한 슬로건이 이를 웅변으로 말해줍니다.

 

요즘 같은 때에 고등학교 교문 위에 붙은 현수막을 볼 때마다 슬퍼집니다.

아무개 외 몇 명 S대 합격 / 몇 회 졸업생 사법고시 패스

 

판검사가 되는 자체가 잘 난 삶이 될 수 없습니다. 이 나라 오욕의 사법역사를 생각할 때 더욱 그러합니다. <부러진 화살>에 나오는 판사 놈이 존경의 대상입니까?

대통령이 되면 뭐 합니까? 전두환, 노태우 같은 놈이 우리 고장 출신이라거나 우리 학교 선배라는 것이 자랑이겠습니까?

 

이 나라를 망쳐온 인간들이 어떤 부류들입니까? 책가방 끈 짧은 농부들이 나라를 망칩니까? 오히려 많이 배운 놈들, 교문 위 현수막에 자랑스런 이름 석자 걸쳐진 그런 자들이 이 나라를 망쳐온 것 아닙니까?

 

그러니까 우리 아이들에게

“What do you want to be?”라 묻는 것은 좋은데, 이 물음의 의미를

너 얼마나 돈 되는 직업 가진 인간이 될래?’가 아니라, ‘너 얼마나 보람있는 삶을 살래?’라는 존 레넌 식 의미로 물읍시다.

 

그렇게 묻는 것이 교육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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