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강릉 강의 가서 만난 어느 교수님의 말씀이 아직도 귓전에 맴돈다.
서울대 학생들이 교수의 강의를 이해하기 위해 과외를 받아야 할 판이라는.
강의 시간에 쫓겨 긴 이야기를 나누지 못했지만 교수님의 이 한마디로부터 평소 내가 생각해온 어떤 아이디어에 중요한 시사점을 얻었다. 우리나라 최고의 명문대학이니 학교에서 최고로 공부 잘 하는 학생들이 들어갈 것이다. 그러면 공부를 잘 한다는 것이 뭘 의미하는가? 그것은 시험을 잘 치는 것을 의미한다. 그럼 시험을 잘 친다는 것은? 주어진 문제의 답을 잘 골라내는 것을 말한다. 수험생들이 비싼 돈 주고 받는 과외수업은 그런 능력을 구매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 과외수업은 찍기 능력에 특화된 공부인 것이다.
전세계에서 한국 아이들보다 열심히 공부하는 경우는 없다. 한국 아이들이 유치원 때부터 시작되는 치열한 열공의 종착지점이 대학교 입시다. 말하자면, 수능시험 잘 치기 위해 유치원 때부터 죽도록 공부하는 것이다. 정답 고르기에 특화된 공부는 필연적으로 깊은 사고력 형성을 저해한다. “다음 중 ~가 아닌 것은?” 하는 문제의 풀이는 잘 하지만 주어진 현상에 대한 의문을 품을 줄은 모른다. 파울루 프레이리의 개념으로 말하면, 문제해결(problem solving)은 잘 하지만 문제제기(problem posing)에는 무능한 것이다.
우리가 삶에서 만나는 중요한 문제는 “다음 중 ~가 아닌 것은?”이란 형태로 존재하지 않는다. 사고의 성장은 문제풀이(problem solving)가 아닌 문제제기에서 시작된다. 그것은 “왜?”라는 인식론적 호기심에서 출발한다. 우리 학생들에게 근본적인 “왜?”는 “공부를 왜 해야 하는가?” 하는 실존적인 물음일 것이다. 우리 학생들은 미래의 입신을 위해 오늘의 행복을 저당 잡힌 채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오로지 앞만 보고 달려간다. 묻지마 식 정답 고르기에만 특화된 공부를 하다가 대학 들어가서 “왜?”라는 문제제기 공부를 시키니 서울대 학생들도 적응을 못하는 것이다.
물론, 이 무능 또한 위대한 자본주의 시장경제가 해결해줄지 모른다. 교수님 말씀대로라면 서울대생을 위한 문제제기교육이란 상품이 사교육시장에 등장할 추세다. 그 모형이 파울루 프레이리식이 될지 존 듀이 식이 될지 몰라도 그런 상품이 사교육시장에서 매매되는 이 천민자본주의사회 교육일상은 한편의 코미디다. 이게 나라냐?
일본에서는 찍기에 특화된 교육의 폐단을 근절하기 위해 우리의 수능과 비슷한 객관식 위주의 대학센터시험 대신 프랑스 식 바칼로레아 시험을 도입할 예정이라 한다.
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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