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실살이-1

악동교실의 빛과 그림자

리틀윙 2017. 6. 26. 10:27

교실 뒤편 쓰레기통에 쓰레기가 꽉 차서 봉투를 묶어 버려야 했다.

쓰레기봉투 좀 버리고 올 사람?” 하면,

너도 나도 손을 들며 아우성을 친다. 교사인 사람이 제일 난감한 상황이 이런 때다. 모든 아이들에게 혜택을 다 줄 수 없는 것.

 

그 날 행운의 주인공은 우리 반 꼴통 중 한 녀석에게 돌아갔다. 녀석은 룰루랄라 발걸음도 가볍게 1층을 향해 걸어가고, 나머지 아이들은 부러운 시선으로 녀석을 지켜본다. 한 아이의 입에서 좋겠다!”는 시기와 자조가 섞인 목소리가 들려온다.

 

 

  

교사로부터 성은(?)을 못 입어서 안달 난 아이들이다. 수업하다 보드마커가 잘 나오지 않아서, “행정실에 가서 보드마커를 좀 가져 와야겠는데, 누가 갔다 올래? 행정실이 어딘지 아는 사람?” 하니, 서로 안다고 저요, 저요!” 한다.

 

그 중 한 아이에게 시켰는데, 감감 무소식이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아이는 행정실이 어디 있는지 몰라서 한참 헤맨 뒤에 돌아왔다. 아이가 거짓말을 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확실히 알지는 못하지만 일단 손부터 들고 보는 것이다. 교사에게 인정받고 싶어 하는 마음이 임무완수에 대한 냉철한 책임감을 압도했다고 봐야 한다.

 

이런 모습은 어른들 세계에선 절대 볼 수 없고, 다른 학교에서 초4 담임할 때도 잘 볼 수 없다. 고백컨대, 아이들에게 심부름 부탁했을 때 손사래를 치거나 하는 반응에 상처를 받아 내 스스로 쓰레기봉투를 버리거나 했던 기억이 있다.

 

다른 학교 3학년들도 다 이런지 궁금하다만, 우리 반 아이들의 이런 모습을 보면서 존 로크의 백지설 tabula rasa’을 떠올린다.

 

우리 반 아이들은 교사의 말을 절대적으로 신봉한다. 한 보름 전에 스마트폰의 폐해에 대한 계도 교육 차원에서 세바시 강의 영상 스마트폰으로부터 아이를 구하라를 보여 주고선 스마트폰의 문제점에대한 일장연설을 늘어 놓았더니 아이들이 엄청 충격을 받았다. 그 중 한 아이는 그 뒤로 스마트폰을 없앴다. 이 녀석도 우리 반에서 심한 말썽쟁이 중 하나인데, 스마트폰 중독 증세를 보였던 아이이다. 스마트폰에 사족을 못 쓰던 녀석이 그런 반응을 보일 줄은 나도 전혀 생각지 못했던 바다. 녀석은 나를 무척 따른다. 3월 첫날에 말썽꾸러기의 기질이 역력했던 녀석이 지금 달라진 모습을 보이는 것은 교사-학생 간의 관계성에 힘입은 것이 전부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교육은 관계다!

 

날마다 흰 도화지에 그림 그리는 기분으로 아이들을 만난다.

그래서 혹 나의 안 좋은 모습을 닮을까봐, 길이 아닌 길로 잘못 인도할까봐 조심스럽기도 하지만, 아이들의 때 묻지 않은 순수성은 교사에게 큰 힘이 된다.

이 아이들은 내가 조금만 재밌는 이야기를 해줘도 쫙 빨려 온다. 동화책 이야기를 해줘도 그렇지만 수업에 관한 내용으로 이를테면 사회나 과학 관련 이야기를 해줘도 그렇다. 어떤 아이는 나는 공부하는 게 재밌다고 혼잣말을 내뱉곤 한다. 존 듀이는 성장의 제일 조건은 미성숙이라 했는데, 우리 반 아이들을 보면서 그 말을 실감한다.

 

그럼에도 지금도 힘들다.

지금도 여전히 약간만 통제의 끈을 늦추면 교실이 총체적 혼란상태로 치닫는다.

 

그렇다면, 위에서 말한 아이들의 순수성과 이 혼란은 (내가 늘 말하는) 동일한 사물의 두 측면(Both Sides), 즉 변증법적 양극성(bipolarity)인 것일까?

 

초기에는 나도 그렇게 생각했다. 그러나 (지금 번역하고 있는) 네오비고츠키주의의 아동발달이론을 공부하면서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아이들이 교사의 말귀를 잘 못 알아듣거나 교실일상 속에서 분위기 파악이나 사회적 맥락을 잘 읽지 못하는 한계는 순수성과 동전의 양면(양극성)을 이룰지 모른다. 지적으로 약간 어눌하면서 착한 아이들이 이런 경향성을 보인다. 그러나 지적으로 부진한 착한 아이가 교사를 힘들게 하는 것은 별로 없다. 쉬는 시간에 화장실 다녀와도 돼요?”라고 묻는 아이는 교사를 빵 터지게 하지, 빡치게 만들지는 않는다.

 

악동교실에서 교사를 힘들게 하는 녀석들의 속성은 자기조절 능력의 결핍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교사를 힘들게 하는 아이들의 한계는 이것이 전부이다. 그리고 이 속성은 아이들의 순수성과 아무 관계도 없다. 이를테면, 전혀 순수하지 않은 어른들 가운데도 자기조절 안 되는 사람이 많고 그런 사람들은 주위 사람들을 힘들게 한다.

 

흔히 요즘 아이들 발랑 까졌다고 하지만, 보다시피 예나 지금이나 아이들은 순수하다. 그럼에도 교사가 힘든 것은, 다시 말하지만, 자기조절능력의 결핍 탓이 전부이다. 아이들이 학교에 입학할 때 자기조절 능력을 충분히 갖추고(80년대말 내 초임 시절까지만 해도 이러했다) 들어온다면, 교직은 정말 낙원일 것이다. 더구나, 지금 세상이 바뀌어 모든 것이 정상적인 상태로 회귀해 가는 이 분위기에선 더더욱 그러할 것이련만......

 

(그럼, 요즘 아이들이 자기조절능력이 심각하게 결핍된 이유는 뭔가? 이 인과관계에 대해 예전에 내가 일련의 글을 남겼다. 못 보신 분들을 위해 아래 덧글에서 내 블로그 링크를 걸어 둔다.)

 

2017. 6.14.

 


'교실살이-1' 카테고리의 다른 글

비상상황 아니다  (0) 2018.01.26
반장선거  (0) 2017.09.15
배추흰나비로부터의 사색  (0) 2017.06.26
스승의 날  (0) 2017.06.23
관계의 결  (0) 2017.04.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