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을 말한다

상은 무조건 나쁜가?

리틀윙 2017. 6. 23. 13:04

<상은 무조건 나쁜가?>

 

어제 글에 이어 세 번째 논점으로 상에 대한 부정적인 관념에 대한 나의 생각을 말하고자 한다.

내가 보기에, 교육계의 진보 진영이나 좌파 섹트에 만연한 상에 대한 관점은 고정관념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 이들은 상은 무조건 나쁘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사고가 지닌 맹점은 구체적이지 못한 점이다.

 

모든 사물은 부정적 측면과 긍정적 측면의 양면성을 동시에 품는 법이어서, 뭐든 그 자체로 무조건 좋거나 무조건 나쁜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따라서, 무엇의 좋고 나쁨은 항상 구체적인 맥락에 따라 판단해야 한다. 이를테면 경우에 따라 약이 독이 될 수 있고 반대로 독이 약이 될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사실을 말하자면, 진보를 자임하는 분들이 저주에 가까운 관점을 품는 은 독보다는 약에 가깝다. 교육적으로 상이 약에 가까운 것은 칭찬이 약에 가까운 것과도 같다.

 

과학적으로, 상과 칭찬은 인간의 행동을 계속 일어나게 하는 정적 강화물이라는 점에서 양자는 본질적으로 차이가 없다. 적어도, 우리 교실에서 내가 발부한 소박한 상장은 그러하다. 차이가 있다면 입으로 하는 칭찬을 종이에 글로 담은 것 밖에 없다.

 

학교에서 관행적으로 이루어지는 시상제도의 교육적 폐단은 최소한의 건강한 식견을 지닌 교사라면 누구나 알 바이다. 왜 나쁜가? 소수의 엘리트들이 독점하고 절대 다수의 아이들을 들러리 세워 열패감을 학습시키기 때문이다. 이런 점 때문에 다부초와 같은 혁신학교에서는 교육청 주관 대회에 학생을 참가시키지 않고 교육청에서 보내오는 이런저런 시상을 거부한다.

 

그러나 다부초 아닌 학교에서는 학교차원에서 시상을 한다. 반장/부반장을 선출하여 임명장을 수여하고 한다. 남다른 양심이나 신념을 가진 교사라도 그 시스템 속에 있는 한 이 공고한 기존 제도에 그저 따를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그 교사가 이 나쁜 제도를 무력화할 수 있는 최선은 뭔가?

 

그것은, 자신이 선량한 목민관으로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자기 교실의 모든 학생대중에게 상을 나눠 주는 것이다. 학력우수상은 어차피 치를 수밖에 없는 기말고사를 통해 학교에서 소수의 아이들에게 줄테니 담임교사는 지적 역량과 무관한 다양한 학생의 재능과 장점을 부각시켜 상장을 만들어 주면 된다. “다부초 아닌 학교에서 어쩌면 평생 한 번도 못 받을 상장을 이 교실에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받는 아이들이 있을 것이고 그런 아이에게 학급자치회의 이름으로 교사가 발부하는 상장은 축복일 것이다.

그런데 이게 왜 나쁘단 말인지 도무지 나는 이해할 수 없다.

 

또 어떤 분은, 모든 아이들이 다 받는 상이라면 그래서 무의미한 것이 아닌가 하는 비판의 변을 남기셨다. 과문한 내가 잘못 이해한 것이 아니라면, 그 분의 관점은 경제학적 논리로 이해된다. 그러나 교육 방정식은 경제학 방정식과 다르다. 수능시험이나 대학선발고사라면 몰라도 초등교실에서의 학급경영은 제로섬게임이 아니다. 소수의 잘난 아이들이 수상을 통해 웃음짓고 다수의 아이들이 우울한 시스템에서 모두가 골고루 상을 받으며 웃음 짓고 서로 축하해 주는 따뜻한 교육공동체를 경작하는 교사의 실천이 과연 무의미한 행위로 치부될 일인가?

 

같은 이치로, 반장제도도 무력화시킬 수 있다. 반장선출은 담임이 거부할 수 없지만, 반장에게 어떤 역할을 줄 것인가 하는 것은 전적으로 담임교사 재량이다. 일반교실에서 반장에게 독점적으로 부여되는 권한을 모든 아이들에게 나눠주면 된다. 이를테면, 종례 때 차렷-경례도 모든 학생이 돌아가면서 하게 한다.

 

계속해서, ‘내적 동기의 문제에 대해서도 논해 보자.

 

>> 아이들이 내적 동기가 아닌 교사의 칭찬을 받기위해서 행동하게 되는 건 아닌지... <<

 

참 좋은 말씀이다. 그런데 죄송하지만, 이 또한 구체적이지 못하고 너무 추상적이고 관념적인 당위론으로만 들린다.

 

도대체 초등학교 3학년 아이가 함께 나아가기(우리 학급 급훈)”에 대한 신념을 내면화하여 자기주도적인 흥미와 실천의지를 갖는 게 가능할까? 아니, 선천적으로 착해서 현재 그런 상태에 있는 극소수의 아이가 아닌 대다수의 아이를 어떻게 교육시키면 이 신성한 내적동기를 품게 할 수 있단 말인가? 빈정거리는 것이 아니라 나는 정말 누구든 그런 실천사례가 있으면 배우고 싶다.

 

구체성의 또 다른 측면은, 현재 우리 반의 특수성이다. 원 글에서 첨부한 영상을 봐도 그렇고 교사가 카메라를 들이대는데도 아무 것도 아닌 일로 사투를 벌이는 아이들이다. 이런 일이 하루에도 수 십 번 벌어진다.

 

그나마 3~4월 지나면서 여학생 그룹에서 몇몇 말썽쟁이들은 내게로 살짝 다가오는 느낌이다.(오늘 아침 글 참조) 그런데 눈물겹도록 반가운 이 녀석들의 전향(?)내적 동기의 힘이 아닌 교사의 칭찬이라는 강화물에 힘입은 바가 크다.

 

악동교실이라는 수사가 시사하듯, 심각한 말썽꾸러기들이다. 그래서 1,2학년 때 무지하게 많이 맞았다고 한다. 지금은 이 학교에 안 계시는 분들인데, 나는 그 분들의 심정이 이해가 간다. 문제는 그 분들의 강경노선의 최대 피해자는 나를 포함한 올해 3학년담임들이다. 매로 길들여진 아이들을 교육적 입장을 견지하며 이끌어가기가 무척 힘겹기만 하다. 오죽하면, 30년 경력의 소유자가 너무 힘들어 눈물이 날 지경이라 했겠나?

 

이런 학급을 경영하면서..... 내가 무능해서인지 몰라도, ‘내적 동기운운하는 수사는 그저 창백한 구호로만 들린다.

 

나아가, 동기이론이 뭐라 떠들건 간에 나는 애정과 인정욕구에 목말라 하는 어린 아이들이 교실의 피그말리온왕에게 칭찬을 갈구하고 교사는 그런 아이의 정서와 심리를 포착하여 교육적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한 전략을 강구하는 이 상호작용이 교육의 전부라 생각한다. 설령 그것이 외발적 동기라 하더라도 부정적으로 폄하되어야 할 이유가 조금도 없다고 생각한다.

 

교육은 관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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