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운동

연대의 중요성

리틀윙 2018. 7. 12. 12:19

 

항해술의 발달과 아메리카대륙의 발견에 힘입어 제국주의가 팽창해갈 때, 유럽의 노예상인들은 아프리카의 흑인들을 대량으로 사냥해서 노예로 팔았다. ‘사냥이란 수사는 결코 시적인 표현이 아니다. 백인들은 나무 위에 숨어 있다가 지나가는 노예에 그물망을 던져 포획했다. 어른 노예는 자식 노예가 보는 앞에서 채찍으로 죽도록 맞았다. 파농의 명저 [대지의 저주받은 사람들] 서문에서 사르트르는 이런 흑인아이의 입장에서 백인 제국주의의 만행에 대해 성찰해야 한다고 웅변했다. 이런 맥락에서, 60년대 말 미국 흑인 인권운동가 말콤 엑스가 백인을 백인악마로 일컬은 것은 결코 과도한 수사법이 아니다.

 

빈민가에서 자란 많은 흑인들이 그러하듯 말콤 엑스는 뚜쟁이에 마약밀매를 전전한 건달이었다. 그러다가 감옥에서 책을 가까이 하면서 흑인이 어두운 삶을 살 수밖에 없는 현실사회의 모순에 눈을 뜬 뒤 투사로 거듭난다. 특유의 달변으로 말콤 엑스는 가는 곳마다 청중을 구름처럼 몰고 다녔는데, 당대에 흑인인권 문제가 사회문제로 부상하면서 백인들 사이에서도 인기가 많았다. 하루는 대학교에서 연설을 마치고 강당을 나서던 중 백인 여학생이 말콤에게 다가와 말을 건넸다.

 

당신의 훌륭한 연설을 잘 들었다. 당신에게 감동을 받아 나도 뭔가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혹 백인이 흑인을 위해 할 수 있는 게 뭐가 있는가? 라고 물었을 때, 말콤 엑스는 다음과 같이 간결하게 답했다.

 

Nothing!

 

흑인 명배우 덴젤 워싱턴이 주연을 맡고 흑인 명감독 스파이크 리가 연출한 [말콤 엑스]에 이 장면이 흥미 있게 묘사되고 있다. 영화에는 안 나오지만 알렉스 헤일리가 쓴 자서전에서 말콤은 이에 대해 후회한다고 하였다. 이 일을 계기로 말콤은 모든 백인을 적으로 규정하는 노선을 수정하기에 이른다.

 

말콤 엑스의 이 일화는 사회운동을 하는 사람들에게 중요한 교훈을 전해준다. 연대의 중요성이다.

 

페미니즘 운동 진영 가운데 모든 남성을 적으로 규정하여, "여성해방의 길에 남성의 도움은 필요치 않다는 관점을 지닌 분들이 계시다고 들었다. 가치를 추구하는 모든 집단의 스펙트럼은 정상분포곡선을 이룰 것이기에 페미니스트 가운데 이러한 극좌적 입장이 존재하는 자체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그러나, 이런 분들은 여성해방의 미래를 지연시킬 뿐이다.

 

교육운동에서도 급진주의의 맹점을 흔히 볼 수 있다.

나 역시도 한때, 전교조와 교총, 평교사와 관리자, 승진 안 한 교사와 승진한 교사를 선악 이분법으로 재단하고서 후자를 향해 맹목적인 적대감을 품었던 적이 있다. 우리 현장교사의 경험치로 이 관점은 어느 정도 일리가 있다. 하지만, 인간 존재의 본질은 그리 간단치가 않다. 이를테면, 의로운 우파와 비굴한 좌파도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 위의 대립쌍에서 우측에 있는 사람들 가운데 의롭고 따뜻한 심성을 지닌 분들이 많다. 어떤 포지션에 있든 그런 분들을 적으로 삼으면 안 된다. 도의적으로 그러하고 운동 전략적으로도 그게 바람직하다.

 

도의적으로 옳은 것이 운동적으로도 옳다. 왜냐하면, 사람을 움직이는 가장 큰 힘이 예의이기 때문이다. 우리와 다른 사람들에게 차이를 존중하고 예의를 지키는 가운데 우리와 함께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사회 진보의 방정식은 아주 간단하다. 현재 우리와 다른 사람들 가운데 일부를 우리 편으로 만드는 것이다. 작년 대선 때 문재인을 찍은 상당수는 이전에 이명박근혜를 찍었던 사람들이다. 현재 우리와 다른 사람을 배척하고선 어떠한 미래도 기약할 수 없다.

 

백인과 연대하지 않는 흑인인권운동,

남성과 연대하지 않는 여성운동,

보수주의자들과 연대하지 않는 사회진보 운동은

불가능하다.

 

피해를 입지 않은 사람이 피해를 입은 사람과 똑같이 분노할 때 비로소 정의가 실현된다.

Justice will not be served until those who are unaffected are as outraged as those who are. - Solon


2018.2.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