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론과 실천

구성주의의 맹점

리틀윙 2018. 10. 26. 16:22

아침에 티셔츠 입으면서 찾아든 생각을 나눈다.

 

나는 카라가 있는 셔츠는 좀 답답해서 라운드형 셔츠를 선호한다. 그런데 이게 단점이 하나 있다. 사진의 옷처럼 전면에 디자인이 없는 경우는 옷의 앞뒤 면이 쉽게 구분되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어떨 때는 뒷면이 앞에 오게 입었다가 불편해서 상표(레테르)가 앞에 있는 걸 확인하고선 다시 벗었다가 새로 입곤 한다.




 

오늘 알게 되었다. 옷의 앞뒤 면을 쉽게 구분하는 방법을!

모든 옷에는 세탁방법을 안내하는 태그가 붙어 있다. 옷의 안쪽 면에 있는데 셔츠의 경우는 왼쪽 하단에 달려 있다. 이제부터는 라운드형 셔츠를 입을 때 윗부분의 상표를 어렵게 확인하는 대신, 아래쪽의 세탁방법 태그를 쉽게 확인하고 입으면 된다.




 

생활의 진보가 일어났다. 오늘 발견은 엄청난 행운이다.

그런데, 이 중요한 사실을 왜 이제야 알게 되는가? 무려 50년 넘게 걸렸다. 50년까지 오기 전에 누가 내게 이 생활의 지혜를 알려주었더라면 좋았을 것이다. 이 중요한 팩트가 초중고 때 교과서에도 나오지 않았다.

 

이 맥락에서, 피아제와 비고츠키를 생각한다.

피아제는 개인이 세계를 탐색하면서 스스로 앎을 구성해간다고 한다(구성주의). 여기서 방점은 스스로혹은 독자적으로independently’에 있다.

 

중요한 사실 혹은 진리를 스스로 깨닫는 것은 좋은 일이다. 오늘 아침 나는 아르키메데스의 유레카를 경험했다. 이 지적 희열은 실용성을 떠나 그 자체로 인간다운 성장을 견인한다. 문제는 스스로 구성하는 데 50년이 걸린 점이다.



 

비슷한 경우를 내가 가르치는 아이들의 발달 상황에서도 자주 겪는다.

숫자9를 사진과 같이 쓰는 아이들이 많다. 첫 번째는 정상적인 글씨이고 오른쪽의 둘은 잘못 쓴 글씨인데, 왜 이런 결과가 빚어지냐 하면, 아이들이 숫자9 쓰기의 출발을 12시 방향에서 시작하기 때문이다. 발달단계상 미성숙한 어린 아이는 누구나 처음에 이 방향에서 시작할 것이다. 하지만, 똑똑한 아이들은 (피아제의 말대로) 나름의 탐구exploration를 통해, 동그라미 부분이 닫힌 모양으로 쓰기 위해서는 3시 방향에서 출발해야 한다는 것을 스스로 발견하고선 독자적으로행동을 수정할 것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많은 아이들은 이걸 모른다. 어떤 아이는 닫힌 원모양을 만들기 위해 12시에서 출발하여 두 바퀴 가까이 돌아(270+360=630도 회전) 세 번째 사진처럼 만든다. 글씨가 보기 싫은 건 둘째 치고 얼마나 비효율적인가? (4학년 가운데도 이런 아이 많이 봤다.)

 

이 비효율성은 교사의 개입으로 간단히 고칠 수 있으니, 이 개입이 비고츠키의 개념으로 매개 mediation’이고, 통상적인 용어로는 교육이다. 이 맥락에서 교육은 영어로 instruction, 가르침이다.

 

7차교육과정 이후 학교 현장은 지금까지 구성주의가 지배해 오고 있다. 구성주의의 원리에 따라 아동의 자발적인 구성을 강조하며, 교사의 개입을 최소화하라고 주문한다. 가급적이면 교사가 말을 적게 해야 한다며, 설명식 수업을 엄금하는 분위기다.

 

그러나, 피아제가 뭐라고 떠들건, ‘자발적 구성은 매우 비효율적이다. 그렇다고 나 홀로 발견의 중요성을 무시하는 것은 아니다. 앎은 본질적으로 구성이다. 구성이 아닌 주입으로 형성된 앎은 나의 지식이 아니다. ‘나의 지식이 아니면 나의 삶을 살 수 없다.

 

하지만 우리는 위에서 예를 든 사소한 앎은 물론 중요한 깨달음조차, 스스로 구성하기 전에 먼저 깨달은 사람으로부터 영향을 받는 경우가 많다. 비고츠키의 말로, “더 나은 정신기능을 지닌 이웃으로부터 매개되는것이다.

 

우리 교육현장에서 구성주의가 지나치게 강조되고 그에 따라 교사 매개(가르침)의 중요성이 폄하되는 것은 심각히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8.10.


덧붙임) 교사매개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것은 몰라도 설명식 수업을 정당화하는 논지는 재고되어야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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