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교육

자유에 관하여

리틀윙 2018. 7. 12. 13:27

사진은 빗속에서 폐지를 줍다가 빗물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주저앉은 노인의 모습이다.

(서울신문 정연호 기자의 작품)

  


    

http://v.media.daum.net/v/20180321204909960?rcmd=rn

 

위의 기사에 따르면,

노인들이 수레 한가득 폐지를 모아 팔면 1천원을 받았는데, 이젠 폐지 값이 폭락해서 500원밖에 못 받는다고 한다.  

 

송강 정철의 시조가 생각난다.

 

이고진 저늙은이 짐벗어 나를주오  

늙기도 서러운데 짐까지 지실까  

 

차라리 조선시대의 노인은 이렇게 비참하진 않았다. 모두가 가난했으니 말이다.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얻을 수 있다는 자유대한민국에서,  

1인당 국민소득 3만불 시대에서 하루 종일 수레 끌어서 500원을 손에 쥐고 절대빈곤에 허덕이는 사람이 우리 국민이다. 우리 동포이고 우리 이웃이다.  

 

굽을대로 굽은 노인의 허리는 굴곡진 우리 현대사를 표상한다.  

얼마나 더 멀리 날아가야 비둘기는 쉴 수 있을까?

 

.  

http://realestate.daum.net/news/detail/main/20180104074311042

     

위의 기사에선 요즘 한국 부자들 사이에 베트남 아파트 투자가 유행인데, 수능 친 손자손녀에게 선물로 사주는 노인이 많단다. 베트남이지만 아파트 가격이 만만치 않다. 2억이란다. 어떤 노인은 손자에게 선물로 지불하는 돈이 2억인데, 어떤 노인은 죽도록 폐지 모아 팔아서 1천원도 못 받는다.

 

     

자유민주주의.  

누구를 위한 자유고 무엇을 위한 민주인가? 

 

강남 졸부에겐 수능 친 손자손녀에게 2억짜리 베트남아파트 사줘서 나중에 20억으로 부풀려줄 자유가 있고,  

달동네 할머니도 하루 종일 수레에 폐휴지 가득 모아 단돈 1천원에 팔아 근근이 생명을 연명해갈 자유가 있다.

 

에스키모인이 옷을 벗을 자유를 자유라 부르지 않듯이, 비를 맞으며 노인이 폐지 수레를 끌 자유를 자유라 일컬을 수는 없다. 노인은 자유롭지 않다. 노인의 삶은 고통 그 자체다.  

 

달동네 노인의 고통은, 손자에게 2억짜리 아파트 사주는 강남 졸부노인의 자유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이 글에서 내가 링크 건 두 기사는 서로 극단적인 대조를 보이지만 실제로는 동전의 양면처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가진 자의 자유는 가난한 사람의 자유를 유린한 대가로 만들어진 것이다. 어떤 자유가 어떤 고통에서 기인한 것이라면 그것은 자유가 아닌 폭력이다.  

 

모두가 자유롭지 않으면 자유가 아니다.  

1%의 자유를 위해 99%의 자유가 희생되는 사회는 자유민주주의가 아닌 재벌독재사회다.

 

  2018.3.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