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을 말한다

메타인지

리틀윙 2017. 9. 15. 09:24

요즘 우리 반 애들 리코더에 푹 빠져 있다.

리코더 지도할 때 얻은 소중한 통찰을 페친님들과 나누고 싶다.

 

리코더 지도에서 가장 안 되는 것 중의 하나가 텅잉이다.

 

(이 부분은 초등교사만 읽으시길:

텅잉이란 단어는 “tongue + ing”이다. tongue은 명사로는 이지만 여기선 동사로 혀를 굴리다에서 동명사형 접미사가 붙어 tonguing혀 굴리기의 뜻이다. 선생님들께서 텅잉 지도하실 때 이런 영어의 개념을 유념하실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리코더의 텅잉 원리는 아기가 말을 하는 원리와 같기 때문이다. 텅잉이 안 되는 리코더 연주는 혀 놀림이 어눌한 아기의 옹알이와도 같다. 아기의 옹알이는 귀여운 맛이 있지만 어른이 그렇게 말하면 곤란할 것이다.)

 

텅잉이 안 되는 리코더 연주는 듣기가 거북하다. 그런데 정작 텅잉이 안 되는 본인은 그게 거북한 줄 모른다. 아울러 자신의 연주가 텅잉이 되는지 안 되는지 판단을 못한다. 그래서 교사는 같은 멜로디, 이를테면 솔솔 라라 솔솔 미(학교종이 땡땡땡)’을 텅잉 한 것과 안 한 것을 비교하게 들려줌으로써 텅잉 음에 대한 변별력을 기르게 해야 한다.

 

처음에는 아이들이 텅잉 음과 텅잉 안 한 음을 잘 구별하지 못한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이 변별력을 갖게 될 것이다. 그런데 그 단계에서 아이는, 이를테면 텅잉의 차이로 인해 교사의 연주와 자신의 연주가 다르다는 것을 인식하기는 해도, 교사와 같이 연주를 하려 해도 잘 안 된다.

 

그러나!

자신이 틀렸다는 것을 아는 한, 아이는 곧 텅잉을 숙달해낼 것이다.

 

리코더뿐만 아니라 다른 악기도 마찬가지이다. 선생이 치는 기타 주법을 내가 쳐 보면 똑 같이 안 된다. 중요한 것은 스스로 이게 아닌데?’라는 각성을 하는 것이다. 자신의 오류에 대한 각성이 있는 한, 언젠가는 올바른 연주력 성취할 수 있을 것이다. 바꿔 말하면, ‘이게 아닌데라는 생각을 품지 못하는 사람은 절대 발전이 없다.

 

정리하면, 무릇 발전은 다음과 같은 순서로 이루어진다고 말할 수 있다.

1) 나의 수행에 문제가 있다는 것조차 모르는 상태

2) 문제가 있는 것은 알지만 잘 고쳐지지 않는 상태

3) 문제를 인식하고 그 해결책을 알게 된 상태

 

음악뿐만 아니라 춤이든 골프든 뭐든 모든 발전이 그렇게 이루어질 것이다.

 

교사의 성장은 어떨까???

 

내일 더 나은 교사가 되기 위해서 우린 어제와 오늘의 나의 교육실천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자신을 들여다보고서 이게 아니다라는 것을 깨닫는 메타인지가 없는 삶은 발전이 없다.

 

우리 반에는 꼴통 녀석들이 많다. 이 악동교실을 평정하기가 너무 어렵다. 하지만, 녀석들과 나의 관계는 비대칭적이어서 내게는 그들을 압도할 가공의 무기가 있다.

 

그 무기의 이름은 훈육이다.

아동의 행동을 교정하기 위한 불쾌 자극(unpleasant reinforcement)으로서 최소한의 훈육은 필요하다. 그 자극의 강도가 셀수록 효과는 높지만 교육적 역기능도 그만큼 높다. 쉽게 말해 교사는 편하지만 아이와 집단(=학급)에겐 해롭다. 따라서 결국 그것은 교육적인 처방이 아닌 것이다.

 

옛날에 아이들 많이 조졌다. 80년대 말, 내 초임 때는 아이들 두들겨 패서라도 열심히 가르치면 학부모들에게도 인정받았다.

지금은 최소한 아이들을 절대 때리지는 않는다. 우리 반 아이들은 그것만으로도 나를 착한 선생님으로 평가한다. (지금은 다른 학교로 옮기신 분들인데, 1,2학년 때 아이들이 많이 맞았다고 한다)

 

아이들에게 체벌을 가하지는 않지만, 남겨서 문제를 풀리고 하는 불쾌자극을 가하곤 한다. 그런데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든다.

 

도대체 이게 뭐 하는 짓인가?

이런 방법이 문제 해결에 무슨 도움이 되는가?

 

물론, 이런 각성에 대한 안티테제로서 어떤 대안을 생각해내진 못한다.

중요한 것은 이건 아니다!”라는 것이다.

 

그걸 아는 것만으로도 중요한 발견이다.

이건 아닌데... 라는 생각이 들면 대안은 곧 나온다.

대안을 찾기가 어렵지만, 아이들과 함께 찾는 것이 중요할 것 같다.

 

 

교직생활 끝자락에 이르러 인간이 조금 되려는지 이런 각성이 자주 찾아든다.

미네르바의 올빼미는 황혼녘에 날아오른다.

 

 

2017.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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