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11월부터 ‘비판교육학세미나’라는 이름으로 원서읽기모임을 결성하여 공부해 왔다. 페이스북을 통해 온라인 세미나(웨비나)로 같이 공부할 사람을 모집하였다. 열 분 정도 참가하셨는데 그 중 한 분은 출판사 편집 일을 하시는 분이었다.
교사 위주의 공부모임에 일반인이 참가의욕을 보이는 것이나 신생출판사로서 좋은 교육 서적을 출간하고 싶다는 포부가 신선하게 와 닿았다. 그래서 나는 우리가 원서를 읽고 나서 번역서를 낼 때 그 출판사에서 내자는 제안을 했다. 신생출판사 입장에서 나의 제안을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나의 제안은 순전히 그 출판사를 위한 배려였다. 그 책은 내용도 좋지만 제목이 진보교육에 관심이 있는 분들의 눈길을 끄는 큰 매력이 있어서 상품가치가 그만이었다. 자칭 타칭 그 쪽 전문가인 내가 이 책을 번역서로 내자고 제안하면 두 손 들고 환영할 출판사가 많을 것이다. 그럼에도 나는 그 출판사를 선택했다. 두 가지 이유에서였다.
1) 그 분이 우리와 함께 공부하고자 하는 열의를 보이셨고
2) 신생 출판사였기 때문이다.
나는 의심이 많은 한편 어떤 부류의 사람은 너무 쉽게 믿는 편이다. 이건 어떤 과대망상일 수도 있는데, 나는 모든 사람을 “사회 진보의 차원” 즉, 운동적 차원에서 만난다. ‘교육의 진보’를 위해 좋은 책을 많이 생산하여 세상에 내놓으려 출판업을 막 시작한 젊은 분들에게 손을 내미는 것이 “연대”의 실천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그것은 나의 착각이었다.
첫째, 그 분은 우리 모임에 공부하러 오신 게 아니었다.
우리 공부모임이 3주마다 한 번씩 1년에 20차례 가량 열렸는데, 지금까지 그 분은 단 한 번도 참여하지 않았다. 금요일 저녁 9시부터 새벽1시까지 4시간 동안 진행되니 열공의 의지가 없는 사람은 함께 하기 힘들다. 이 분은 그런 의지의 소유자가 아니었다. 그럼 무슨 이유로 이 모임에 온 것일까?
둘째, ‘교육의 진보’와 별 관계가 없는 분들이다.
아마도 편집자와 사장 두 사람이 전부인 소규모 사업체인 것 같은데, 삼십대 중반의 사장은 자기 스스로 나를 만나기 전까진 비판교육학의 원조인 그 책 저자의 이름도 못 들어봤다고 했다. 작년까지 이 출판사가 출간한 유일한 책은 교육과 거리 먼 것이었는데, 우리가 공부한 이 책을 필두로 향후 ‘비판교육학 전문 출판사’로 캐치프레이즈를 내걸 생각으로 보인다.
물론, 기업행위의 본연의 목적은 이윤창출이지 진보적 가치의 추구는 아니라 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조선일보나 경향신문도 이윤창출을 목표로 하지만 둘의 본질은 많이 다르다. 이 분들이 지금까지 우리에게 보여준 행적은 ‘진보’라는 낱말을 무색하게 한다.
결론부터 간단히 말하면, 이 출판사는 우리 공부팀을 역자로 하는 번역서를 내기로 약속해 놓고 우리가 번역 작업한 결과물만을 가져간 채 우리를 팽시켰다.
초벌번역을 마치고 책 발간을 위해 편집자와 소통하는 과정에서 삐걱거리기 시작했다. 번역 작업이나 계약 조건과 관련한 마찰이 아니라 서로의 태도나 화법에 관한 갈등이 전부였다. 물론, 손뼉도 마주쳐야 소리 나는 법이니 나의 잘못도 없지 않다. 자신이 부당한 대접을 받는다는 생각이 들면 상대가 누구든 손상된 자신의 자존감을 회복하기 위해 저항적인 자세를 취하는 것은 바람직하다. 그러나 그 분은 정말 내게 해서는 안 될 심각한 무례를 너무 자주 범했다.
이상하게도 일이 꼬여만 갔다.
편집자와의 소모적인 다툼을 접고 사장과 접촉하여 번역사업 진행을 위한 외교적 노력을 펼쳤다. 개인적인 마음으로야 모든 걸 털고 지긋지긋한 관계를 끝맺고 싶었지만 출판사와의 신의 문제도 있고, 무엇보다 그간 고생한 후배들을 생각해서 어떻게든 책을 내야만 한다는 일념뿐이었다. 조카뻘의 사장에게 나의 자존심을 굽히고 번역 작업 재개와 함께 계약서 작성을 약속 받은 상황에서 나와 잘 알고 지내는 출판사(이하, B출판사) 사장에게서 전화가 왔다. 우리가 번역하고 있는 책의 한국어 판권이 유효하니 우리더러 그 쪽 출판사에서 책을 내라는 제의였다.
황당했다. B출판사의 말이 맞다면, 우리와 일을 같이 하기로 한 출판사(이하, A출판사)가 지금까지 미국 현지 업체와 판권도 맺지 않고 우리에게 번역 일을 시킨 것이 된다. 그 경우, 이 책에 눈독을 들이는 다른 국내 출판사가 현지 측과 계약을 맺는 일이 발생하거나 하면 우리의 모든 노력이 수포로 돌아가는 것이다. 이 책은 독자의 호응을 끌기에 충분한 물건이어서 그럴 가능성이 많다. 실제로, 우리 팀에서 이 책을 번역하기 앞서 내가 속한 연구소(경북대학교 출신 비판교육학 전문 연구자들로 구성)에서 이 책 번역을 하자는 제안을 내게 해왔는데, 내가 나의 사정을 말하면서 어렵사리 양해를 구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B출판사의 말만 믿고 그 쪽의 제안을 선뜻 따를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사실관계를 정확히 알아봐야만 했다. 정말 난감했다. 불과 몇 분 전까지 출판사 사장과 전화통화로 화해와 새출발을 다짐했는데...... 그러나, 욕을 먹더라도 사실관계를 확인해야만 했다!
전화를 걸었다. “정말 미안한데...... 며칠 전에 B출판사로부터 이러저러한 전화를 받았다. 나는 ‘그럴 리가 없다고 다시 확인해 봐라’고 했는데, 좀 전에 똑같은 결과를 확인했다는 전화를 받았다. 이런 상황에서 내가 사장님에게 계약여부 확인을 안 할 수가 없다. 내가 원망스럽겠지만 내 입장을 이해해 달라. 정말 미안하다.”고 말했다.
사장이, 불같이 화를 내며 우리 팀과의 모든 관계를 파기하겠다고 한다. 그러면서, 계약서는 보여줄 수가 없다고 한다. 자신을 불신하고 뒷조사를 한 게 너무 괘씸해서 보여주고 싶지 않다는 것이다.
그 심정은 충분히 이해가 간다. 편집자와 번역작업 외의 일로 지리멸렬한 소모적인 분쟁을 이제 막 해결한 시점에서 그런 ‘도발적인’ 질문을 해오니 화가 나는 것이다. 하지만,
첫째, 소모적인 분쟁으로 말할 것 같으면 나 또한 피해자다. 관련하여, 출판사 측에선 내가 이상한 사람이라 하겠지만, 나와 우리 팀의 입장에선 정반대로 해석할 것이다.
둘째, 순간적으로 욱 하는 마음은 이해가 가지만, 내 입장에서 헤아려 보면 충분히 이해가 갈 일이다. 일종의 ‘합리적 의심’이라 하겠는데, 나는 의심을 하는 게 아니라 확인을 요청한 것뿐이다.
출판사는 내가 지긋지긋하겠지만, 그런 심정은 나도 마찬가지다. 정말 지긋지긋한 악연이다. 하지만, 감정은 감정이고 사업은 사업이다. 나는 번역팀 리더로서 후배들 입장을 대변해야만 했다.
며칠 뒤, 사장이 이성을 되찾고 보니 “모든 것을 파기한다”는 자신의 말이 과도했다는 각성이 들었던지, 우리 팀에게 이상한 제안을 해왔다. “번역 일을 계속 추진하되, 이성* 선생은 빼고 하겠다”는 것이다.
도대체가 말이 안 된다. 외람되지만, 나를 빼면 이 번역팀이 성립하지 않는다. 내가 이 팀을 만들었고 1년 내내 나의 강독을 통해 공부를 해왔다. 향후의 번역 또한 나를 빼곤 진행할 수 없다. 도의적으로도 그렇고 업무적으로 그러하다. 이런 사정을 그쪽에서도 훤히 알고 있을 것이지만, 나를 빼라는 것은 “너희들과 일 하기 싫다”는 말에 다름 아닌 것이다.
편집자는 이미 초벌번역 결과물을 손에 넣은 상태다. 계약서는 작성하지 않았지만, 그 결과물은 그 출판사와 책을 내기 위해 우리 번역자들이 피땀 흘려 일궈낸 지적 소산이다. 그런데, 출판사가 우리 입장에서 받아 안을 수 없는 조건을 내걸며 “일 같이 하려면 하고 말려면 말라”는 식의 통첩을 보내는 것은 갑질이고 횡포일 뿐이다.
누가 봐도 말이 안 되는 비이성적이고 비윤리적인 상거래 행위였다. 내 비록 도덕군자는 아니지만, 그 지긋지긋한 일련의 과정 속에서 조카뻘 되는 두 사람에게 50대의 인생 선배로서 크게 욕먹을 짓 한 것은 없다. 그런데 이 분들은 자기네의 그 말도 안 되는 갑질 횡포를 정당화하기 위해 나를 나쁜 사람으로 몰고 갔다. 편집자는 나와 후배들을 이간시키기 위해 나에 대한 험담을 담은 메일을 뿌려댔다. ‘이** 선생은 이런 사람이기 때문에 같이 일을 못한다’는 것이다. 도대체 그 분은 나에 대해 뭘 안다고 그런 험담을 나의 지인들에게 터뜨리는 것일까? 설령 내가 그런 사람이라 하더라도 그게 번역 작업과 무슨 관계가 있다는 말인가?
말도 안 되는 제안이었지만, 나는 그 제안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7인의 역자 속에 내 이름을 빼는 대신 뒤에서 돕기로 했다. 그러나 이번에는 팀 동료들이 나의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책을 안 내고 말지 그렇게는 못한다는 것이다. 나에 대한 예의도 그러하고 무엇보다 그 출판사와 상대하고 싶지 않다는 것이다. 나의 후배들이지만 눈물겹도록 고마운 일이다.
편집자가 메일로 인신공격을 퍼붓는 한편, 사장이라는 분은 자기 페이스북 타임라인에 다음과 같은 악의적인 비방 글을 게재했다.
그 분의 많은 페친들이 그 밑에 위로와 공감의 댓글을 다셨는데, 심지어 나의 페친이기도 한 분도 많았다. 내가 다음과 같은 댓글을 남겼다.
>> 대표님. 본문에서 ‘거지같은 사람’이란 저를 지칭하시는 거죠? 나이 상으로 제 조카뻘 되는 분으로부터 그런 표현을 들으니 참으로 당혹스럽네요. 제가 지금까지 대표님 직원 분이랑 그 악몽과도 같은 ‘서신 전투’를 벌일 때도 대표님을 향해서는 최대한 예의를 지켜드렸거늘... 물론, 페북에서의 공개토론은 제가 먼저 제안했습니다. 하지만, 이런 식으로 상대에 대한 인격모독성 독백을 원한 것은 아닙니다. <<
그랬더니, 몇 시간이 지난 뒤에 다음과 같은 답글이 달렸다.
>> 네? 뭔가 오해가... (울상 짓는 이모티콘) ... 저희 회사의 일 중... 출판 쪽 일이 아니라 전혀 다른 사업 쪽 이야기라 자세하게는 말씀 못 드리지만, 아이고... 아닙니다. <<
솔직히, 나는 이 답변에서 그 분의 인품에 큰 실망감을 느낀다. 그 쪽에서 내게 적개심을 품는 건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어린애도 아니고 ‘대표’라는 직함을 갖고 있는 분이 광장에서 대중을 향해 중대한 발언을 던졌으면 책임을 질 일이다. 서슬 시퍼런 칼을 휘두를 때는 언제고 저렇게 조악하게 꽁무니를 빼는 것은 뭔지...?
시기상으로 그 분들이 한창 나를 공격해 댈 때의 일이다. 다시 말하지만, 사장은 나를 번역 사업에서 배제시킬 아무런 합리적 근거가 없음에도 “순전히 내게 품은 악감정 때문에” 그렇게 했다. 그런 사장의 태도와 같은 시기 (울상 짓는 이모티콘)을 동반한 애교 떨기는 너무 앞뒤가 안 맞아 나로선 역겨울 따름이다.
보다시피 내가 그 사장에게 거지같은 대접을 받았는데, 그 회사에는 같은 시기에 나 말고도 거지같은 적(敵)이 그리도 많은가? 책이라곤 단 한 권 밖에 낸 적이 없는 소규모 출판사에서 출판 쪽 일이 아닌 다른 사업으로 원수 질 일이 있을까?
>> 그 자의 수많은 온라인 글, 저서, 활동... <<
이런 사람과 출판 쪽 일이 아닌 다른 비즈니스 관계를 맺을 일이 있을까?
출판사 사장인 까닭에 그 분은 (나처럼) 온라인에서 글을 즐겨 쓰고 저서를 낸 교사들을 페이스북 친구로 많이 두고 있었다(아마 지금도 그러할 것이다). 그런데, “수많은 온라인 글과 저서, 활동... 학력(박사) 등등의 프로필을 가진” 사람이 그리 많을까? 그 소수의 사람들 중에 사장으로부터 거지같은 대접을 받을 사람이 나 말고 누가 있을까?
그로부터 며칠 뒤 사장은 페이스북에서 나를 차단했다. 애교 가득한 뉘앙스로 ‘오해 말라’는 말을 했던 그 분이 말이다.
>> 그러니 부디 싸움을 걸어오길 바란다. 얼마든지 밟아주겠다. <<
싸움을 걸어오길 바라고 지근지근 밟아주겠다는 분이 왜 그 대상의 접근을 원천봉쇄하는 것일까?
정리하자.
계약서 확인 요청했다는 이유로 우리 번역팀을 팽시킨 것이 본인 스스로도 비이성적인 처신이었다는 생각이 들 것이다. 이 인지부조화에서 벗어나기 위해 그들은 나를 나쁜 사람으로 몰아가고 있다. 즉, “일이 사달 난 것은 내 잘못이 아니라 그 사람 잘못이다”라는 투사기제(projection)를 발동하고 있는 것이다.
나에 대한 남다른 신망을 품고 있는 번역팀 후배들에게 내 험담을 그렇게 하시는 분들이니 다른 곳에선 오죽할까 싶다. 갈등 사태에서 어느 한쪽 말만 들으면 사태의 본질이 왜곡될 것은 자명하다. 대중으로 하여금 올바른 판단을 돕고 또 나의 방어를 위해 이 글을 올린다.
이 지긋지긋한 악연으로부터 피차 엄청난 손실을 입었다. 정신과 치료 운운하셨는데, 그 심정 이해가 간다. 나 역시도 그러했으니 말이다. 참 아쉽다. 판권 계약서만 보여줬으면 모든 게 순리적으로 해결되었을 텐데... 길 가는 사람에게 물어 보기 바란다. 상식적으로, 그 상황에서 내가 그 요구를 하는 것이 그리도 큰 잘못일까? 편집자의 메일에선 내가 님에게 무례하게 요구했다 하는데, 새빨간 거짓말이다. 나는 더 이상 예의를 지킬 수 없을 정도로 낮은 자세로 요청했다!
그리고, 영문판 한국어판권은 살아 있었다(유효했다). 따라서, 님들은 나의 그 질문에 화를 낼 것이 아니라 오히려 고마워해야 한다. 그 이유를 말하자면 이 글이 너무 길어진다. 님들은 그 이유를 안다. 바로 그 이유 때문에서라도 님들은 나를 비방하면 안 된다.
........
이 끔찍한 악연을 통해 내가 얼마나 심각한 손실을 입었는지 귀사는 모르실 겁니다. 이 지리멸렬한 소동으로부터 피해를 본 것은 우리 팀뿐입니다. A출판사도 미국판권업자도, 포르투갈어판권업자도 그리고 B출판사도 그 누구도 피해를 입진 않았습니다. 우리 팀이 피해를 봤습니다.
자업자득이라고요? 아니죠. 귀 출판사의 불찰이 너무 큽니다. 귀 출판사에서 영문판 업체와 계약을 제대로 맺었다면 이런 사태가 발생 안 합니다. 아니, 사장님이 제가 계약서 확인 요청할 때 응해주기만 하셨어도 이런 일 안 벌어지죠.
나의 잘못이 있다면, 같이 공부할 마음이 조금도 없는 사람을 너무 쉽게 믿고 번역서 발간 제안을 귀사에 한 것뿐입니다. 님들은 그런 책이 있는지도 몰랐고 순전히 내 덕분에 그 책을 내는 겁니다. 이 자체로도 님들은 나를 비방할 게 아니라 고마워해야 합니다.
이 글을 끝으로 모든 것을 털겠습니다. 그나마 그 좋은 책을 우리말로 잘 번역해 주시면 우리가 여러분들을 덜 미워할 것입니다. 단, 우리 팀으로부터 받은 번역 내용은 일절 카피하시면 안 됩니다. 지켜보겠습니다.
불편하고 지루한 글을 끝까지 읽어주신 벗들에게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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