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운동

합리적으로 살아가는 게 자랑일 수 없다

리틀윙 2018. 7. 12. 13:55

  

작년에 전교조 구미지회에 전교조 탈퇴처리 요청 전화가 걸려 왔다. 업무담당자가 죄송하지만, 탈퇴 이유를 여쭤도 되겠습니까?”라고 물었더니 그 분이 하시는 말씀이, “이명박근혜가 물러나고 문재인 정부가 들어섰기 때문이란다.

 

전교조에 각별한 애정을 품는 한 사람으로서 나는 그 분이 현 시점에서 전교조를 탈퇴한 것이 서운하기보다 어려운 시절에 조직에 가입하셨던 마음 씀씀이가 고맙다.

 

사실, 합리적인 판단으로는 전교조에 들 이유도 남아 있을 이유도 없다. 전교조에 안 들어도 전교조가 투쟁을 통해 쟁취한 무엇은 고스란히 전제 교사의 몫으로 돌아온다. 일반 조합원 가운데 전교조 하는 짓거리가 예뻐서 전교조에 남아 있는 사람은 아마 한 사람도 없을 것이다. 그러면 뭐 때문에?

 

그래도 교육과 사회 발전을 위해 필요한 조직이고, 조직은 밉지만 그 속에서 우리 교사들을 대신해 고생하는 사람들이 안쓰럽고 고마워서 마음을 쓰는 것이 전부다.

 

내가 전교조 상층부를 비판하고 심지어 경멸하기까지 한 글을 수백 편을 올리고도 조직을 떠나지 않고 또 전교조를 미워할 수 없는 것은, 그분들이 나보다 고생하기 때문이다. 그들이 전교조고 내가 전교조다.

 

인간은 참으로 비합리적인 동물이다.

운동판에서 치열하게 활동하는 좌파 운동가들을 보면 도무지 이해가 안 가는 구석이 있다. 신이나 내세의 존재를 믿지 않는 철학적 유물론자들이 자기 신념을 위해 온 몸을 던지는 것이다. 영화 ‘1987’을 보라. 인간의 탈을 쓰고 그렇게 잔인하게 인간을 짓밟은 고문기술자도 이상한 인간들이지만, 오직 자기 신념을 위해 그걸 버텨내는 인간들은 더 이상하게 느껴지지 않던가?

 

그런데!

세상이 발전하는 것은 바로 그 이상한 인간들의 비합리적인 행동양식에 말미암는다.

 

합리적으로 살아가는 게 자랑일 수 없다. 전교조가 실망스러워서 젊은 교사들이 전교조를 기피한다는 의견이 설득력이 없는 것은, 전교조 아닌 다른 곳에도 참여하는 경우가 드물기 때문이다.

 

진보가 능사는 아니다. 세상이 발전하는 것은 좌와 우의 균형을 통해서이다. 전교조가 칙칙하고 과격해서 싫다면 참신하고 온건한 집단에라도 들어 내가 바라는 교육은 이런 것이다라는 주장을 펼치며 자기 신념을 위해 비합리적으로뜨겁게 살아가는 청년 교사들을 보고 싶다.


2018.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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