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실살이-1

배추흰나비로부터의 사색

리틀윙 2017. 6. 26. 10:20

주말 지나고 월요일 아침에 오면 맨 먼저 교실 창가에 있는 배추흰나비 사육장으로 향한다. 예상대로, 성충이 생겨났다. 번데기 단계를 지나 어른벌레가 된 것도 축복이지만, 두 마리가 아닌 한 마리만 나온 것도 다행이다. 이 뜻을 설명하기 위해 지금까지 나의 [배추흰나비 사육 체험보고서]를 간략히 정리해본다.



  

아이들과 내가 이 녀석들을 맞이한 것이 5.25.()이었다. 요즘 세상이 좋아 인터넷으로 주문하니, 사육환경을 완벽하게 갖춘 실험세트가 교실로 배달된다. 사육망과 배추(케일)이 심어진 화분 2, 그리고 (, 애벌레, 번데기, 성충)이 종류별로 담겨져 있다. (솔직히 첫날 애벌레는 보지 못했다. 우리의 관찰 역량 부족으로 못 봤을 수도 있고 애벌레가 이미 번데기로 탈바꿈했을 수도 있다.)

 

그 날 성충(배추흰나비)을 바로 날려 보냈다. 고향이 어딘지는 모르지만 멀리서 객지에 오기까지 녀석이 갑갑한 패키지 속에서 며칠 동안 얼마나 힘들었을까를 생각하니 안쓰러운 마음이었다. 그러나 나의 이 값싼 휴머니즘은 자칫 아이들의 공부를 망칠 뻔했다. 어느 페친의 말인즉, “성충을 날려 보냈으니, 알과 애벌레 관찰은 끝이라는 것이었다.

 

속으로 걱정을 했다. 그러나 사육망을 자세히 들여다보니 애벌레는 보이지 않고 번데기가 두 마리 보였다. 그래서, 거기에 희망을 걸었다. 우리가 바라는 경우의 수는 두 마리의 성별이 다른 것이었다. 확률은 반반이었다. 그리고, 이번에는 성충이 세상에 나오면 무조건 상자 안에 가둬두는 것이었다. 녀석들이 합방을 할 때까지! 이때가 5.26.()

     

그 다음 주 월요일(5.29.) 성충 한 마리가 태어났고 그 다음 날(5.30.) 또 한 마리가 더 태어났다. 우리의 바람대로 녀석은 성별이 달랐던지 며칠 뒤(6.2.) 애벌레가 꼬물꼬물 기어 다니는 모습이 보였고, 케일 이파리에 붙어 있는 알도 포착되었다. 알은 크기가 정말 작았다. 나는 알을 못 봤는데, 한 아이가 알을 보고서 선생님, 저기 알 있어요!”라 소리쳐서 알게 되었다. 역시 아이들은 작은 세상을 어른들보다 훨씬 잘 본다. 알은 1mm 크기도 안 되고 노란 색이다.



    

 

배추흰나비는 자식들이 잘 먹고 살도록 배추나 케일 잎에 알을 낳는다. 알이 애벌레로 탈바꿈하면 녀석들의 먹성이 얼마나 좋은지 케일 잎 하나 없어지는데 얼마 걸리지 않는다. 최초의 사육환경 때의 케일화분과 지금의 케일화분을 비교해 보라.


그 뒤로, 지난주에 성충 두 마리를 날려 보내주었고, 오늘 아침에 한 마리를 또 날려 주었다. 사실, 걱정했던 것이 ()에 퇴근할 때 번데기가 2마리 있었는데, 저 녀석 둘이 혹 성별이 다른 성충으로 부화되어 주말에 또 합방을 해서 임신을 할까봐 걱정했다. 지금 화분에 케일이 더 이상 없는 상태에서 애벌레들을 아사시킬 수도 없는 노릇이니 말이다.

 

 

그런데 한 마리만 나왔다. 다행이다.

지난 번에는 제발, 합방을 해라했으면서 지금은 제발 하지마라고 주문하니... 인간이 참 간사하다. 그리고 아이들도 볼 장 다 봤다는 듯지금은 관찰에 별 흥미를 보이지 않는다. 우리 반에서 배추흰나비 사육에 가장 열성을 보이는 학생은 나다.




 

교사인 직업이 좋은 점도 이런 거다.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지적으로 성장하는 것이다. 열악한 환경에서 학창시절을 보냈던 탓에 나는 과학실험을 한 기억이 얼마 없다. 고등학교 때는 아예 과학실이 없었다. 신설학교는 없어도 되는지, 그런 학교 허가를 어떻게 내줬는지 교사가 된 지금 생각해 보면 말도 안 되는 것이었다.

 

그러나 다행히 선생이 되고 나서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과학실험 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과학수업을 통해 자연의 섭리에 대한 실감나는(appreciative, 존 듀이의 용어로)” 체험을 하고 음악수업에서는 아름다운 노래를 연주하고 부를 수 있어서 참 좋다. 이 낡은 천민자본주의사회에서 교사보다 더 좋은 직업이 없고 교직 가운데도 여러 과목을 가르치는 초등교사가 제일이다. 철학을 가르치는 대학 선생은 지금 내가 느끼는 이 실감나는지적 희열을 못 느낄테니 말이다.



    

 

# 배추흰나비로부터의 철학적 사유

 

1. 같은 사육장에서 태어난 성충이 짝짓기를 하면, 그건 근친상간이 아닌가? 인간에겐 심각한 부조리(윤리적으로나 생물학적으로도)가 왜 동물세계엔 아무 문제가 안 되는 것일까?

 

2. 배추흰나비는 해충이라 한다. 보다시피 녀석들이 배추잎을 엄청난 속도로 파괴해 가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경우 진정한 패해자(?)는 배추라 하겠는데, 배추는 인간의 이런 생각을 어떻게 생각할까?

 

3. 입장이 다르면 생각도 다르다.

나는 이 말을 경험치가 다르면 느낌도 다르다는 말로 풀이하고 싶다.

브루너가 말하길, 초등학생이 과학 공부를 할 때는 과학자와 유사한 자세를 취하도록 학교교육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한다. 과학자가 돼서 배추흰나비를 관찰하면, 꼬물꼬물 기어 다니는 애벌레가 징그럽지 않다. 아이들도 귀엽다고 말한다.

이 신비한 경험을 한 아이들은 살아 있는 생명체에 대한 사고와 태도 또한 달라질 것이다.

 

4. 배추흰나비의 한살이 과정을 책에서는 (애벌레 번데기 성충)로 적고 있는데, 이건 난센스다. 애벌레를 유충이라 하지 않고 애벌레라 썼으면, 성충은 어른벌레로 일컬어야 한다. 한자어면 한자어, 순우리말이면 순우리말로 통일해야 하는데, 저렇게 혼용하는 것은 이상하다. 이러면 아이들은 성충어른벌레를 다른 실체로 오해할 수 있다.

 

5. 탈바꿈

우리 어릴 때는 변태라 배웠는데, ‘탈바꿈이란 아름다운 우리말을 쓰니 참 좋다.

 

탈바꿈 혹은 변태에 해당하는 영단어가 흥미롭다.

transformation에서 trans-change, form은 형태 혹은 형식을 뜻한다. 형태를 바꾸는 것이다.

 

형태(form)은 일정한 시기에 유기체의 존재양식을 말한다. 유기체의 형태 변화는 변증법적 발전 원리에 따르니, 이른바 양질 전화의 법칙이다.

 

일정한 시기 동안 양이 차면 질적 전환을 이루어야 한다. 만약 번데기가 허물 벗는 고통이 두려워 트랜스포메이션을 하지 않으면 저렇게 아름다운 나비의 비상(飛上)은 볼 수 없는 것이다.

 

탈바꿈을 설명하면서 아이들에게 헤르만 헤세의 훌륭한 경구를 인용해 줬다. 3 아이들이 알아들을 수 있게 설명하니 아이들도 감동 먹더라.

 

새는 알에서 깨어 나오려고 애쓴다. 알은 새의 세계이다. 새로운 세계로 나아가려는 자는 기존 세계를 파괴해야 한다.

 

>> 예들아, 우리 입장에선 알껍질이 아무 것도 아니지? 이를테면 계란 깨뜨릴 때 힘들거나 하는 건 없잖아. 하지만 아기새의 입장에서 알은 사람으로 말하면 단단한 벽(콘크리트 벽까지는 아니더라도 나무벽)과도 같아. 그 벽을 무슨 망치 같은 도구를 써서 깨뜨리는 게 아니라 자기 머리로 깨는 거잖아? 그럼 얼마나 아프겠어?

그러니까, 생명이 그렇게 힘겹게 세상 밖으로 나오는 거야....

곤충이 번데기에서 어른벌레가 되는 것도 그렇지 않을까?

생명이 왜 그렇게 사투를 벌이면서 세상을 맞이하려는 노력이 눈물겹지 않아?

그럼, 우리가 이 생명을 어떻게 대해야 할까? <<

 

2017. 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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