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을 말한다

어린 뮤지션의 성장

리틀윙 2018. 1. 26. 15:14

지금 시각 740. 이때쯤이면 학교에 일찍 오는 몇몇 아이가 교실에 입장한다. 우리 반 교실은 아직 고요하다. 멀리서 리코더 소리가 들려온다. 나는 특별히 음악소리에 예민한 편이다. 음악소리도 아름답지만 고요한 아침에 아무도 없는 교실에서 아이 혼자 가치 있는 어떤 활동에 푹 빠져 있는 풍경 자체가 아름답다 생각한다. 적어도 이런 장면에서 아이에게 삶과 공부가 따로 있지 않다. 내발적 동기에 의한 자연스러운 학습이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브루너(Bruner, J.)는 과학을 공부하는 아이는 과학자가 된 듯이 학습에 빠져들게 해야 한다고 했다. 아인슈타인은 다섯 살 때 자석이 언제나 한 곳을 가리키는 것을 보고 너무 신기해 했는데, 훗날 자기 생애 최고의 발견이라 술회했다. 자연현상에 호기심을 품고 진지하게 빠져드는 모든 아이는 과학자인 것이다. 마찬가지로, 리코더 실력이 점점 발전하면서 자신의 연주에 스스로 매료되어 저렇게 고요한 아침에 진지한 심미적 활동에 빠져드는 아이는 위대한 뮤지션이라 말할 수 있다.

 

1학기 때는 고요한 아침 시간의 교실에서 리코더 소리가 들려오지 않았다. 위대한 잠재적 뮤지션이라 할 이름 모를 아이가 왜 하필 이 시기에 리코더 연주에 대한 내발적 동기가 작동하는가에 대해 논하고 싶다. 나는 이 인과관계를 학교교육의 가능성이란 차원에서 포착하고자 한다.

 

우리 학교에서 현재 리코더에 심취해 있는 것은 비단 이 아이뿐만 아니다. 우리 반 아이들도 리코더를 열심히 분다. 다음 주에 학예발표회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아이들이 리코더에 푹 빠져들게 된 것은 학교교육과정과 관계가 있다.

 

그러나 학예회 행사라는 학교교육과정이 실질적으로 구현되는 것은 교실교육과정의 형태를 띤다. 학예회에 대비해 각 반에서는 교사의 의도하에 이런저런 발표 레퍼토리를 준비할 것이다. 연극에 유능한 교사는 연극을 준비할 것이고 음악에 남다른 흥미와 재능이 있는 교사는 음악발표를 준비할 것이다.

 

의미 있는 성장에는 어떤 특별한 계기가 수반되어야 한다. 이를테면, 작가는 책 출간을 통해 성장하고, 연기자는 연극발표회를 통해 성장하고, 뮤지션은 연주회를 통해 성장한다.

 

학예발표회는 어린 예술가 즉, 잠재적인 채플린과 모차르트를 성장시키는 매우 중요한 계기가 된다. 학교교육과 동떨어져 이를테면 홈스쿨링을 받는 아이는 이런 성장을 경험할 수 없다. 이것은 오직 집단적 맥락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초등교육과정에서 리코더는 3학년에 처음으로 나온다. 1학기 때 우리 반 아이들은 모두 리코더 초보자들이었다. 그러나 지금 많은 아이들이 5~6학년 수준에 도달해 있다. 그 발전의 동력은 교사보다는 아이들끼리의 공유된 활동 shared activity’로 말미암은 바가 크고 그 결정적 계기로 작용한 것이 학예회다.

 

학예회를 통해 아이들의 예능 역량이 성장하는 이면에 수업결손의 부작용에 대해 우려하시는 분들이 계신다. 아니다. 성장의 본질은 폭풍성장인 까닭에 몰빵 교육은 적극 권장되어야 한다. 이에 대해서는 다음 글에서 논하겠다.


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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